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가장 행복한 사람은 모래사장에서 막 모래성을 쌓은 어린아이라고 하죠. 그러나 그 아이가 옆의 큰 모래성과 자신의 것을 비교하는 순간 그 아이는 매우 불행해집니다.’
좋아하는 저자이자 정신과 전문의 김혜남 선생님은 <당신과 나 사이>에서 언급된 이 비유를 통해 장 폴 사르트르의 인간관계론 핵심 ‘타인은 지옥이다.’를 잘 어필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행복은 무언가 간절히 염원하거나 색다른 것을 해야 생겨나는 것이기보다는 먼지 속에 이미 파묻혀 있는 것을 탈탈 털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매일 약을 챙겨 먹으며 생각했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걸까.’ 계속 생각하며 되뇌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지? 무엇으로부터 시작됐지?’ 내 평범한 삶에 있어 문제 될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 시작은 모순적이게도 기쁜 순간으로부터 찾아왔거든요.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환경의 직장에 취직하게 된 것입니다. 매우 기뻤어요. 부모님도 자랑스러워하셨거든요. 나 자신도 만족했는데 슬퍼할 시간이 어찌 있었겠어요.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함께했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과 한 만남이었습니다. 시간을 흘려보낼수록 힘들었지만 버텼습니다. 사실문제는 시간이 아닌 만남이었어요. 한 만남으로 인해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감정은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기분을 갉아먹었습니다. ‘왜 이렇게 힘들지?’ 내 성격이 예민한 편이라고 생각하고 꾹 누르며 살았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감정 기복이 심해졌고 아주 예민해져서 잠 못 자는 날이 늘었습니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얘기를 들어도 유효 기간이 짧았거든요. 회사에서 회의를 하는데 가슴이 가빠오고 숨쉬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회의 도중 숨을 쉴 수가 없어 뛰쳐나오기도 했고요. 믿기 어렵겠지만 정신의 문제가 신체의 문제로 발현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말을 걸기라도 하는 순간엔 온몸에 식은땀이 났고, 두려웠어요. 심장 박동이 제멋대로 뛰고 수전증이 생겼습니다. 식욕부진으로 살이 여위어 갔습니다. 정신과는 무서운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나를 살려야만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는 ‘어디가 힘들어서 왔어요?’였고 이 질문을 듣자마자 40분을 울었던 것 같습니다. 진료 후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화장실 거울을 통해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언젠가 웃으며 상담받을 날이 올까?’
치료를 받아 온지 반년이 훌쩍 넘었어요. ‘우울’이라는 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감정이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질환이라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는 말에는 공감하지 않습니다. '우울증'을 겪어보면서 이토록 떨쳐내기 어려운 질병이었나를 깨달았거든요. 우울이라는 감정에 지지 않기 위해 생각할 것은 먼저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입니다. 그런 행동이 내겐 결여되었고 신물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매일 울기 시작했고 많이 아팠습니다. 미숙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문제가 많았을 뿐이었죠. 내 인생을 신뢰할 수 없었고 믿음이 사라졌으며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괴로웠어요. 이게 맞는 선택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끝에 도달했음에도 내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고 계속해서 추락했어요. 모두가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 내겐 힘들게만 느껴졌고 행복이란 찾을 수 없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나는 시종일관 불안에 휩싸여 살았습니다. 직장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가 터지는 날은 하루하루가 끔찍한 공포 같아,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진정이 안 되었고, 다음날 이 세상에서 내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만들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내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상상을 매일 했고, 이대로 불의의 사고가 어디선가 나타나기를 바랐습니다. 물론 다들 힘든 사회를 살아가고 있겠지마는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20대 후반을 보냈습니다. 엄마는 언젠가 내게 사랑은 놓아주는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할지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망상이 컸습니다. 이 마음을 조금만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었더라면……. 지금쯤 나는 괜찮았을까. 어쩌면 화목한 가정과 우정에 대한 소중함을 잊은 채 혼자만의 힘든 시간을 보내온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곁에 있었고, 큰 힘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런 불안정한 시기에 신뢰가 무엇인지 보여준 사람. 내 곁을 바라봐 주고 말없이 지켜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나만의 진정한 안식처가 되어주었습니다. 나의 상처는 이들로 인해 보듬어졌습니다. 나의 소중한 친구들,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나만의 한 사람에게 온 마음을 담아 이 이야기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