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는, 계속 살아 간다
[우리의 20세기]는 1970년대 미국 산타바바라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갑남을녀의 이야기이다. 도로시아, 줄리, 그리고 애비라는 세 여자가 극의 중심에 서 있으며, 제이미와 윌리엄이라는 두 남자가 여인들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들어가 윤활유 역할을 한다. 영화의 원 제목이 [20th Century Women], 20세기 여자들인 만큼, 극은 20세기 미국의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각 여성들은 당시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적 덕목' 이 뭔가 하나씩 부족한 상황. 그 결핍 아닌 결핍을 견디고, 흘려 보내는 모습들을 영화는 비춘다.
1. 젊음의 결핍, 도로시아
55세 여성, 도로시아. 하숙집의 주인이자 맏언니. 아들이 퍽하면, "우리 엄마는 대공황 시절 사람이라 그래." 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은 우리가 마치 동네 할아버지를 가리켜 "6.25 때 사람이라 그래"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젊고 좋았던 세월은 다 흘려보낸 채, 쭈글쭈글해진 피부와 낡은 생각을 안고, 아들을 키워내는 데 온 신경을 쓰는 어머니. 그러면서도 아들에게 늘 한소리 듣는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이다. 비록 남편과 이별하고, 혼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새 사람을 찾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그녀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자신의 결핍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저 그녀에겐 아직 여러모로 불안한 아들내미뿐. 어떻게 하면 아들에게 좋은 어머니가 될까, 어떻게 하면 제이미를 잘 돌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뿐이다. 때때로 아래층 남자 윌리엄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요즘 젊은 것들'의 노래를 들어 보기도 하지만, 결국 그녀의 신경은 다시 그의 아들에게로 돌아간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결핍을 한편으론 받아들이고, 한편으론 무시하면서 살아 간다.
2. 애정의 결핍 - 줄리
17세 여자아이 줄리는 속된 말로 '발랑 까진' 애다. 많은 남자들과 섹스를 즐기고, 도로시아의 아들 방에 툭하면 기어들어가 함께 잠을 자곤 한다. 물론 제이미와는 그저 이야기하며 잠만 잘 뿐이지만, 어쨌거나 여러 남자들과 섹스를 하고 다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오르가즘도 느낀 적이 없다. 아직까진 사랑을 한 적도 없어 보인다. 그저 섹스 당시의 남자의 절박한 눈빛, 남자의 몸, 그리고 그 때의 흥분된 숨결이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상대의 흥분과 절박함을 느끼기 위해 좋을지도, 안 좋을지도 모르는 반반의 확률에 몸을 맡기고 잠자리를 갖는 것이다. 그러다가 임신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난 뒤론 끊임없이 후회하면서 불안해한다.
사실 그녀는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에 가깝다. 가장 의지하고, 가장 긴밀한 애착을 갖고 있는 제이미와의 섹스는 끊임없이 거부하니깐. 줄리는 이성에 눈을 뜨고 그녀와 섹스하기를 바라는 제이미를 끊임없이 내치며, 이렇게 말한다. "섹스를 하면 다신 친구로 남을 수 없어." 결국 그녀는 자신의 소중한 친구를 잃을까봐, 그 걱정이 앞서서 섣불리 사랑을 할 수도, 섹스를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가깝던 친구에서 끝내 연애로 발전하지 못하고 멀어지는 흔한 남녀처럼 말이다. 심지어 영화 후반부에서 제이미가 줄리에게 '내가 원하는 것은 너와의 섹스 따위가 아니라 너 그 자체야.' 라고 말할 때조차도, 그녀는 '네가 보는 난 뭔데' 라며 다시 한번 그를 밀어낸다. 그녀의 이 대사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두번째로는 누군가의 연인으로서가 아닌 그녀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싶음을 내포한다. 어느 쪽이든, 그녀는 사랑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인 듯 싶다.
하지만 줄리에게도 사랑에 대한 철칙이 있다. 그래서 더더욱 그녀가 연애하는 모습이 극중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제이미와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랑은 누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야. 사랑은 네가 느끼는 감정이어야 해
자신이 절실하게 느끼는 사랑. 누군가에게 흔들리지 않고 오롯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 정말이지 멋진 말이다. 그 원칙을 기둥삼아 그녀는 자신의 결핍을 견뎌 낸다.
3. 신체적 결핍 - 애비
극 중에서 "사회적 여성성" 과 가장 동떨어진 인물을 꼽으라면 애비일 것이다. 영화 초반부부터 자궁경부암으로 인해 자궁벽이 약해져 애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린다. 동시에 그녀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제이미에게 페미니즘 도서들을 건네어 준다거나, 홈파티 한가운데에서, "왜 생리는 생리라고 말 하면 안되냐" 면서 그 자리에 있는 남자 모두에게 '생리'라고 외치도록 한다. 페미니즘 책을 읽은 제이미가 동네 형한테 그 내용으로 말을 건넸다가 얻어터진 후, 이를 본 애비와 도로시아와의 대담이 두 여성의 캐릭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제이미에게 더 이상 페미니즘 책을 건네지 말라는 도로시아. 제이미는 좋은 남성으로 성장 중이라는 애비. 시대의 흐름에 한풀 꺾인 어머니와, 시대의 흐름에 맞서는 진취적인 여성의 대립구도는 전체 극에서 가장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 준다.
이런 애비가 우리에게 건네는 말은 다음과 같다.
인생은 절대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아
본인의 실수로 자궁경부암에 걸린 애비을 원망하는 엄마. 뉴욕에서 마주친 교수와의 사랑. 꿈을 막 펼치려는 때에 찾아온 자궁경부암. 그녀의 삶은 예상치 못한 암초덩어리들로 가득해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행복을 위해 클럽을 찾고, 음악에 맞추어 신나게 몸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은, 꽤나 행복해 보인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결핍 위에 스스로 일어나며, 사회적 압력에 맞선다. 이것이 그녀가 스스로의 결핍에 맞서는 방식이다.
영화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나레이션이다. '~할 것이다.' 라는 미래형의 문장이지만, 그 내용은 이미 지나간 세월을 되짚어 보는 회상의 성격을 갖는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가던 그 때에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지 못한다. 도로시아도, 애비도, 그리고 줄리도 자신의 미래를 그 때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들의 앞날엔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고, 늘 그래왔듯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그럼이도 그들은 계속 살아 왔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말이다.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나의 지난 세계에서 전지적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일을 겪을지, 어떤 행동을 할 지 모두 아는 채로, 그것을 뒤틀어 상상해 보기도 하며, 때로는 개중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을 끊임없이 되새기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미래는 알 수 없다. 넓은 바다 위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배처럼, 우리는 그저 그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당장 내일 내가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내가 과연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갈 수 있을지, 내가 과연 내가 그리던 모습이 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 눈 앞에 보이는 일들을 좇고,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열정을 쏟다 보면, 언젠가 정신을 차렸을 때 우리는 우리의 이상향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 있지는 않을까. 우리는 그렇게 계속 샇아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