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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BRIDGE Aug 24. 2016

무비 브릿지 - 스포트라이트

빛을 밝혔을 때, 우리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때때로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하는 그런 순간들. 우리의 믿음을 산산히 부수고 짓밟아서, 이걸 믿으면 내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사건들이 벌어진다. 가깝게는 세월호 사건이 있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IMF나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 사건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건들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설마 멀쩡한 배가 침몰하겠어","설마 나라가 돈이 없어서 망하겠어" 와 같은 믿음들 때문이다. 굳건한 믿음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더 큰 충격을 받는다. 믿음들로 이루어져 있는 본인의 세계 자체가 무너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큰 책임 역시 갖게 된다. 우리는 배를 타면 선장을 믿고, 학교를 다닐 때에는 선생님을 믿는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나라를 믿는다. 그래서 선장과 기장은 승객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 책임이 있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올바르게 이끌고 지켜 줄 책임이 있으며,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우리의 세계는 온전할 수 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이런 무책임의 연쇄로 개인들의 세계가 무너진 모습들을 보여 준다. 성직자들은 어린 교인들을 성폭행하고, 교단은 이미 자정 작용을 잃었다. 그리고 그것을 감시해야 할 변호사와 언론도 사건을 본체만체할 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이 믿었던 신앙으로부터, 법 체계로부터, 그리고 언론으로부터 세 번 배신당한 개인들은 무너져 내린다. 영화에서 피해자 중 하나인 필 사비아노는 스스로를 '생존자' 라고 부른다. 산산조각이 난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실제로도 피해자 중 상당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에, 이런 '생존자'라는 명칭은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개인을 처참하게 무너뜨린 무책임들은 사실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처음 성폭행을 저지를 성직자들만 제대로 처벌했더라면 피해자들은 그렇게까지 추락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단은 두려웠던 것이다. 이로 인해 교단의 세계가 무너질까 봐. 이미지가 실추될까 봐. 그래서 사건을 은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법조계와 언론계가 느낀 두려움의 성질은 조금 다르다. 변호사들도, 기자도 결국엔 '교인'들이었기에, 본인들이 믿던 대상이 그토록 타락했다는 것을 쉽사리 납득하지 못한다. 그렇게 본인의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동시에 교회의 영향력으로 받을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도 느끼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두려움을 느낀 이들은 마치 한 마리 타조처럼 불을 끄고, 사건을 잊어버린다. 실제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말이다.

두려움을 느끼면 머리를 땅에 박고 외면해 버리는 타조들

 하지만 이 영화가 진정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무책임'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참으로 너그럽게도, 영화는 우리가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해 준다. 비록 어리석은 행동이었을지라도, 두려움에 불이 꺼진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는 실수할 수도 있다고 말해 준다.

영화는 이렇게 소시민의 실수를 쿨하게 눈감아 준다.

 영화는 이들에게 불을 켜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영웅들의 일이니까. 나약한 소시민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사회의 압박을 이겨내고 불을 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깐 말이다. 다만 영화는 당부한다. 누군가 와서 불을 켜고,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지 알려 줬을 때, 그것을 외면하지 말라고. 그 때에는 올바른 길을 걸어 달라고 말이다.  


총평: 침묵하던 우리에게 불을 켜 주는 영화.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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