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준에 대하여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영화.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누가 나눌 수 있으며, 또 완벽이라는 것을 누가 정의할 수 있을까. 영화 초반, 후버 가족의 일원 누구도 정상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하나 완벽해 보이지 않던 가족. 엉망진창이라는 말도 가능하겠다. 자기 자신 하나 감당하지 못하면서 올리브만은 지켜주고 싶어 하는 가족들이 짠하면서 감동으로 다가왔다.
영화는 올리브가 캘리포니아 어린이 미인대회에 출전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말 그대로 전형적인 미인 대회. 바비인형 같은 아이들 가운데 올리브는 기죽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아이들 사이에 올리브가 상처 받지 않을까 가족들만 전전긍긍이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했던 적이 너무나 많다. 아름다움의 기준마저 어른들이 정해놓은 틀속에서 나조차 올리브가 상처 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린 시절 아마 나도 좌절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의 기준뿐만 아니라 삶의 기준은 또 어떤가. 굳이 그 기준에 맞출 필요가 없었다는 것은 항상 조금 늦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올리브가 미인대회 무대에 서있는 그 순간을 즐기는 모습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앞서 말했듯, 나도 기준 미달로 취급된 적이 많다. 예를 들면, 학창 시절 평균 이하인 과목들로 밤새 애쓰거나 부족한 근육량을 키우기 위해 헬스장을 다녀본 적도 있다. 어찌 보면 무언가의 결핍은 꼭 우리가 어떤 것을 해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그 무언가 때문에 불행해지고 싶진 않다.
나에게 결핍이라 할만한 것이 '돈'이었던 시절이 있다. 지금도 아니라고 할 수 없지만.. 대학시절엔 학자금 대출은 물론이고 아르바이트를 거의 쉰 적이 없다. 사고 싶은 걸 사기 위한 아르바이트였다기보단 용돈을 벌기 위한 나름 나의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였다. 당연히 힘든 적이 있었지만 난 그 결핍이 건강이나 가족의 부재가 아닌 것에 오히려 감사했다.
돈이 없고, 멋이 없어도 올리브를 지켜주는 가족이란 울타리가 너무 튼튼해 보였다. 제 스스로 시동을 걸 수도 없는 차를 타고 다니고 실패를 밥먹듯이 하며 오랜 기간 꿈꿔온 꿈이 좌절되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기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어쩌면 나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 기준 미달이라고 생각했던 나를 계속 일으켜 세울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를 보고, 남의 인생에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하고 싶지 않아 졌다. 말 그대로 인생엔 정답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