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당 신드롬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지금부터 제가 최근에 경험한 ‘스탈당 신드롬’ 썰을 풀려고 합니다.
혹은 제가 경험한 그것은 ’스탈당 신드롬‘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스탈당 신드롬이란 <적과 흑>의 작가 스탈당이 피렌체에 갔을 때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지’의 초상화를 보고 심장박동 수가 빨라지고 현기증이 나는 증상이라고 하는데, 혹자는 ‘귀도’의 그림이 아니라 ‘조토’의 프레스코화를 보고 그랬다고도 하는데요.
스탈당이 무엇을 보고 그랬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예술작품을 통해 누군가의 잔잔한 호수 같던 감정의 물결이 거대한 해일이 된다는 겁니다.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내면에 뭉쳐있던 감정이 인간의 외피를 뚫고 나오는 느낌, 그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의 파동 말이에요.
며칠 전에 느꼈던 ‘그것’은 그렇게 강렬한 에너지는 분명 아니었습니다만,
저는 그 순간 느꼈던 '그것'을 토대로 분명 뭔가를 내 안에서 뽑아냈습니다.
아니, 내 속에서 게워냈다는 표현이 어울리겠습니다.
며칠 전 느꼈던 '그것'은 스탈당 신드롬과는 시작부터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스탈당 처럼 그림을 처음 목도한 순간이 아니라, 익히 알던 것을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혹은 안다고 생각한.
며칠 전 제게 ‘그것’을 경험하게 한 익히 알고 있던 그것은,
바로~
왕가위!
그가 20세기에 만든 영화들입니다.
스탈당 신드롬이라 추정되는 ‘그것’은 저에게 이런 증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익히 알고 있는 왕가위의 영화를 무척 오랜만에 다시 보는데.....
음 ‘그것’은 처음에는 저에게 메슥거림으로 발현되었습니다.
미식미식.. 속이 울렁거리고, 자꾸 소름이 돋고.... 갱년기의 증상과도 겹치는 건지 눈시울이 붉어지다가는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갑니다. 급기야 왕가위 영화에 연신 피어오르는 담배연기에 기관지까지 간질거립니다.
종내에는 고등학교 시절 배운 이래 피우지 않던 담배까지 피우며, 영화 보는 내내 술까지 마시며 그의 영화를 봐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막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가 아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온몸을 감도는 감정의 동요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제껏 뿌연 안갯속에 형체만 보였던 ‘그것’의 실체를 확실히 보고 말았습니다.
자, 이제 ‘그것’으로 알게 된 ‘그것’의 실체를 설명해 나가겠습니다.
그전에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제기 미친 영향에 대해 조금은 설명하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저는 실은 이미 왕가위를 걷어찬 지 오래되었습니다.
걷어찼다고 과격하게 표현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를 몹시도 추앙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맞아요. 왕가위, 그는 한때 쿠엔티 타란티노 옆자리에 당당히 앉아있었습니다.
그래요, 영화감독을 꿈꾸던 제가 표상으로 늘 염두에 두었던 감독님이 이 두 분의 감독님이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그리도 몹시 추앙했던 이 두 감독님을 왕가위의 영화를 빌려 설명하겠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마지막 영화로 – 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 - 2013년도에 공개된 <일대종사>에서 장쯔이가 분한 궁이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수련하는 무인에게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첫 번째는 자기를 보고, 천지를 보고, 중생을 보는 단계.
난 자신을 봤고, 천지를 봤다고 할 수 있지만 중생은 보지 못했다. 마지막 길은 끝까지 못 갔다. 당신은 가길 바란다.‘
여기서 ’당신‘은 양조위가 분한 엽문입니다. 혹은 왕가위를 추종하는 후배 감독들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든 말든 이 대사로 적절하게 왕가위와 쿠엔틴 타란티노를 설명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일대종사>의 톤으로 이어서 얘기하자면,
두 감독의 색깔은 사뭇 다르지만 둘 다 ’영화‘라는 보검을 기가 막히게 쓰는 협객입니다.
그 솜씨가 감히 천지에 가닿았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달리 어떠한 수사로도 그들의 무예를 형언할 말을 찾기 힘듭니다.
하지만 이들의 무도는 중생에 닿지는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이들의 기예는 분명 한계가 있어요. 혹은 그들의 기예는 애초에 중생을 향해있지 않았습니다.
왕가위 감독은 그것을 뒤늦게 알았던 겁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었던 거죠.
자신의 이미지의 원천이었던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방황하던 왕가위는 <일대종사>를 끝으로 더 이상 영화를 찍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였던 80년대 말에서 90년대로 넘어서는 시대의 홍콩이 아닌! 상하이를 무대로 무려 30부작짜리 드라마를 연출했습니다. 허나..... 저는 다 보지 않고 고개를 돌려 외면했습니다.
그에게 30부나 되는 드라마는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 초식입니다.
원래 그가 추구하는 초식은 이런 초식이었습니다.
기존에 없던 초식, 아무도 하지 않는 초식, 대본도 없이 영화를 찍는다는 듣도 보지 못한 초식, 이런 독특한 그의 제작 방식이 전설이 되어 회자되던, 낭만이 가득하고 홍콩 영화가 아시아를 넘어 한 시대를 주름잡던 그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되짚어 보면 왕가위 영화는 그런 방식으로 찍은 테가 역력합니다.
근데 멋들어진 음악과 이미지가 결합되면서 왕가위 특유의 내러티브를 구현합니다. 그러니까 비어있는 내러티브에 음악과 이미지가 메꿔지면 관객은 알아서 자기 감성으로 그 공간을 채워가는 식인 겁니다. 거기에는 반환을 앞둔 불안한 홍콩의 분위기 한몫했음은 물론입니다.
이 같은 제작 과정이나 감성은 홍콩 누아르 같은 호방한 남자 영화가 득세하던 그 시절 홍콩에는 없는 감성이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게 오로지 왕가위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거였습니다.
얘기가 길어지겠지만 왕가위 영화들을 얘기 안 하고 넘어갈 수 없겠네요.
때는 일천구백팔십구 년. 21세기에 태어난 세대에게는 호환마마가가 무서웠던 시절로 기억할 텐데요, 어찌 되었든 그 해 대한민국에서는 두 명의 감독 데뷔작이 개봉을 하게 됩니다. 이 두 감독은 훗날 스타일리시한 비주얼의 대명사라 칭송받게 되는데요, 그 한편이 왕가위의 <열혈남아>입니다. 다른 한 명의 감독님은 <개그맨>의 이명세 감독입니다. 이명세 감독님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한 보따리지만 잠시 넣어두고,
<열혈남아>!
우리는 이 영화를 한 장면으로 기억합니다. 그 장면이 이른바 ’포장마차 신‘으로 불리며 전설의 시작점이 되는 장면입니다. (제가 유튜브에 영상을 찾아봤는데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쩜 이제는 너무 옛날 영화가 되었나 보네요.) 하지만 아직은 왕가위의 진면목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영원의 짝인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을 만나지 못했고, - 이때 촬영감독은 유위강입니다. 훗날 <무간도>의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만 <무간도>는 맥조휘가 진짜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튼 <열혈남아>는 왕가위가 일단 감독 데뷔를 위해 홍콩 누아르의 외피로 자신을 감춘 영화입니다. 왜냐하면 왕가위는 실은 이런 얘기, 정확히는 이런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홍콩의 습한 바닷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날아다녀야 합니다. 물론 배경으로는 특유의 그의 색깔이 묻어나는 음악은 필수입니다.
음악을 타고 홍콩의 빽빽한 빌딩숲을 날아다니는 그것은 .... 사랑, .....이별, .... 그리고 기억.... 입니다.
왕가위 감독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시작점이 된 영화 <아비정전>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장국영이 분한 아비는 장만옥을 꼬시기 위해 그녀와 함께한 4월 16일 3시 1분 전을 기억할 거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이어지는데요, 마지막 장면에서 유덕화는 아비에게 묻습니다. 작년 4월 16일 3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냐고. 아비는 기억하고 있었고, 유덕화에게 자신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녀(장만옥)에게 전해달라고 말합니다. 이에 유덕화는 장만옥이 자신을 만난다 한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 말합니다.
하지만 장만옥은 그(유덕화)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에게 전화까지 겁니다. 그가 순찰 도는 시간에 전화 부스로 말입니다. 기억과 약속이 어긋나는 순간입니다.
바로 그의 다음 영화 <동사서독>으로 넘어갑니다. 김용의 무협지도 왕가위 손에서는 전혀 다르게 변주되는데요, <동사서독>에서는 ’취생몽사‘라는 술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간의 모든 번뇌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좋은 기억력에서 오니 기억을 잃으면 매일 새롭게 잘 살 수 있다고 말이에요. 잊고 싶은 기억의 첫 번째 손꼽히는 기억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동사서독>의 촬영이 중단되었을 때 찍었다는 <중경삼림>은 두 가지 에피소드를 붙인 소품 같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후세의 사람들은 오직 <중경삼림>만 기억합니다. 심지어 왕가위도 모릅니다. <중경삼림>만 압니다. 왕가위가 그렇게 ’기억‘에 관해 천착했는데, 그가 가장 힘 빼고 찍은 <중경삼림>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아름아름 재 유통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중경삼림>은 가볍다 못해 조금은 유치하여 유통기한이 얼마 되지 않을 거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영화 내용 중 금성무가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말은 그나마 참을만합니다. 하지만 양조위가 수건을 짜면서 수건이 운다고 말하고, 비누가 살이 빠졌다며 안타까워하는 장면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이리도 생명력이 긴 이유는 그의 스타일은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신선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놀랍게도 세월에 때가 타지 않는 그의 비주얼의 유통기한은 만년이 지나도 상하지 않을 기세입니다.
그러고 보면, 실은 왕가위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애초에 없었는지 모릅니다. 정확하게는 자신만의 생각을 들려주기보다는 이미지로 각인시키고 싶었던 겁니다.
<해피투게더>에서 장첸이 준 녹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흐느끼는 소리만 담았던 양조위와 <화양연화>에서 앙코르와트 나무 구멍에 관객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하는 양조위, 심지어 <타락천사>의 금성무는 벙어리로 나옵니다. 이들 모두 왕가위와 다름 아닙니다. 대사가 뭐가 중요합니까? 내러티브의 기승전결만이 전부가 아닌 겁니다. 진짜 하고픈 말을 감추고 꾹꾹 눌러서 이미지로 보여주고 그것으로 관객을 느끼게 하고 감흥케 하면 되는 겁니다. 영화의 주제가 어떻고 기승전결이 어떻고 얘기하는 것은 남들이 다 하는 겁니다. 적어도 왕가위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 스스로 이와 다른 자기만의 방식을 증명했습니다.
<아비정전>의 아비는 입버릇처럼 다리 없는 새를 말합니다. 다리 없는 새가 날개를 접을 때는 죽는 순간이라고. 그렇지만 이 새의 실체를 영화 말미에 고백합니다. 실제로 다리 없는 새는 날았던 적이 없는 죽은 새였다고 말입니다. 비록 그럴지라도 다리 없는 새는 꿈에서라도 훨훨 날고 싶었던 겁니다. 왕가위가 말하는 다리 없는 새가 날아가는 이미지는 야자수 바로 위를 날아가는 이미지입니다. 영화 중간중간에 펼쳐지는 그 화면 말입니다. 배경음악으로는 나른한 기타 선율의 ’Always in my heart’가 흐르면서 말입니다. 이는 발 없는 새가 높이 날지 못하고 바로 나무 위 언저리를 나는 이미지입니다. 언제 땅에 처박힐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하지만 배경음악은 너무나도 나른하고 평온합니다. 그래서 잠이 쏟아질 거 같습니다.
만약 잠을 잔다면,
<동사서독>의 ‘취생몽사’를 마신 겁니다. ‘취생몽사’는 마시고 나면 지난 과거를 잊고 마는 술 말입니다.
그는 홍콩 반환과 더불어 진짜 ‘취생몽사’를 마시고 날개를 접고 땅에 내려옵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영화 <My Blueberry Nights>에서는 홍콩을 떠나 발을 땅에 붙이고 뉴욕 주변을 서성이입니다. 왕가위는 역시 발을 땅에 붙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영화 <2046>에 와서는 시대까지 미래로 바꾸고 외딴 행성으로 떠난다고 합니다. 이제는 그 행성에 가면 잃었던 기억을 되찾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지금껏 자신이 만들었던 영화들을 회상합니다. 줄곧 ‘기억’에 천착했지만 그 본질은 망각에 대한 두려움이었는데, 이제는 잃었던 기억을 되찾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신이 펼쳐 논 이야기를 추스르려 행성으로 떠난 은하 철도 2046은 길을 잃습니다. 실은 그 시도 자체가 무모하고도 오만한 기획이었기 때문입니다.
왕가위는 그 후 <일대종사>로 자신의 한계, 즉 중생에 가닿지 못함을 고백한 후 영화를 찍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홍콩을 대체할 상하이를 배경으로 <변화>라는 드라마를 연출했지만,
상하이에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왕가위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왕가위는 아마도 중생으로 가려는 길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왕가위를 걷어찼습니다.
왕가위 영화는 혼만 쏙 빼놓을 비주얼만 있다 여겼습니다.
왕가위 영화는 불면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온갖 멋만 부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왕가위 영화는 제게서 휘발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벌써 오래전에 왕가위를 걷어찼습니다.
그러다 <중경삼림>의 유통기한이 연장되어 젊은 세대에게 재 유통되는 것을 보고,
며칠 전에 다시 챙겨 보게 된 것입니다.
그의 영화를 보는 내내 미식미식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그래서 ‘스탈당 신드롬’인가 의심했지만
곧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가위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시절 왕가위 영화를 좋아했던 제가 보였습니다.
영화감독이 꿈이었고, 영화감독이 될 줄 알았던 그 시절의 저 말입니다.
그런 의미로
제가 경험했던 ‘그것’이 스탈당 신드롬이 아니었을 겁니다.
꿈을 이루지 못한 한 개인의 자기 연민 정도였을 겁니다.
맞아요, 마음속 장롱 밑에 잘 감춰뒀던 자기 연민이 먼지 쌓인 장롱을 버리다가 불쑥 튀어나온 꼴입니다.
이제 ‘스탈당신드롬’인 줄 착각하게 만든 알량한 자기 연민도 미련 없이 갖다 버리려고 합니다.
이제 저는 영화감독이 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화감독이란 CGV니 메가박스니 롯데시네마 따위의 극장에 걸리는 영화, 즉 상업영화감독을 말합니다.
더 이상 포기니 꿈을 이루지 못했니 뭐 이런 자기 연민에 가득 찬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마침 왕가위 영화를 통해 올라온 자기 연민의 잔재는 이참에 정리하겠습니다.
맞습니다.
그 시절 제가 떠올라 그리도 속이 울렁거렸나 봅니다.
왕가위 영화 덕분에 그 시절 저를 게워내고 났더니 조금은 선명해진 느낌입니다.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는 걸로.
영화감독이 되지 않는 걸로.
왕가위 영화를 좋아하던 시절의 제가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것처럼
영화감독이 되지 않기로 제가 스스로 선택합니다.
오바이트를 하고 가글을 하고 난 기분입니다.
이제 더 게워낼 것이 없습니다.
이제 아무 욕망이 없는
온전히 저입니다.
그러고 나니
여전히 왕가위가 좋고,
타란티노가 사랑스럽습니다.
그렇게 잊고 있던 왕가위 영화를 모조리 찾아보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왕가위 영화는 이야기보다 그 영화가 갖고 있는 질감이 있습니다.
그의 영화가 너무나도 감각적이다 보니 이야기로 다가오기 전에
마치 스크린에 피부가 닿는 것처럼 영화가 만져집니다.
그의 영화는 질감이 너무 좋습니다.
타란티노는 열 편의 영화를 찍고 은퇴한다고 했습니다.
타란티노의 열 번째 영화가 딱 한 편이 남았네요.
그의 열 편째 영화가 나오면,
그간의 타란티노 영화를 모두 들춰보겠습니다.
그때는 그 시절 저와 마주하더라도 반갑게 반겨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