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해서 더 아름다운
영화 <로즈마리 베이비>에서 자신의 아내를 악마의 씨받이로 팔아먹은 남편이 있다.
그 별볼일 없는 남편 역할을 한 이가 이 영화의 감독, 존 카사베츠이다.
그 영화에서 그는 존재감이 참 없었다. 참 무기력한 가장으로 그는 분했었다.
그랬던 그가 이 영화를 연출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 이유는 말미에 언급하겠다.
이 영화, '영향력 아래 있는 여자'는 제목부터가 묘하다.
도대체 무슨 뜻인 건가?
하지만 이 모호한 제목이, 특히 그 모호한 대상이 '여자'라 더 끌렸다.
영화는 무려 2시간 30분에 이른다.
이 긴 영화가 지루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영화의 내용이 계속 머물러 있기 때문이었다.
뭔가 위태롭지만 이야기는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영화의 내용은 이러하다.
세 아이의 엄마, 메이블은 정신적으로 불안하다.
이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남편 닉의 친구들도 이 사실을 수시로 언급한다.
이 영화 도입부에 미치도록 훌륭한 장면이 바로 닉의 친구들과 메이블이 식사하는 장면.
영화를 봐야 이 식사 장면의 진면목을 알 수 있음으로 설명은 생략하겠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메이블은 결국 정신병원에 보내지고,
6개월 후 퇴원을 한다. 그리나 그녀는 기대와는 달리 전혀 나아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끝나는 영화다.
이 지루한 영화를 꾹 참고 보면서 궁금했다.
'도대체 이 영화는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그리고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였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소름이 돋았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을 영화의 엔딩이었다.
이 영화는 결국 아버지인 가장과 소통이 되지 않는 딸,
남편인 가장과 말이 안 통하는 아내의 이야기였다.
정신병원에서 나온 아내가 농담을 하자,
남편은 호통을 친다.
농담을 하지 마라. 그저 평범한 날씨 이야기는 안부를 물으라고 윽박지른다.
이 부분에 오면 남편이 더 정신이상자 같다.
(정신이상자 같은 가장이지만 끝임없이 지치지 않고 가족을 보살핀다)
그러자 아내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자기 편이 되어달라고 애원한다.
Would you please..... stand up for me? 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그냥 일어나라는 얘기로 알아듣는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런 장면인가?
딸은 지금 아버지를 향해 자신이 편이 되어달라고 애원하는데,
아버지는 그저 일어나 있다니.
거기다 남편은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아내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녀의 농담에 한 번도 웃어주지 않는다.
그녀의 농담 후엔 그의 호통이 이어질 뿐이다.
이쯤되면 이 모호한 영화의 제목이 매우 심플한 제목이었을 알겠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이들 부부가 사랑하지 않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이 지점이 이 영화의 놀라운 지점이다.
정신병원에서 아내가 돌아온 날도 이들 부부는 전쟁과도 같은 일상을 치뤄낸다.
그리고
모든 이가 돌아간 집안에는 이들 부부만이 남아있다.
(모든 이가 가고 아이들을 재우는 장면마저 전쟁영화의 한 장면 같다)
허리케인이 휩쓸고 간 것 같은 집안에 부부만 남은 것이다.
이들 부부는 조용히 집을 정리한다.
식탁을 닦고,
테이블 위치를 제자리에 갖다 놓고,
그렇게 묵묵히 집정리를 하던 이들이 웃는다.
이들은 곧 섹스를 할 것이다.
그 난리를 겪은 이들 부부가 웃으며 침대정리를 하는 장면에서 나는 소름이 돋는다.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완전히 뭉개져있다.
대신 실랄하게 70년대 미국 가정을 헤집어 통찰한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가 바로 <로즈마리 베이비>에서 존재감 없는 가장 역할의 존 카사베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