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콜드플레이 예매 성공했지?? 이번에 나 티케팅 도와줄 수 있어?"
갑작스레 온 여자 선배의 연락. 특별히 어려울 것도 없고, 엄청 힘든 일도 아니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당시 그 선배의 나이는 스물 넷. 나는 스물 둘. 특별할 것 없는 이십대들의 대화였다. 얼마 뒤 진행된 2차 예매에서 난 결국 선배에게 콘서트 표를 건넬 수 있었고, 그 소식을 전하자 선배는 정말이지 뛸 듯이 좋아했다. 통화를 마무리하고 방에서 나오자 거실에 앉아 종편 토크쇼를 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어머니와 나의 사이는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학창 시절, 늘 어머니가 맛있는 저녁을 해 주신다느니, 교복을 매일 빨아 주신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들은 나는 '왜 우리 엄마는 그런 것들을 안 해줄까' 라는 의문에 빠졌다. 참 철없게도, 그 때는 그런 사소한 것들로 어머니를 미워했다. 반찬투정 끝에 그대로 집을 나가서 열흘 만에 다시 돌아왔을 정도니, 남들보다 조금 더 미워했던 것은 맞을 것이다. 교복 셔츠를 사흘 연속으로 입어야 하는 게 싫었고, 어머니와 여동생의 다이어트 탓에, 늘 찬 밥에 김치와 함께 하는 저녁상이 싫었다. 이상한 종편 토크쇼를 보느라 보고 싶던 예능을 못 보는 것도, 그러면서 쇼파에 앉아 잔소리를 퍼붓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너무나도 싫었다.
그런데 스물 넷의 선배와 실컷 통화를 하고 나와 어머니를 보니, 어머니의 스물 네 살 적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 때에 이미 어머니께선 아버지와 결혼하시고, 뱃속에 나를 품고 있던 때였다. 어찌나 그 모습이 어색하던지. 지금 당장 내 주위 스물 네살이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들어도 놀랄 것 같은데, 어머니께서 그러셨다니. 갑작스레 어머니의 모습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콜드플레이의 노래에, 자이언티의 노래에 푹 빠져 있듯, 어머니도 그 때 그 가수들의 노래를 퍽 좋아했을 것이다. 여전히 이소라의 신보를 챙겨 듣고, 여전히 이문세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면, 그 때는 훨씬 더 열정적으로 그들의 노래를 들었으리라.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이 맛집 다니기를 좋아하고, 서너 명만 모여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듯, 어머니 역시 분위기 좋고 예쁜 음식점에서 친구들과 실컷 수다를 떨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평범한 이십 대의 일상이고, SNS를 켜보면 항상 올라와 있는 이야기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당신께서 결혼이란 문턱을 넘으신 뒤로는, 나를 잉태하신 뒤로는 그런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90년대 한국 사회의 분위기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결혼과 동시에 기존의 사회적 관계망들이 턱, 잘려나가니깐 말이다. 지금처럼 SNS나 스마트폰을 통해 서로 쉽게 연락하지도 못하던 시대에, 결혼이란 곧 기존 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친구들도 서서히 멀어지고, 매일매일 배는 불러온다. 아이가 태어나면 하루종일 곁에서 돌봐야 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새 혼자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인지하게 되자, 어머님께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당신께서는, 나 때문에 당신의 젊음을 희생하셨구나 하는. 나로 인해 당신의 찬란한 시절을 흘려보냈구나 하는 그런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렇게, 난 어머니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