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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BRIDGE Feb 27. 2018

할머니의 감주, 어머니의 식혜

    어릴 적, 나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품에서 자랐다. 가정에 큰 불화가 있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두 분 금슬이 너무 좋았던 탓에, 두 분은 종종 나를 외가댁에 맡기고 여행을 떠나곤 하셨다. 게다가 나 역시도 외할머니를 너무도 잘 따랐던지라, 그저 인사차 외가댁에 들렀다가도 내가 여기서 자고 갈 거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좁은 차 창문을 비집고 기어나와, 할머니 품에 안기고, 다음날 당신의 손을 꼭 붙잡은 채 지하철로 집에 가곤 했던 어린 시절이 아직도 생생히 그려진다.

    내가 외가댁을 그리도 좋아했던 이유는, 비단 똥강아지라고 불러 주시며 안아주던 할머니의 품 때문만은 아니었다. 할머니께선 겨울이면 늘 식혜를 직접 만들어 나에게 주곤 했다. 쌀알이 둥둥 떠있던 그 달짝지근한 식혜. 당신께선 늘 '감주' 라고 부르시는 그 음료수. 그 음료수가 너무도 맛있어서 외가댁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낡은 연립주택에 빛 바랜 세피아가 도착하면, 나는 제일 먼저 문을 박차고 나와 할머니 품에 안기곤 했다. "할머니, 감주!" 라고 외치며. 손주란 녀석이 인사도 하기 전에 감주부터 찾는 모습에 쓴웃음이 지어질 만도 하건만, 당신께선 뭐가 그리 좋은지 늘 함박웃음으로 감주를 퍼다 주시곤 하셨다.

    두 삼촌이 결혼을 늦게 하신 탓에, 한동안 할머니의 유일한 손주였던 나는 늘 귀염받는 응석받이였다. 김치가 맵다며 떼를 쓰는 나를 위해, 김치를 하나하나 물에 헹궈 내 수저 위에 올려 주던 당신. 편식쟁이 손주놈을 위해 꼭 하나씩은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드시던 할머니. 요샌 머리가 컸다고 자주 찾아뵙지도 않고, 가봤자 할머니께 등을 돌린 채 늦둥이 사촌동생들이나 데리고 놀고 있는 손주이지만, 그래도 외가댁에 갈 때면 할머니께선 늘 감주를 챙겨 주신다.


    그런데 올 겨울부터 어머니께서 할머니에게 식혜 만드는 법을 배우신 듯 하다. 원래라면 외가댁에 가서 감주를 얻어올 법한 때인데, 어머니께선 밥솥에 물엿과 쌀을 풀고는 직접 식혜를 담그셨다. 맛이야 뭐 식혜가 그렇듯 달짝지근하고 시원했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묘했다. 베란다에서 퍼온 살얼음 동동 띄워진 감주가 아니라, 김치냉장고에서 꺼낸 얼음 없는 식혜라니. 물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식혜를 홀짝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켠이 찝찌름한 이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사실 외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계시다. 할아버지께서는 몇 해 전부터 보청기를 끼기 시작하셨고, 할머니께서는 관절이 약해지신 탓에 매일 약을 복용 중이시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우리 가족이 찾을 때면, 누구보다도 푸근하신 미소로 우리를 반겨 주신다. 어머니의 식혜도 물론 맛있지만, 난 아직까지는 할머니의 감주가 조금 더 먹고 싶다. 되도록이면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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