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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Oct 30. 2018

#38. 아이가 아빠를 인지하는 순간




아이가 생긴다는 건 아빠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처음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그저 멍하고 얼떨떨하기만 했던 그때 아빠라는 타이틀을 받은 내 삶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주변에서는 축하하는 말도 많이 해줬지만, 이제 자유의 삶이 끝났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때 별생각 없이 아내와 대화하면서 왜 자유가 없어진다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 투덜거렸다. 


나: 사람들이 이제 다 끝났데요.
아내: 네? 뭐가 끝나요?
나: 아니 임신했다니까 이제 자유로운 생활 끝이라고요. 지금 얼른 가고 싶은 데 가고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네요.
아내: 아~ 아마 육아하는 게 힘들어서 그럴 거예요. 애가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고요.
나: 그래도 애 있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애 재우고 영화도 보고, 밥도 번갈아가며 하고요.
아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애가 있으면 애를 계속 보고 있어야 한다고 해요.

나: 그래요? 음.. 


임신 초기 육아 각오를 다지는 나의 모습

전혀 육아에 대한 경험이 없었던 우리는 아이가 있어도 다른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거란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막상 출산 이후 육아를 직접 경험하면서 내 일정이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일정이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달았다. 아이는 늘 엄마의 젖을 물거나 안겨 있었고, 아빠인 나는 그저 옆에서 보거나 도왔다. 출산 후 몇 개월이 지나고부터는 나도 적극적으로 안고 재우고 육아에 참여했다. 

우리에게 찾아온 아이, 당근이는 엄마의 품에서 안정을 찾고 배고픔을 달래고, 잠을 잤다. 내가 안을 때보다는 아내가 안을 때 더 빨리 안정을 찾고 울음을 그쳤다. 울 때 내가 안으면 울음을 그칠 때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는 더 크게 울어서 다시 아내에게 넘겨줘야 했다. 마음 한 구석에 서운한 감정이 조금씩 올라왔다. 당근이는 아빠인 나의 존재를 거의 알지 못하는 것 같아 보였다. 



아내: 자기야! 내가 이걸 좀 해야 하니까 자기가 당근이 좀 안아 주세요. 막 울고 있네요!
나: 네 내가 가서 안을게요. 어휴 당근아 아빠 왔어. 아빠가 안을게요. 괜찮아요.
당근이 : 응애~응애~응애~
나: 아이고.. 계속 우네.. 자기야 자기가 좀 안아야 할 것 같아요.
아내: 아빠가 좀 노력하셔야 되겠네요. 당근이도 아빠를 알아야죠~ 모르는 남 같네요.
나: 어휴.. 힘드네. 왜 이렇게 울지.


그렇게 한 동안 내가 안아도 울던 당근이는 여러 번 안고, 같이 놀아주면서 조금씩 내 얼굴을 익혀갔다. 평일에는 퇴근 후 저녁을 얼른 먹고는 당근이 와 같이 시간을 보냈다. 주워있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흔들고 책을 읽어주고, 그냥 혼자 말을 해줬다. 그리고 샤워할 때도 아내와 같이 들어가 같이 씻겼다. 주말에는 같이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몇 달을 하면서 조금씩 낯설음을 줄여갔지만 여전히 당근이는 아빠인 나와는 서먹서먹했다.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 섭섭함을 털어놨다.  


나: 자기야, 당근이가 아직 나를 낯설어하네요. 그렇게 많이 놀아줬는데...
아내: 좀 더 지나면 아빠를 알 거예요. 그래도 지금은 자기를 봐도 안 울잖아요. 
나: 그래도 이렇게 시간 투자를 많이 했는데 좀 섭섭해요. 부족한 건가...
아내: 자기야 잘 생각해봐요. 나는 집에서 당근이 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요. 그리고 밥도 주고, 안아주고, 재우고.. 자기는 퇴근하고 겨우 2시간 반 정도 놀아주죠. 그리고 주말에는 나와 자기가 같이 나가서 당근이 와 놀죠. 만약 자기가 일주일 동안 누군가와 같이 시간을 보낸다고 했을 때, 가까워지는 사람은 누구겠어요?
나: 음.. 나한테 밥도 주고 같이 많이 놀아주는 사람하고 더 가까워지겠죠..
아내: 그쵸? 당연한 거예요. 근데 육아 책에서 봤는데요. 아빠들은 아이와 보낼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같이 놀 때 정말 최선을 다해서 집중해서 놀아주면 된데요.. 그렇게 시간을 지내다 보면 어느덧 아이가 아빠를 많이 좋아한다고 해요. 


아내는 실망하는 나에게 아이 개월 수에 따른 뇌구조 그림을 보여줬다. 개월 수마다 아이가 생각하는 것들을 단순하고 재미있게 표현한 그림이었는데, 꽤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있었다. 그 사진에 따르면 아이가 아빠라는 존재를 인지하는 시점은 12개월이 지나고 나서고 그마저도 아주 작은 비중을 차지한다. 


아이 발달에 따른 뇌 구조


그런 아내의 말과 그림을 본 이후, 더욱 아이 앞에서 재미있는 행동을 많이 했다. 아이가 누워 있을 때 소리 내며 막춤도 추고, 비행기 놀이도 하고 이상한 표정을 하며 당근이의 시선을 끌었다. 아이가 날 찾지 않아도, 아이가 엄마만 찾아 섭섭함을 느껴도 계속 그런 노력을 반복했다. 


돌이 지난 어느 날, 당근이 와 아내가 중국에서 꽤 오랜 시간 머물렀다. 거의 3주의 시간 동안 아내의 신분증 재발급과 서류 작업 때문에 떨어져 있었다. 중국 장모님 댁에 아내와 당근 이를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당근이에게 이야기한다. "당근아 아빠 이제 멀리 갈 거야. 아빠 잊어버리면 안 돼~" 몇 번이나 이 말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당근이는 그저 멍하니 날 쳐다본다. 그렇게 날 멍하니 보고 있는 아이를 뒤로 두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참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섭섭하면서 당분간 자유롭다는 후련함, 그리고 가족과 떨어진다는 슬픔. 복합적인 감정이 한 번에 찾아왔다. 


다시 중국으로 가 아내와 당근 이를 만난 순간, 당근이에게 까꿍 하며 인사를 했을 때 당근이가 살짝 웃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에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날 보던 당근이는 아마도 그때부터 아빠라는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당근이는 나를 많이 찾기 시작했다. 특히 밖에 외출하고 싶을 때면 내 손을 잡고 현관문으로 향한다. 


두 돌이 다 되었을 때, 여전히 당근이는 엄마를 많이 찾았지만 아빠인 나도 많이 찾는다. 주로 외부 활동을 같이 많이 했기 때문인지 밖에 나갈 때면 나를 찾고, 안아달라고 하고 여러 이쁜 짓도 많이 한다. 당근이가 영아 시절 섭섭했던 기분을 지금은 다 보상받는 느낌도 든다. 당근이는 내가 퇴근하면 나에게 달려오고, 내가 저녁 먹으려 앉으면 내 무릎에 앉아 내가 밥 먹는 걸 본다. 그리고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자며 손을 잡아끌고, 아빠 한 입, 당근이 한 입을 외친다. 


이제는 아이가 생기고 아빠라는 것이 무엇인지 약간은 알게 된 것 같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아이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아이가 아빠를 좀 더 빨리 인지하고 따른다. 결국 아빠도 엄마와 같은 부모다. 엄마처럼 하지 못하고, 아이가 엄마만 찾는다고 해서 육아에서 손을 놓아버리면, 아이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 버린다. 아이가 아빠라는 존재를 인지하는 순간이 점점 늦어진다. 그래서 아빠도 아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주말에는 하루 종일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 최대한. 그리고 아이가 잠들면 나도 같이 뻗어버린다.  


아내: 자기가 이제 진짜 아빠가 되었네요.
나: 그러게요. 나도 진짜 아빠네. 한국도 중국도 아빠는 똑같겠죠?
아내: 한국, 중국뿐만 아니에요. 모든 나라에서 아빠는 중요해요. 중국에도 아이 때리고 버리고 하는 아빠들이 많아요. 적어도 자기는 그런 아빠는 아니잖아요.
나: 에이 어디 그런 사람하고 비교를 해요. 나는 그래도 B급은 되죠.
아내: 하하하 아니 자기 A급 아빠라고 해줄게요.
나: 근데.. 이렇게 몇 년은 더 해야겠죠? 체력관리가 필수네... 허리도 아파. 당근이가 맨날 안아달라고 하네요. 
아내: 기뻐하셔야죠~ 따님이 아빠를 완전 사랑하네요! 자기도 딸바보 다되었네. 


당근이가 오랜만에 본 나에게 웃었던 그 순간은 아마도 내가 진정한 아빠로 인정받은 때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나도 딸 바보의 영역에 한 걸음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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