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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게바라 May 22. 2022

3월 23일  수 _ 2022년

무려 러닝타임이 5시간 28분인 영화. 

거기다 제목은 천연덕스럽게 <Happy Hour 2015> 라고 합니다.  

과연 이 영화를 5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들여가며 볼만한가? 그 시간이 정말 ‘행복한 시간’인가? 

이 영화를 하루에 다 보지 못하고 몇 번이고 졸기를 반복하다가 오늘에야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감독이 궁금해집니다. 

감독은 하마구치 류스케. 

뭐지? 이 사람. 

그러고 보니 이 감독에게는 감독보다 사람이라는 호칭을 쓰게 되네요. 

이 감독은 영화와 일상. 감독보다 사람.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 같습니다. 

영화는 수단일 뿐, 그는 하고 싶은 얘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가 하고픈 얘기는 - 한 편밖에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나 <해피아워>를 보면 '관계'에 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친절한 장면이 있는데요,
그 장면은,  네 친구가 함께 놀러 가서 폭포 앞에서 사진을 찍는 장면이 있습니다. 물론 이 장면 이후 서로의 이름을 다시 말하며 소개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지만 제가 뽑고 싶은 장면은 그녀들의 사진을 찍어준 여인. 이름이 '폭포'라서 폭포를 보러 여행 다니는 여인을 다시 만나는 장면입니다. 그녀는 준과 버스에서 다시 재회하죠. 그 장면에서 그녀는 준에게 자신의 아버지 얘기를 합니다. 거짓말을 일삼았던 자신의 아버지 얘기를 털어놓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거짓말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살아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저는 이 거짓말이 실은 관계 속에서 늘 통용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에게도 이런 거짓말은 늘 하게 됩니다. 이런 거짓말은 어떤 상황을 거짓으로 꾸며대는 데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이 거짓말에 포함됩니다. 일테면 자신의 감정이 상대방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 것 같아서, 혹은 자신의 감정이 드러나면 상대가 자신에 대해 실망할까 봐서 등.

마치 딸에게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는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그 뜻은 좋은 의도였으나 그것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버리면 건널 수 없는 관계의 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관계 속에 ‘해피아워’의 주인공들은 관계의 파국을 맡게 되는데요, 이 영화의 파국은 관계의 수면 아래에서 수줍게 일어납니다.

맞아요, 실제 우리네 관계 속에서의 균열은 서로 상처 주지 않으려 조심하면서도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파국의 발화지점이 여느 영화와는 완전 다른 곳이라는 것이 참으로 새롭습니다.

새롭지만 진짜이니 그것이 이 긴 러닝타임을 지탱해주는 힘입니다.    

  

어쩌면 그의 화법이 ‘영화’라는 수단이 썩 어울려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차피 이런 유별난 감독은 그로 족할 것이기에 참으로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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