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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 일 _ 2025년

자신의 성을 굳건히 지킨 '은중과 상연'

by 이게바라

<은중과 상연>

넷플릭스에서 올해 9월에 공개된 드라마입니다.

제게 <은중과 상연>은 참으로 이상한 드라마입니다.

그래서 <은중과 상연>의 ‘이상함’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런 이상한 드라마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기존에 제가 알고 있던 드라마의 어조가 아닌 희한한 어조의 드라마입니다.

무려 15부작이나 되는 드라마인데 사건이 없어요.

있지만 없다고 할 수 있어요. 감히.

왜냐하면 드라마가 그렇잖아요. 16부작 정도 하는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극의 흐름, 극의 전개 방식. 이 드라마는 제가 알고 있는 상식(?)을 산산이 부수었습니다.

이유는 접근 자체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작가는 자신이 하고자 얘기에서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어요. 정말 털끝만치도.

이 드라마의 생경함, 이상함은 송혜진 작가의 하고자 하는 얘기에서 비롯되었어요.

다시 말하면, 이 작가님의 하고자 하는 얘기는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얘기. 더 심하게 말하면 할 가치가 없는 얘기처럼 보여요. 적어도 16부작 드라마로는.

달리 말하면,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하면 재미없는 얘기라는 겁니다.

하지만 송혜진 작가님은 저의 이런 얇디얇은 상식(?)을 바스락 가볍게 부숴주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김상학’이란 인물이 군대를 갑니다. 그게 4화였을 텐데요, 저는 5화 말미, 늦어도 6화쯤엔 전역하고 이야기가 다른 양상으로 진행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근데 이 드라마의 속도는 8화 중반이 지나도 상학은 제대하지 않습니다.

이 드라마 진행 속도가 이러합니다.

<은중과 상연>은 느린 진행 속도도 속도지만 제목처럼 ‘은중’과 ‘상연’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드라마입니다.

오로지 은중과 상연을 들여다보는 얘기. 은중과 상연으로 시작해서 은중과 상연으로 귀결되는 이야기입니다.

어쩜 이 얘기를 가지고 무려 15부작이나 되는 드라마를 만들었을까요?

이 드라마 타이틀에 나오는 쪽지 한 장.
“너는 참 좋겠다.”에서 말해주듯 너를 부러워하는 나에서 시작된 관계가 어떻게 변모해 가는 지를 집요하게 보여줍니다. 보다 보면 이 감정을 왜 이리도 파내는지, 그래서 어쩌겠다는 건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힘, 그 묵직함 이상한 힘은 다른 드라마처럼 이야기를 확장시키고, 어떻게 결론에 도달하겠다는 도식을 의미 없게 만들어버립니다.

오로지 은중과 사연의 내면, 그러니까 그 둘을 대표로 해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속내를 휘젓고 돌아다니며 험난한 여행이 전부인 겁니다.

이 드라마에는 거창한 야심도 투철한 주제 의식도 없습니다.
그저 우리들의 마음 여행인 겁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너무나도 ‘이상하게’ 보였고, 그랬기에 특별해졌고,

급기야 위대하게 느껴졌습니다.

한편으로 저는 이 드라마가 통쾌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제대로 해낸 것 같아서입니다.

엄밀히는 해냈다기보다는 지켜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드라마에 의례 나오는 사건들로 벌리지 않고 지켜낸 느낌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명색이 드라마에서 이래도 되나? 하는 질문이 오만군데에서 들어왔을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지켜냄과 동시에 집요하게 은중과 상연에게 파고 들어갔습니다.

저는 이 용기와 재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참 대단하다. 참으로 대단하다.'


송혜진 작가님과 더불어 조영민 피디님도 대단십니다.

전작 <사랑의 이해>도 인상 깊게 봤었습니다.

조용히 몸을 움츠리고 있지만 강한 연출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극 중 상연과 잠시 만났던 카이스트 다닌다는 배우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조영민 피디의 연출의 무게를 알아보았습니다. 절대로 카메라를 가까이 잡지 않는 모습에. - 물론 그 역할의 배우는 서운하겠지만, 상연의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연출이었습니다. 여느 드라마였다면 그저 의례적으로 바스트를 잡거나 그리 했을 텐데 말이에요.

좋았어요, 조용민 피디님.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서 이 두 배우에게 놀라 자빠질 정도였습니다.

<파묘>로 어디선가 상을 받았죠? 김고은 배우. 하지만 단언컨대 이 드라마가 최고입니다.
그리고 박지현 배우는 정말...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좋은 연기였습니다. <곤지암>때부터 눈에 들어왔었는데, 그래서 참 반가웠습니다. 박지현 배우님.

그리고 ‘김상학’ 연기한 김건우 배우는 첫 등장부터 어디서 봤는데, 시종일관 어디서 봤는데, 봤는데.... 했는데 <글로리>의 가해 학생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미지가 너무 달라 알고도 매치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이 배우님도 앞으로가 참 기대됩니다.


<은중과 상연>은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성을 지킨 장수의 모습을 한 드라마입니다.

제가 보기엔 그 모습이 이상했고,

그 이상함이 너무 멋있고 대단해 보이는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를 다시 볼 것 같지는 않은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드라마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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