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8일 일 _ 2021년

by 이게바라

비 온 뒤 갬



나는 꿈이 없었다.

당연히 되고 싶은 것도.


어른들이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도 얼버무리거나 모른다고 대답하기 일쑤였다.

그런 내게 아이들은 직업군 중 하나를 추천하고는 했다.


“너 개그맨 해라”


믿거나 말거나 나는 웃기는 아이였다.


중학교 때 일이다.

집에 가는 나에게 같은 반 아이와 다른 반 아이가 함께 뛰어와 내 앞을 가로막는다.

나를 가로막은 아이들이 불쑥 내게 내뱉었던 한 마디는,

“웃겨봐!”


고등학교 때 이런 일도 있었다.

나의 책상은 짝꿍도 없이 외딴섬처럼 떨어져 있었다.

왜 그랬을까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수업시간에 반복적으로 까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으로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고는 했다.

일테면,

왜 지각을 했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지하철이 빵구가 나서요.”라고 답을 해서 반 아이들을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그 일로 선생님에게 실컷 맞았지만, 애들을 웃겼다는 희열에 아픈 줄 몰랐다.

그 일이 보태졌는지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인지

다른 반 아이들이 나를 구경하러 온 적이 있다.

그때 내 별명은 <왕사이코>였다.

우리 반 아이가 다른 반 아이한테 나를 가리키며,

“쟤가 왕사이코야.”라고 했던 기억.


역시 고등학교 때 일이다.

일진이 나를 불렀다.

여자애들과 미팅이 있는데 나도 함께 가자고 했다.

신촌 어딘가에 있는 카페라는 곳에서 여자애들을 만났다.

나는 카페라는 곳을 처음 가봤다.

카페 가기 전에는 시간이 남아 당구장도 갔다.

그날 나는 당구장도 처음 가봤다.

그때 만난 여자애들이 하나 같이 너무 예뻤다.

나는 그 미팅 장소에서 단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일진 패들과 다시는 어울리지 못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나는 오락부장을 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오락부장을 한 적이 없다.

오락부장이었던 나는 개그를 짜야했다.

홀로 나가 웃겨야 하는 시간.

하지만 난 전혀 웃기지 못했다.

나의 할아버지가 적어준 대본을 읽은 기억이 혹은 그것조차 못 했던 것 같기도.

나는 집에 가서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심하게 울었더랬다.

그 이후로 오락부장을 한 적이 없다.

시켜준다고 해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수업시간에 헛소리 찍찍해대며 수업 분위기를 망가트리는 것에 만족했다.


그런 나였기에

아이들이 ‘개그맨’을 하라고 권해도 감히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헛소리를 찍찍해대며 수업시간에 지친 아이들을 웃겼던 그 시간이 나에겐 화양연화였던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영화를 하고 싶었던 본질이 거기에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헛소리 찍찍해대며 웃기고 싶었던 작은 욕망이 너무 멀리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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