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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BRIDGE Aug 22. 2016

무비 브릿지 - 빅 피쉬

결국 우리가 믿는 것이 진실이다.

 요즘 커뮤니티의 활성화로 많은 이야기들이 올라오고 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수많은 이야기꾼들이 자신의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그 썰들은 또 다른 사이트들로 퍼져 나간다. 그런데 개중에는 "조작 아니냐" 며 의심받는 경우도 많고,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저게 정말 진실일까?" 라는 의구심들은 계속해서 샘솟는다.

최근 올라왔던 썰의 마지막. 작성자는 계속되는 조작 의심과 악성 댓글로 중간에 글을 끝내 버렸다.

 팀 버튼의 영화 "빅 피쉬"는 이런 대립구도를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이다. 똑같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아버지와 아들이지만, 둘이 그것을 전하는 방식은 다르다. 아버지는 "재미"를, 아들은 "사실"을 추구한다. 이는 아마 외판원과 기자라는 두 직업의 차이 때문이리라. 아들은 늘 사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야기만을 하는 아버지에 질려 있으며,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태도에 의기소침해진다.

 영화는 처음부터 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들이 태어나던 날, 큰 물고기를 잡았다는 이야기. 자신의 결혼반지를 미끼삼아 잡았다는 그 이야기는 얼핏 태몽처럼 들린다. 아들은 이런 꿈 같은 이야기를 사실인 양 매번 반복하는 아버지에 질려, 크게 싸운다. 그리고 그 둘은 아버지의 임종 직전까지 단절된 채 살아간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이안 감독의 2012년작 <라이프 오브 파이>가 그것이다. 두 영화의 주인공은 똑같이 환상적인 모험을 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은 것을 전해 준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사람들이 주인공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어 주지 않는 것까지도 똑같다. 거인과 낙원, 늑대인간 이야기도, 호랑이와 함께 대양을 건너 온 이야기도 사람들에겐 허풍일 뿐이다. 상식적인 반응이다. 거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 있는가? 어린 소년이 호랑이와 함께 태평양을 건넜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 있는가? 기껏해야 잘 꾸며 낸 판타지 취급을 받을 것이다.

 앞서 적었던 인터넷 "썰"들도 그런 식의 불신에 휩싸인다. 작성자는 본인이 겪은 가장 극적인 이야기를 쓰고, 그것은 자연스레 현실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야기가 된다.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해 봤자 남들도 다 아는 이야기니깐. 그것만으로는 특별한 "썰"이 되기는 어려우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썰들을 일상 속의 판타지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야 할까? 그 답은 역시 영화 속에 담겨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중반부에 등장한다. 아침식사를 하고, 아들은 다시 한 번 아버지와 언쟁을 벌인다. 초반부에 아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요(I wanna know the true version of things.)" 라고 하지만, 이번에는 보다 직접적으로 "제게 단 한 번도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잖아요(You never told me a single fact.)"라고 말한다. 그 언쟁 이후, 아들이 집 수영장을 청소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말했던 '빅 피쉬'가 수영장에서 나타나는 듯한 환영을 본다. 그 뒤로 아들은 창고를 정리하며 아버지의 삶에 대한 증거들을 찾게 된다. 아버지가 닳고 닳도록 하셨던 이야기 속의 그 물고기를 본 듯한 착각에 빠지는 그 장면은, 아들이 어느 새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 뒤로 아버지께서 걸어오셨던 발자취에 대한 증거들이 하나둘씩 나오게 되고, 아들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전부 꾸며낸 것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아들이 사실(fact)를 요구하자마자 집 창고에서 그것을 증명하는 물건들이 나온다. 아버지가 판매하셨던 가제트 만능 손이라든가, 입영 통지서라든가, 지니라는 여자에 대한 기록들까지. 그리고 지니를 찾아 간 한 마을에서 아버지의 역사 중 일부를 듣게 된다. 본인이 낙원이라 표현했던 스펙터 마을은 실존했고, 죽어가던  그 마을을 되살린 사람이 다름아닌 아버지였다는 것을. 그리고 동시에 아버지가 하셨던 이야기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된다. 본인의 죽음을 미리 보았다던, 마녀를 만났을 때의 그 이야기에 대한 힌트를 말이다. 아버지가 말하던 마녀는 다름아닌 그를 쫓아다니던 어린 소녀 지니였다. 결국 허무맹랑하게만 느껴졌던 마녀 이야기도, 약간의 사실 위에 '아버지의 방식'대로 양념이 쳐진 것이었다.

그녀가 마녀라는 것을 알고, 헬레나 본햄 카터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 집에 돌아온 아들은 아버지가 보다 위독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으로 달려 간다. 그 곳에서 주치의의 입을 통해 자신이 태어난 날에 있었던 "사실"을 전해 듣는다. 그리고 의사가 던지는 뼈 있는 말 한 마디. "어느 쪽을 믿고 살겠나? 아버지의 이야기?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 그리고 머지 않아 아버지는 일어나서 본인이 어떻게 죽는지 알려달라고 한다. 본인이 마녀의 눈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의 일생에 어울릴 법한 멋진 마무리를 전해 준다. 마치 연극의 커튼콜처럼. 아버지의 이야기에 나왔던 모든 인물들이 그를 반기고, 그들과 함께 평생을 이어 온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그리고 아버지는 곧 그 이야기 속으로 되돌아간다. 그의 삶은 이야기로 가득 찼고, 마찬가지로 한 편의 소설처럼 끝이 난다.

 아버지의 임종 이후,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그 곳에서 아들은 다시 한 번 아버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는 거인도 있었고, 샴 쌍둥이로 묘사되었던 쌍둥이 자매도 있었다. 그리고 월가에서 떼부자가 된 시인과 서커스 단장도 있었다. 그렇게 주인공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단순한 허풍이 아닌, 아버지의 인생을 더 풍부하게 해 주었던 당신 나름의 역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터넷 썰에서도, 그리고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서도, "조작"이냐 아니냐, "대본"이 있냐 없냐는 늘 뜨거운 감자이다. 사람들은 마치 기자가 된 양, 사실을 내놓으라며 추궁한다. 하지만 사실을 안다고 해서 만족할 수 있을까? "무한도전"이나 "런닝맨"이 사실은 대본이었다고 밝혀지면, 그 뒤로도 우리는 그 방송들을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 만약 모든 인터넷 썰들이 기사문처럼 사실만을 적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흥미롭게 볼까? "어쩌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연인이 되어 있었다." 같은 흔해빠진 그런 이야기를?

 결국 진실은 그것을 믿는 사람의 몫이다. 같은 이야기라도 누군가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삼 년간 고생한 남자의 이야기를, 또 누군가는 평범한 연인처럼 만나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를 믿을 것이다. 두 가지 이야기 중, 마리앙 꼬띠아르의 말처럼, 더 "로맨틱"한 진실을 고를 지, <라이프 오브 파이> 에서 파이가 말한 두 번째 버전 같은 극도로 현실적인 모습의 진실을 고를 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삶의 이야기는 그 진실들로 만들어진다. 당신은 어떤 진실을 믿고 싶은가? 그리고 그렇게 선택된 진실들은 어떤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가?


 총평: 팀 버튼 감독의 아름다운 판타지. 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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