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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BRIDGE May 29. 2017

무비 브릿지 - 겟 아웃

좋은 스테레오타입은 없다

    몇 년 전, jtbc에서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거의 금기시되던 '섹스' 에 대한 이야기를 한 덕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신동엽을 필두로 쟁쟁한 인물들이 나와 각자의 연애와 섹스 라이프를 이야기했는데, 그중에서도 눈에 띄었던 패널이 바로 홍석천이었다. 그는 커밍아웃한 게이 연예인이라는 자신의 포지션을 살려 여러 드립을 던지곤 했다. 많은 시청자들은 그가 던지는 게이 개그에 웃음을 터뜨렸고, 홍석천은 어느새 호감 연예인이 됐다. 이젠 사람들은 말한다. "나 홍석천 좋아해. 나 호모포비야 아니야." 라고.

    "겟 아웃" 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이 여자친구네 집을 들르자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오바마 팬이야. 할 수만 있었으면 이번에도 오바마 뽑았을걸?" 이라고. 언뜻 보기엔 인종에 대한 편견이 없어 보인다. 오바마를 좋아하고, 흑인식 영어를 흉내내며 그들의 몸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아무 문제 없이 흑인들을 환대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속에서 주인공 크리스는 기시감을 느낀다. 비단 그 마을의 흑인들의 행동뿐만이 아닌, 그를 대하는 백인들의 태도에서 말이다. 그를 보자마자 타이거 우즈의 팬이라고 하거나, 흑인들이 진짜로 섹스에 능하냐고 물어보거나, 몸을 만지면서 "잘 빠졌다" 고 말하거나 하는 백인들의 행동에 불편함을 느낀다. 심지어 그곳의 흑인들마저 마치 백인처럼 말하고 행동하면서, 크리스는 더더욱 고독을 느끼게 된다. 

아미티지 가에 방문한 동안 그는 분명 외로웠을 것이다

    이후로 영화 자체는 클리셰 그 자체처럼 진행된다. 뻔한 전개, 뻔한 반전, 뻔한 결말. 스릴러 영화에 기대할 법한 소름끼치는 반전이나, 충격적인 트릭은 없다. 흑막이 밝혀진 후에는 흡사 액션영화나 슬래셔 무비같은 느낌. 하지만 그 전까지 관객들이 느끼는 크리스의 기시감과 외로움이야말로 이 영화의 정수이다. 분명 자신을 추켜세워주고, 칭찬해 줌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어색함과 고독감, 그리고 공포. 감독인 조던 필레 역시 미국 사회 속 흑인임을 생각해보면, 감독이 진짜 전하고자 했던 바는 스릴러라는 장르적 쾌감보다는 이런 메세지가 아니었을까.


    조던 필레가 전하는 메세지는 비단 미국뿐 아니라 지금의 우리나라에도 유의미하다. 현재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인권 감수성에 대한 쟁의가 활발한 상태이다. 동성애자들은 호모포비아에, 여성들은 기존의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에 맞서 싸우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몇몇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 여자 좋아하는데? 여자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어. 여혐은 무슨.
나 홍석천 팬이야. 내가 왜 호모포비아야?

위와 같은 말들과 함께 문제를 제기하는 동성애자들과 여성들은 삽시간에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들의 목소리는 기존 사회의 목소리에 묻히고 만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로 이 사회에서 온전하게 대접받고 있는가를 물어보면 고개를 젓게 될 것이다. 홍석천의 팬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중 몇몇은 게이나 항문섹스에 대한 개그를 보고 낄낄거리고,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람중 일부는 '여자는 꽃' 이라는 말이나 지껄이면서 여성을 성적 객체로 바라보기 일쑤다. 마치 크리스를 보자마자 그의 직업이나, 취미같은걸 묻기 전에 "진짜 흑인이 밤에 좋냐", "몸이 정말 탄탄하다" 따위의 말들이나 뱉어 대던 백인들처럼 말이다.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우리가 수많은 외국인들이 있는 곳에 떨어졌는데, 그들이 당신을 보자마자 "김치 좋아해?" "나 박지성 알아! 손흥민도!" "강남스타일 춰 줘" 같은 질문만 던진다면, 그리고 그중 누구도 당신의 취향이나 꿈, 당신의 성향 같은 것들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과연 그럼에도 당신은 유쾌하게 그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을까?

이런 노골적인 비하만이 차별인 것은 아니다

    결국 그것이 우호적인 편견이든, 부정적인 편견이든 편견은 그 자체로 지양해야만 한다. 한 집단 전체에 편견을 갖고 매도해 버리는 순간, 우리는 그 집단 속 사람들을 객체로서 대하게 된다. 아미티지 가의 사람들과 그 이웃들이 주인공을 크리스라는 한 사진사가 아닌, 몸 튼튼하고 예술성 넘치는 흑인으로 보듯이 말이다. 무릇 사람이란 하나하나가 다들 빛나는 주체이기에, 우리는 그들을 함부로 재단할 자격이 없다.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든, 그 사람은 그 사람 자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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