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쩔 수가 없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곧바로 에어팟을 꼽고 노래를 듣습니다.
노래 제목은 산울림의 ‘그래 걷자’입니다.
맞습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보고 나온 겁니다.
어쩔 수 없이 봐야만 하는 영화, 박찬욱감독의 신작 말입니다.
산울림의 ‘그래 걷자’를 들으며 걷는데,
그제야 소름이 쫙 돋습니다.
저는 박찬욱감독이 던진 이 영화를 이렇게 받았습니다.
무척 주관적이고도 자기 위주로 말이죠.
사실 저는 이 영화의 제목만 얘기하면 될 거 같습니다.
영화 제목에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먼저 왜 제목에 띄어쓰기를 무시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띄어쓰기 법칙이 그러한들 그조차 어쩔 수 없었던 겁니다.
정말이지 영문 제목처럼 No Other Choice.....
어쩔 수 없이 어떠한 선택지도 없는 거.....
그야말로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라는 거...
극 중 이성민 배우가 분한 구범모가 말합니다. 아내(엄혜란 배우)가 놀면 뭐 하냐며 카페를 차려주겠다고 하지만 자신은 줄곧 제지공장에서 일해왔고,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 어쩔 수가 없다고.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그러합니다.
이 영화에서 종이란 이제 없어지는 문물입니다. 영화에서 제지회사 이름으로도 거론되는 ‘파피루스’가 처음 나왔을 때는 그야말로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처럼 혁신적인 신문물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형사도 수첩 대신 태블릿을 들고 다닙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구범모, 유만수 그리고 최선출은 왜 그리도 종이에 목을 맬까요? 주위에서 카페를 해라, 원예를 해봐라, 권유하는데도 왜 그리 종이에 집착할까요?
제지공장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이리도 종이에 목을 맬까요? 물론 그럴 겁니다. 우리에게 직업이란 생계를 꾸리고 가족을 돌봐야 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지업에 종사한다는 건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맞습니다. 그 의미가 바로 어쩔 수 없는 거, 그렇게 생겨 먹은 거. 정말이지 도대체 어쩔 수 없기에 그것을 해야 하는 겁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거기에 해당하는 이 직업군을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다른 영화감독을 빗대어 봅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영화를 합니다.
작금의 영화판은 1년에 번듯한 상업영화를 채 열 편도 제작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코로나라는 팬데믹을 거치며 영화관은 유물이 되어가고 OTT다 뭐다 하며 핸드폰으로 영상을 소비해도 충분한 시대가 되어갑니다. 어찌 보면 영화는 종이와 같은 운명 공동체일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이 이러므로 수많은 영화감독들이 부업을 하거나 아내에게 기대며 생계를 근근이 이어 가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영화를 하고자 합니다. 심지어 영화를 만들고 있는 감독들도 박휘순 배우가 분한 ‘선출’처럼 아내에게 버림받고 위스키로 밤을 지새우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맞습니다. 이 영화에서 특히 박휘순 배우가 분한 최선출의 모습이 흥미로운데요. 선출은 현업에 종사함으로 만수의 말을 빌리면 ‘다 가진 자’입니다. 하지만 그는 외롭기 그지없습니다. 쉬는 날이면 늘 위스키를 먹으며 외로움을 달래고는 합니다.
이 모습이 박찬욱 감독의 이면은 아닐까? 혹은 좋은 음향시설로 음악을 듣는 구준범의 모습이 아닐는지 상상해 봅니다.
또한 면접에 앞서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는 범모나 만수의 모습은 감독들이 노트북 앞에서 시나리오를 쓰는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어쩔수없다>를 이렇게 봤습니다.
아.... 어쩔 수 없다. 영화하고 싶어서.
이 기분에 방구석에 처박혀 있기보다는 밖에 나가 산책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때 산울림의 ‘그래 걷자’를 들으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