내 사람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
보는 내내 너무 힘들었지만, 마지막화까지 보고 나선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것일까 생각했다. 삶의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남의 슬픔을 생각할 여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여유란 단순히 돈의 문제만은 아니고, 내 일상이 모나지 않아서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그런 여유. 드라마를 보고 나니,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슬픔은 슬픔이 먼저 알아채고 자기만 아는 동질감을 만든다. 마치 지안(이지은)과 동훈(이선균)이 서로를 알아본 것처럼 말이다. 아픔 없는 사람은 없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며, 그리고 또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모든 등장인물과 그 사연들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밖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었어도 가족들이 모르면 괜찮은 척할 수 있다는 동훈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부모님 혹은 가족들이 걱정할까 나 자신도 내가 너무 불쌍했던 순간은 내색하고 싶지 않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동훈의 형, 상훈(박호산)의 비참한 하루를 엄마(고두심)가 알게 된 것에 자식들은 맘 아파한다. 엄마는 그저 아는 체 하기보단 자식에게 따듯한 밥을 차려주는 것으로 그 위로를 대신하고 눈물을 훔치는데, 나도 그 순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나도 자랑스러운 자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곧 불효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내가 부모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부모님의 마음도 똑같지 않을까. 그분들도 나에게 자랑스러운 부모님이고 싶지 않을까 생각하니, 가족이란 그저 함께하는 것만으로 완벽한 존재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극 중, '정희네'라는 공간이 나온다. 말 그대로 정희(오나라)가 하는 술집. 어린 시절 추억을 나눈 사람들이 어른이 돼서도 정희네에 모여 회포를 푼다. 어느 순간, 지안도 그곳에서 함께하게 되는데 마치 '이젠 너도 우리 사람이야'라는 상징적인 공간인 것 같아 기억에 남는다.
정희에겐 돌연 스님이 된 옛사랑이 있다. 자세한 이야기를 보여주진 않지만 늘 사람들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정희네에서 정작 정희 자신이 가장 외로워 보이는 건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을 추억으로 가슴에 묻어야 하는 것이 그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남은 사람에게는 지옥일 수 있다는 게 슬펐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도 친구들도 다 버릴 수밖에 없는 선택을 했을 때 나를 버렸다는 충격보다 그가 세상을 등져야만 하는 결정을 할 때까지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미안함과 좌절감이 정희를 계속 혼자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좋은 딸, 좋은 여자 친구, 좋은 이웃, 좋은 동료가 되고 싶게 하는 드라마였다. 내가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주변의 아픔을 외면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점점 나 하나 챙기기도 힘든 세상이라고 생각할 때 즈음 이 드라마를 보게 됐다. 나를 챙기는 게 정말 나 혼자였을까. 아니었다는 걸, 앞으로도 아닐 거라는 걸 이제는 알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