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결혼식(2018)
그리워하면서도 한 번 만나고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 서로 아니 만나 살기도 한다.
-피천득의 인연 중에서-
인연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만나는 주변 사람 모두를 인연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 순간부터 우리는 같이 성장해간다. 특히나 남녀가 서로 호감을 갖고 진행되는 연애 혹은 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들은 어떨 땐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어떨 땐 똑똑하게 만들기도 한다.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 포함되어 있는 문구는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인연이라는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관계는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의 아니게 헤어지기도 하고, 생각보다 오래 관계가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그 관계가 10대 시절부터 이어지는 관계라면 쉽게 끊어내기는 어렵다. 10대에 만난 친구들이 나이 들어서 까지 좋은 친구일 수 있지만, 많은 친구들은 관계가 흐지부지 해지고 서로 연락하지 않고 지낸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사랑 혹은 호감이라는 관계로 시작한 남녀 사이라면 더 복잡하게 생각될 수 있다. 어떤 커플은 오랜 시간 동안 연애하고 결혼까지 이어지지만, 어떤 커플은 잠깐 스치듯 만나고 헤어짐을 맞이한다. 그 관계의 시간을 조절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관계가 처음 만나는 사랑이라면 일생을 못 잊으면서 서로 아니 만나 살기도 한다.
첫사랑에 관한 또 다른 로맨스 영화
영화 <너의 결혼식>은 그런 첫사랑에 관한 에피소드다. 최근 한국영화에는 로맨스 영화가 거의 흥행하지 않았고, 개봉조차 되지 않았었다. 오랜만에 개봉하는 로맨스 영화로서 이 영화는 꽤 달콤하고 우리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영화는 2000년대를 관통하며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주인공인 승희(박보영)와 우연(김영광)의 끈질긴 인연을 경쾌하게 보여준다. 사실 최근 한국영화 중 가장 유명한 첫사랑에 관한 영화는 <건축학개론>(2012) 일 것이다. 90년대 중후반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되는 영화는 첫사랑의 그녀에 대한 남자 주인공의 생각이 담긴 시각을 보여주며 그 당시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체험시킨다. 영화의 주제가와도 같은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이라는 노래가 두 주인공의 감정을 완전히 전달하며, 나쁜 첫사랑 그녀와의 인연 이야기를 흥미롭게 보여줘 흥행한 영화였다.
<너의 결혼식>은 <건축학개론>과 비슷한 과정으로 진행되는 영화다. 단, 과거와 현재를 모두 동일한 배우들이 연기를 하기 때문에, 현재와 과거 인물에 대한 이질감은 없는 편이다. 현재에서 플래쉬백으로 과거로 돌아가 진행되는 영화는 승희와 우연의 만남을 시작으로 그들이 인연을 맺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 속에는 2000년대에 유행하던 노래나 그 당시의 분위기를 잘 녹여 그 당시에 학창 시절을 보낸 관객들이라면 공감할만한 부분들이 많다. 또한 이 영화는 남자 주인공의 관점에서 주로 과거가 묘사하는 가운데 여자 주인공의 관점을 후반부에 살짝 보여주면서 과거의 오해와 서로의 시각에 대해 전달하게 된다.
2000년대를 관통하는 그때의 추억이 묻어나는 이야기
첫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품고 있기 때문에, 이 두 주인공의 관계에 공감하는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꼭 2000년대에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어서 주인공들이 하는 행동과 사건에 대해서 감정이입을 하기 쉽다. 무엇보다 진학, 취업 등 시대상을 관통하면서 그것에 영향을 받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의도하지 않게 개개인의 인연이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첫사랑이라는 절절함이 더욱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특히 후반부에 두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 속에는 이 시대를 관통하는 그들의 고민과 문제가 그대로 전달되기도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우연은 승희를 만나기 위해 힘들게 공부하여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럭비를 배우고, 체육 교사가 되는 과정을 지난다. 또한 승희는 우연을 만난 이후 자신이 원하던 디자이너의 길을 찾는다. 결국 이 두 사람은 인연을 맺으며 각자 성장하고 서로의 발전을 돕게 된다. 하지만 영화의 제목처럼 두 사람의 사랑은 결혼까지 연결되지 않으며, 후반부 두 사람이 길에서 걷다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걷는 장면을 통해 두 사람이 미래를 보는 시점 자체가 서로 같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두 주인공의 절절함 보다는 현실함을 보여주는 영화
이 영화가 <건축학개론>과 차이를 가지는 부분은 주인공의 커플로 이루어지긴 했다는 것이다. 주인공 우연의 노력으로 결국 그들은 대학 졸업 후 사귀긴 하지만 결국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하게 된다. <건축학개론>의 주인공들도 맺어지지 않지만, 그들은 실제로 서로에 대하 자세히 알만한 시간을 갖지는 못했다. 그래서 정서 상 이루어지지 않는 첫사랑에 대한 절절함이 묻어 나온다. 반면 <너의 결혼식>은 이런 절절함보다는 현실감에 더 무게를 뒀다. 그들은 서로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느끼고 대화하며 각자의 다름에 대해 이해할 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이루어지지 않은 인연에 대해 슬픔과 안타까움보다는 아쉽지만 뿌듯한 감정이 더 느껴지는 것이다.
영화 속 승희는 럼블피쉬의 노래인 'smile again'을 좋아하고, 우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이 노래를 듣는다. 그걸 아는 우연은 MP3 player를 선물하거나,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이 음악에 대한 주인공들의 애정은 느껴지지만, 그 노래가 이 영화와 잘 조화가 되었다고는 이야기하기 힘들다. 이 노래는 정말 영화 속에서 기능적으로 쓰였을 뿐, 이 노래를 듣는다고 해서 어떤 감정적인 동요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의 가사를 통해 승희가 얼마나 우울한 상황에 있고, 그런 상황마다 우연이 얼마나 좋은 관계를 위해 노력했는지는 잘 느껴진다.
로맨스를 바탕으로 하는 성장영화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로맨스물에 약간의 유머가 섞인 성장영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유머들은 대부분 성적인 코드를 통해 전달되고 있는데, 저질스러운 수준은 아니고 꽤 귀엽게 느껴진다. 하지만 유머 코드가 대부분 그런 성격이기 때문에 점점 웃음의 강도가 낮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두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박보영과 김영광은 꽤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하며 좋은 케미스트리를 보여준다. 두 배우가 잘할 수 있는 연기를 극대화시켜 영화에 녹아들게 한다. 특히 이 영화에서 좋았던 장면은 그들이 서로 사귄 후 승희가 우연의 옷을 만드는 것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다. 많은 데이트 장면을 보여주며 거리에서 승희가 만든 옷을 우연에게 대보는 것을 보여주는데 옷이 조금씩 완성되는 것이 보여 꽤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이들의 인연은 피천득의 글귀처럼 일생을 못 잊으면서 서로 아니 만나게 되는 인연일지 모른다. 이들은 친구로 이어지지만 결혼 후에 얼마나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영화 속 승희는 대학교 선배와 사귀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3초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3초의 순간을 통해 만난 그는 좋은 인연이 아니었다. 승희는 그 선배를 평생 그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우연이라면 좀 다르다. 고등학교 때 우연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을 들켜버리고 수치심으로 시작된 이들의 안타까움은 질투심을 거쳐 애틋함으로 발전하지만, 서로 맞지 않는 타이밍 때문에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그처럼 그들이 인연을 맺고 성장하는 과정처럼 어쩌면 우리도 우리의 인연과 같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