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책은 ‘소재’입니다. <디어 리더> 임유진 저자는 “책은 나를 바꾸는 도구.”라 하였습니다. 소재가 모여 구조가 된고 구조는 요소 전체를 만듭니다. 그것들은 구절을 만들어 문장을 모으고 문단을 형성합니다.
‘소재’는 육하원칙인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같은 것은 하나 없습니다. 누군가 느꼈을 그 똑같은 감정을 다른 누군가는 다르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소재’입니다. 본인은 본인만의 삶이 있듯 이야기를 그리는 ‘소재’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글, 그림, 영상, 대화 등 다양한 매체로 남기는지, 나의 영원한 기억 속에 남기는지. 무엇으로 남기는지는 상관없습니다. 선택한 그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나는 그 선택을 ‘글’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글’은 나를 자극시키고 삶을 공부하게 하며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소재’에 어떻게 정리하여 담아낼 것인가. 아니 그것보다 스스로 만족스러울 수 있을 만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책을 읽는 건 좋아하지만 한 번도 내 생각을 담아본 적 없는 나에게 쓴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도전으로 삶의 배움을 느끼고 감응하기를 바랍니다.
나의 세계는 김아타의 ‘온에어 프로젝트’로부터 영감을 받아 시작했습니다. 비록 사진은 아니지마는 멈추어진 무엇인가로부터 만들어 보관하고 싶었습니다. 김아타가 갖고 있는 철학은 알게 되면 작품을 보는 내내 현황(眩慌)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김아타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에 대한 진리는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자신의 것으로 흡수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라는 진리는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볼 법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지므로, 당연하게 갖고 있는 자연 불변의 법칙이니까 말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생각해볼 수는 있어도 절대로 김아타처럼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해 낼 수 없을 겁니다.
김아타의 ‘온에어 프로젝트’ 중 미국 뉴욕 타임 스퀘어 거리를 보면 이 사진은 필름 한 컷에 8시간 동안 노출을 줘서 촬영을 한 작품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들도 결국 사진 속 도로 위의 잔영처럼 한 귀퉁이로 사라져 가는 먼지 같은 존재(종언의 허무)라고 작가의 철학은 말합니다. 그는 움직이는 모든 것을 없애버리면서 개인에서부터 아울러 역사까지 중요한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시각적 효과를 얻었습니다.
본명은 김석중인데 “나는 너와 동등하다”는 의미를 담아 아타(我他)라는 예명을 지었다고 합니다(참고). 그의 작업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존재하고 사라지는 것들의 경계를 지워버림으로써 권력과 신화와 이데올로기를 무화시키는 작업입니다.
김아타가 서양에서 무명에 가까울 때 있었던 일입니다. 2006년 뉴욕 타임즈지가 전면을 할애해 사진작가 김아타의 작품에 대한 기서를 대서특필했습니다(참고). “지극히 참신한 철학”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2006년에는 세계 최고의 사진 미술관인 뉴욕 ICP(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에서 동양인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던 그가 아닙니까(참고).
ICP는 세계적인 작가에게만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세상에는 이렇듯 작품을 잘 찍고 잘 만들어 내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들을 통해 탄생되는 작품들은 무수히 많고 지금도 탄생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품 속에 갖고 있는 ‘독창’과 ‘철학’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신념인 것입니다. 삶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있어 신념이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성장은 어릴 때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성인이 된 지금의 나는, 무엇인가로부터 성장을 하지 않으면 치열한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사회는 지금, 신념이 아닌 껍데기를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어버린 걸까요. 모두가 똑같은 방향. 개성 없는 삶은 잿빛 먹구름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더 편하고 안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적어도 내 삶에서 궐언된 타인들 속에서 살아남고 싶습니다.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모순의 행동들이 능동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바로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을 먼저 기억하지, 두 번째로 내디딘 버즈 올드린은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4등>은 천재적인 수영 재능을 가졌지만 대회만 나갔다 하면 4등을 벗어나지 못하는 어린 준호의 이야기입니다. 1등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의 닦달에 못 이겨 준호는 새로운 코치를 만나게 됩니다. 코치 ‘광수’는 엄한 체벌로 아이를 다스리는데, “맞아서라도 1등만 하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엄마와 “맞아서라도 1등을 꼭 해야만 하냐.”는 아이. “때리는 스승이 진짜”라는 코치와 갈등 이야기를 다루면서 현대 사회의 비판적인 메시지를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어떤 대회를 나가든 목적이 있는 시합에 나가면 누군가는 4등을 해야만 하는데 오로지 1등을 강조하는 사회를 보여줍니다. 1등 아닌 다른 등수는 박수조차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1등이 최고다라고 말하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 오류입니다. 옆에 있는 아이를 짓밟아 올라가야 하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이상한 취급하는 이 현실에서 그렇게 옆의 친구가 아픈지, 행복한지 모른 채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가공된 절박함이 만들어낸 현대시대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삶의 결정적 주체는 코치도 아니고 엄마도 아닌 오롯이 자신의 의지입니다. 지식은 넘치고 지혜는 부족한 오늘의 세태에서 올바른 마음을 깨달아 삶의 주체를 바로 자신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자신의 주체가 되기 위해선 누구의 강요도 아닌 스스로 하고자 하는 열정을 깨달았을 때, 힘들기만 했던 그 순간들이 즐거워질 것이고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제야 나 자신만큼은 순위가 인생에 크게 중요치 않다고 깨달았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것은 목적이 있는 행위가 아니라 신념 키우기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행위는 아무나 선뜻 쉽게 할 수 없는 특별함으로 여겨집니다. 사진가만 사진을 찍어야 하고 미술가만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인가요. 진정 정통한 자들만 행해야 하나요? 예술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을 실천해 내는 것입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운동을 하고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 자신의 한 번뿐인 인생을 살면서 해보고자 하는 그 행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각자 삶을 창조하는 예술가입니다.
‘예술’은 일상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당신은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