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는 이름으로
새내기 때, 독하게 마음을 먹은 적이 있다. 1학기 때에 여러 모로 느꼈던 열등감을 극복하고 싶었으리라. 이번에는 반드시 높은 학점을 받겠노라고, 공부도 동아리도 완벽하게 해내리라고 다짐했다.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발견해 버린 내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다. 개강하고 나서도 친구들과의 술자리,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를 다 미뤄 둔 채 내게 주어진 일들에만 집중했다. 적어도 중간고사 때까지는 그러했고,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이리라 믿었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선 꼭 필요한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즈음 여자친구가 내게 한 말 한마디에 큰 충격을 받았다.
너, 지난 학기보다 굉장히 별로인 사람이 된 것 같아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나름 더 열심히 살고 있고, 더 멋있는 사람으로 발돋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별로라니. 억울했다. 그래서 그 아이한테 더더욱 퉁명스럽게 대꾸했고, 결국 그 친구는 나를 떠나갔다. 그러고 나서 다시 돌아보니, 그 말이 맞았음을 느꼈다. 내가 이루고자 했던 것은 결국 자기파괴적인 성취에 불과했던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내던지고 정상에 올라 뒤를 돌아보면, 결국 남는 것은 정상에 올랐다는 그 사실 하나뿐인, 상처뿐인 영광. 그것을 위해 달리고 있던 것이다. 위플래쉬는 이런 자기파괴적 성공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는 두 인물을 보여준다.
극중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은 바로 플레처다. 첫 등장부터 괴팍한 음악가 그 자체를 온몸으로 보여주더니, 서사가 진행될수록 그의 광기는 더더욱 빛난다. 최고의 연주자를 길러내겠다는 일념 하에 온갖 짓을 서슴치 않는다. 인격모독, 무한경쟁, 심지어 폭력까지. 그렇게 제자들을 몰아붙이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찰리 파커가 최고의 드러머가 된 건 조 존스가 던진 심벌즈 덕분이야.
제자들이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끊임없이 달려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플레처. 안 되면 되게 하라, 갈구고 갈구면 어떻게든 된다를 몸소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서 낯익은 풍경이 그려진다. 바로 우리가 다녀왔던 군대. 생각해 보면 군대야말로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 아니었던가. 높으신 아저씨가 와서 손짓 한번 하면 건물이 올라가는 기적. 이게 돼? 하는 것들을 직접 내 몸을 굴려가며 해 내는 곳. 플레처는 한국 군대에서나 할 법한 짓들을 자기 제자들에게, 학교에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플레쳐 못지않게 앤드류 역시 자신만의 광기를 내비친다. 앤드류는 커리어에 스스로를 투영하는 인물이다. 자존감, 자신감, 존재의 이유까지 그 모든 것들을 자신의 꿈에 놓는다. 학교 최고의 밴드에 들어가고서야 눈여겨보던 여자에게 말을 걸고, 또 그렇게 사귄 여자친구에게 '꿈을 이루는데 걸림돌이 된다' 며 이별을 고한다. 메인 드러머가 되고 나서는 오만이 하늘을 찔러 친척들에게 폭언을 내뱉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잃고 나서는 자신이 차 버린 여자친구를 떠올리면서도 차마 연락은 못 하는, 찌질하기 짝이 없는 모습만을 내비친다.
이런 그의 모습은 그 유명한 최후의 시퀀스에서도 드러난다. 백스테이지에는 가족과 일상의 행복을 상징하는 아버지가 앤드류를 기다리고 있고, 무대에는 그에게 좌절과 모욕, 절망을 안겨 준 플레쳐가 서 있다. 앤드류는 아버지에게로 다가서다가 이내 결심을 굳히고 다시 무대로 향한다. 플레쳐가 있는 무대로, 자신의 꿈이 있는 무대로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숨막히는 드럼 비트와 카타르시스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앤드류는 아마 다시 거만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플레쳐의 광기를 받아들이고, 자신 역시 플레쳐와 같은 종류의 사람임을 증명했으니 말이다. 그가 찰리 파커나 버디 리치같은 최고의 드러머가 됐을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적어도 플레쳐와 같은 광인이 되었음은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적어도 그 스스로는 그 안에서 행복하다 믿을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타나토노스" 에는 죽은 이의 삶을 점수로 나타내 판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그 점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자아 실현' 이다. 자신의 꿈과 재능을 펼친 이에게는 후한 점수를 줘 한 단계 높은 존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이 말만 들어 보면 우리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아 실현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앤드류나 플레쳐와 같은 방식으로 꿈을 이룬다면, 그 곳에는 행복이 있을까. 일행을 눈사태 속에 버려두고 홀로 올라선 에베레스트 정상의 모습은, 과연 아름다울까. 우리가 꿈을 좇는 이유는 결국 그곳에는 행복이 있으리란 믿음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꿈을 위해 내가 지금 갖고 있는 행복들, 소중한 다른 가치들을 내던지는 행위들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그렇게 올라선 꿈이라는 봉우리 위에서 개인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고독과 허무 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