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VIE BRIDGE Aug 22. 2017

무비 브릿지 - 더 테이블

결국 진심은 전해진다

    요즈음 카페는 관음의 장소다. 각자 공부를 하거나, 여유를 즐기거나 하는 목표를 갖고 카페를 가긴 하지만, 그곳에서 결국 하는 것은 '사람 구경'이다. 저 남자는 노트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우리 뒤에서 들리는 싸움 소리의 주인은 대체 누구일까. 저어기 한 구석에서 통화를 하면서 입을 쩍 벌리고 웃는 저 여자는 왜 저렇게 행복한 걸까. 찰리 채플린이 그랬다.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우리는 카페에 가서 그 비극들을 한 걸음 물러서서 희극으로서 관음한다. 김종관 감독의 신작 "더 테이블" 은 우리가 카페에서 그렇게 구경할 법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철저히 방관자의 시선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들에만 집중한다. 서울시 어느 한 카페의 창가자리. 그 자리를 하루동안 찾았던 네 쌍의 인물들의 이야기로 극을 끌어나간다.


    등장하는 네 쌍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절대, 그들의 과거회상을 보여주지 않고 오로지 둘의 대화로만 그들을 보여 준다. 나머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긴 채, 그렇게 흘러 간다. 그들이 과거에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다툼을 했는지 관람객은 그저 유추할 뿐. 이야기가 흘러가는 내내 상상의 나래를 접을 수가 없도록 만든다. 영화는 우리에게 이름 모를 카페 한 구석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는 듯한, 그런 경험을 제공한다.

    물론 이따금씩 '아 이들은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힌트는 주어진다. 일상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는 인물이라거나, 말 하나하나에 찌질함이 묻어나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니면 카페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들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지 넌지시 알려주기도 한다. 그 모든 모습들은 그저 카페 안 한 테이블을 향한 컷으로만 드러난다. 영화 제목처럼, 정말 '그 테이블' 의 이야기인 것이다.

영화 내내 화면의 중심에 있는, '그 테이블'

    영화의 마지막에서야 카메라의 시선은 카페를 벗어난다. 하지만 그조차도 카페 안 풍경의 연장선상. 테이블 위에 찢어진 꽃잎이, 비에 떨어진 길가의 꽃잎과 이어짐으로서, 영화는 단순히 카페 안 이야기를 벗어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로 그 영역을 넓힌다. 마치 김종관 감독의 전작 "최악의 하루" 에서 남산에 머물러 있던 화면이 순식간에 강남대로와 같은 서울의 풍광을 보여줌으로서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시켰듯 말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 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 바로 진심. 진심 없이 말을 꾸며낸 이는 금방 들키고 만다. 그리고 방식이 서툴러도 진심을 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결국, 상대에게 전해지기도 한다. 또 굳이 그것을 말로써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표정이나 꾹꾹 눌러담은 목소리를 통해, 그 마음이 도달하기도 한다.

    네 편의 에피소드 중 세 편은, 벽 쪽에 앉은 사람이 반대편에 앉은 이에게 진심을 전달하는 입장이 된다. 그 진심이란 애초에 자기 자존심을 위해 지어낸 헛것이기도 하고, 정말정말 간절하게 전하고 싶은데, 상황이 꼬여서 차마 제 때 보여주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애초에 없다가도 이야기 도중에 왈칵, 쏟아져 나온 진심 또한 있다. 그래서 영화가 후반부로 다가갈 때까지, 지켜보는 사람들은 벽 자리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반대편 사람에게 다가서는지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구경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그 모든 것은 역전된다. 반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 끊임없이 벽 자리 사람에게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고, 애걸복걸한다. 그 순간, 여태껏 한 쪽으로만 쏠려 있던 관객들의 시선 역시 순식간에 바뀐다. 과연 저 사람의 진심은 정말인 것일까, 하면서 말이다. 여태껏 마음을 받던 위치가 이제는 마음을 주는 위치가 되고, 마음을 주던 위치가 다시 마음을 받는 위치가 되는 역설.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영화의 마지막에 펼쳐지고, 관객들은 자연스레 지금까지와는 반대편의 입장에서 둘의 관계를 지켜보게 된다.


    우리가 연애를 할 때, 혹은 다른 인간관계를 맺을 때에 우리는 상대방의 진심을 놓고 전전긍긍하다. 이 사람은 과연 나를 정말로 좋아할까?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 사람도 나를 생각할까? 내게 있어 그 사람이 차지하는 마음의 공간을, 그 사람도 나를 위해 남겨 뒀을까?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영화는 알려 준다. 사실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고. 진심이란 것은 결국엔 전해진다고 말이다. 물론 진심이 전해졌다고 해서 그 관계가 반드시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사람의 마음이 진심인지는 우리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상대도 우리의 진심을 느낀다는 것을 말이다.

    가식적인 말들, 그럴듯하게 꾸며낸 말투와 과장된 표정, 그리고 동작. 그런 것들이 순간적으로 우리를 속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사람 속에 오롯이 남아 있는 진심은, 그 향이 꽤나 센 탓에 결국 가까운 사람에게 번질 수밖에 없음을 영화는 보여 준다. 우리 마음 속 향은 어떤 냄새일까, 하는 질문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꽤 오랫동안 남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비 브릿지 - 500일의 썸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