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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BRIDGE Aug 29. 2017

어른이 되던 날

"뭐 하고 있냐. 얼른 마셔, 인마."

    맥주잔에 가득 담긴 맑은 액체. 그곳에서 나오는 역한 알콜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2014년 1월 1일, 갓 자정을 넘긴 그 때, 막 어른의 문턱을 넘은 남자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미 어른들의 눈을 피해 몰래몰래 한 잔씩 걸쳐 보았던 소년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스무 살이 되어 마시는 술은 새롭게 다가왔다. 일종의 의식이랄까. 더 이상 눈이 침침한 노인의 구멍가게에서 술과 담배를 구걸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해방감. 그 해방감을 마음껏 만끽하는 그들이었다.

    눈을 딱 감고, 무식하게 많이 담긴 소주를 입 안에 털어넣었다. 목과 코를 타고 넘어오는 소주의 향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살짝 주변의 모습이 흐릿했다가 다시 되돌아온다. 그리곤 빈 맥주잔을 머리 위로 탈탈 털며한껏 허세를 부린다. 그러자 주변 모든 놈들이 너나할것없이 앞다투어 술잔을 채우고, 넘기고, 채우고 또 넘기기를 반복했다. 금새 교복 입은 어른들의 웃음소리로 소란스러워진 호프집. 평소였으면 시끄러운 소음에 눈살을 찌푸렸을 옆 테이블의 사람들도,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들의 첫 걸음을 지켜볼 뿐이다.


"아저씨, 태릉이요."

    택시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뒷자리에 눕는. 괜한 허세를 부린 탓에 머리는 이미 지끈거리고,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해도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를 나무라곤 했었다. 하지만 이젠 그가 그 때의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늘 걸어오던 길 위에서 개다리춤을 추며 걸어오고 있었다. 아버지께선 회사에서 늘 이렇게 술을 드시고 오셨던 걸까. 그런 생각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가운데, 어느 덧 택시는 집 앞에 도착했다.

    머리는 지끈거렸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썩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음 주부터는 과외도 하나 시작하기로 했다. 돈도 이제 스스로 벌 것이고, 남부럽지 않은 학교에도 가게 됐다. 이젠 하고 싶은 대로, 멋진 어른의 삶을 사리란 생각에 입꼬리가 귓가에 걸린 채 잠에 들었다.


"아.... 또 다 썼네."

    2017년, 여름의 끝물에서 텅 빈 잔고가 적혀 있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물고 있던 담배 냄새가 갑자기 더 쓰게 느껴진다. 하늘은 맑고, 바람도 시원하지만 어디 놀러 가자고 불러낼 사람도, 어딜 갈 돈도 없는 그는 그저 담배 한 대를 꼬나물고 서 있을 뿐이었다. 3년 전의 그 자신만만함은 이미 녹이 슨 지 오래. 매일 아득바득 그 녹을 벗겨 보려고 사포질을 열심히 해 보지만, 멀쩡한 칠만 긁어내 상처만 키울 뿐인 나날들. 어른으로서 산다는 게 그렇게 녹록치만은 않다는 걸 아직도 깨달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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