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수 _ 2026년

그의 미래는 '창대'하리

by 이게바라

진작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제야 정식으로 당신을 감독으로 추앙합니다.


당신의 꿈은 처음부터 창대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미비했죠.


결과가 미비했던 앞선 영화의 ‘창대’는 이러했습니다.

《청춘 그루브》에서 봉태규가 연기했던 ‘서창대’

결과가 좋지 않았던 그의 첫 영화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계속 앞으로 쭉쭉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청춘 그루브》와 같은 해에 개봉한 《나의 PS파터너》

그 후 5년 만에 개봉한 《불한당》 이후 감독은 다시 ‘서창대’를 부활시킵니다.

그 영화는

《킹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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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서창대’를 연기한 배우는 고 이선균 배우님입니다.

(이선균 배우님을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해 가슴이 답답해지지만 참고 이어가면)

다음 영화에서는 ‘서창대’가 주인공으로 나오기는 어려웠습니다.

영화 제목조차 《길복순》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영화에서도 ‘서창대’는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감독은 고 이선균 배우와 함께 ‘서창대’를 가슴에 완전히 묻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굿뉴스》에서 홍경배우가 연기한 ‘서고명’ 역의 이름으로 ‘서창대’가 제격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무개인 설경구가 영화 엔딩에 신분증을 받는데 그가 받은 이름이 ‘최고명’인 걸 봐서도 ‘창대’란 이름이 이 두 캐릭터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감독도 이 이름과 어울리는 욕망을 가진 듯 보입니다.

《불한당》 이후 이렇게 쉼 없이 달려온 감독은 80년대 생으로 MZ세대 끝자락을 잡고 있는

변성현 감독입니다.

저는 변성현 감독을 추앙함으로 함으로 이하 변감독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봉준호, 박찬욱 감독님, 그 뒤로는 나홍진, 유승안 감독님만 바라보고 있을 겁니까?

여기 ‘서창대’라는 이름을 걸고 내디딘 첫걸음은 미비했지만

계속해서 끝없이 창대해지는 보기 드문 성장형 감독인 변성현 감독님이 계십니다.

그럼 이쯤에서 그의 시작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봉태규 배우가 ‘서창대’로 나오는 《청춘 그루브》입니다.

봉배우가 래퍼로 나오고, 이 영화에서는 변감독도 배우로 등장합니다. 꽤 비중 있는 역을 맡았는데요, 아역배우로 주연까지 경험한 그에게는 츄파춥스를 빠는 것처럼 즐겁고 쉬워 보입니다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특히 변감독이 랩을 하는 장면은 – 물론 영화감독치고는 잘하지만 – 래퍼 역할로는 어색해 보였습니다. 이후 변감독님은 배우로는 남몰래 은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영화나 다른 어떤 영화에도 배우를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니 말입니다.

실은 변감독님의 연기보다는 매드독이나 아라 역할을 한 배우님들의 연기가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봉태규 배우의 연기는 너무 좋았어요. 열등감과 자괴감에 쩔어 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의 재능을 믿는 아티스트로서의 서창대를 잘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역시 변감독님의 장점인 장면 전환이라든지 장면을 연출하는 창의성은 첫 장편영화지만 그 역량이 잘 드러납니다. 일테면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사용될 쓰레기통을 공간으로 활용해 그곳에 창대가 있는 것처럼 연출한 부분이 그러합니다. 어두운 곳에서 이야기하던 창대에게 빛이 떨어집니다. 마치 무대 위의 핀조명으로 예상되나 그 빛은 노숙자가 쓰레기통을 들춰보는 겁니다. 이 쓰레기통은 영화 말미에 매드독과 아라가 관계하는 테이프를 창대가 버림으로 뜻밖의 상황을 만들게 되는 결정적인 소품이기도 합니다.

《청춘 그루브》는 변감독님의 이러한 감각적 자질도 좋지만, 무엇보다 이야기가 참 매력적입니다. 래퍼를 꿈꿨던 창대가 노래방 마이크를 잡으면서 끝나는 엔딩은 엔지 짠하면서도 희망찬 느낌의 엔딩이었습니다. 그 엔딩은 맘이 너무 아프다가도 ‘그래 창대는 아직 젊고 뭐든지 할 수 있잖아’라며 자체 희망 회로를 돌리게 만드는 엔딩입니다. 비슷한 예가 아닐 수도 있지만 제가 좋아하는 영화 《태양은 없다》도 그러합니다. 정우성이 분한 도철과 이정재가 분한 홍기가 영화 시작한 이래 가장 좆된 상황 속에서 도심에 뜨는 태양을 보며 끝나는 엔딩.

맞아요, 젊음은 암만 좆된 엔딩도 새드 엔딩이 아닌 겁니다. 젊음이란 가장 좆된 상황에서 오히려 희망이 떠오르는 겁니다. 그게 ‘청춘’의 ‘그루브’가 아닐까 싶습니다.

《청춘 그루브》 한 편만으로도 할 얘기가 참 많은데,
다음 영화까지만 언급하고 글을 끝맺겠습니다.

《나의 PS파트너》에서의 ‘창대’ 지성도 뮤지션입니다. - 변감독님의 탁월한 감각과 리듬감은 이렇게 음악을 좋아했던 것에 기인하지 않나 유추해 봅니다. 《청춘 그루브》에서 래퍼로 출연하며 랩 실력까지 뽐낸 것을 보면 그냥 좋아만 한 건 아닌 것 같네요.

여튼 《나의 PS파터너》의 시작 씬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저수지의 개들》에서 은행털이범들이 모여 마돈나의 ‘라이크 버진’ 얘기하며 처녀가 어쩌고저쩌고 얘기했던 것처럼 《나의 PS파터너》는 남자 성기의 크기와 강직도를 얘기하면서 시작합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노골적으로 공간 연출을 유사하게 했습니다. 둥근 원탁에 앉아 시종일관 카메라가 주위를 돌면서 촬영하는 방식으로. 참 반가운 도입부입니다.

이 영화는 시작은 이리도 창대했고, 마지막 엔딩도 좋았습니다. 김아중이 자신이 무슨 속옷을 입고 있었는지 말하면서 끝나는 엔딩은 참 까리했습니다만, 후반부 김아중의 결혼식장으로 뛰어가는 창대 부분은 좀 아니었던 거 같이요. 이미 그렇게 극적이지 않아도 충분할 수 있게끔 이야기를 잘 짜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덧붙여 《나의 PS파터너》에서도 변감독님의 장기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여 화면을 감각적으로 연출했는지 잘 나타납니다. 창대와 김아중이 통화하는 거의 모든 장면이 그러합니다. 서로 만나지 않고 통화만 하는 장면이라 하면 자칫 뻔할 수 있는데, 오히려 볼거리가 풍성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다음 영화는 《불한당》 그야말로 참 재밌는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세 번 보았는데 볼 때마다 더 재밌어지는 마력의 영화입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좋은 평가로 변감독님은 그 후 파죽지세로 영화를 찍고 있습니다.

작품당 주기가 짧은 것은 물론 영화의 완성도가 놀랍습니다.

《킹메이커》에서는 영화적 재능만 있는 감독이 아닌 현실에 발을 내디딘 감독으로 성숙한 모습도 보여줬고, 특히 《불한당》 개봉 때 SNS 올려 논란이 된 사건을 이 영화로 한 방에 불식시켜 버리는 효과까지 만들어냈습니다.

또한 《길복순》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또 얼마나 잘하는지를 잘 보여줬습니다.
거기다 특히 최신작인 《굿뉴스》로 그야말로 한계가 없는 감독임을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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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물론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감독의 외향, 성향 등 감독의 클리셰를 깨는 변성현 감독님을 저는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청춘 그루브》의 '창대'가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으며 하는 마지막 내레이션으로 끝맺겠습니다.

"어떤 비트건 그건 중요하지 않아. 비트가 울리면 마이크를 잡는다. 그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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