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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Apr 21. 2019

편모가정의 어려움을 공포로 녹여내다

-<요로나의 저주>(2019)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길러나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이가 한 명일 때도 힘들지만 두 명의 아이라면 육아의 무게는 두 배 이상이 될 것이다. 그만큼 엄마라는 존재가 혼자 져야 하는 무게는 꽤 무겁다. 혼자이기 때문에 생활을 위해 일도 해야 하고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엉망이 된 집을 치우고 아이들을 챙겨 재워야 한다. 그렇게 모두 정리를 하고 나면 고단한 몸을 침대에 눕히고 잠이 든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면 정상적인 정신을 유지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쫓기는 생활 속에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육아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갑자기 어느 순간 감정이 폭발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훈육이나 체벌이 나오는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할 텐데, 그것의 강도는 정신적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다. 편부모 가정에서 혼자 아이를 챙겨야 하는 엄마의 입장이라면 어느 순간 아이에게 강한 체벌을 가하거나 정신적으로 과롭히는 훈육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편모가정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요로나의 저주>


영화 <요로나의 저주>는 그런 편부모 가정의 이야기를 공포 장르에 넣어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에는 세 가족이 나오는데 모두 엄마가 아이들의 주양육자다. 과거의 인물 요로나(마리솔 라미레즈)는 남편의 외도로 아이를 혼자 돌봐야 하는 처지고, 주인공 애나(린다 카델리니)는 경찰 남편의 순직으로 혼자 아들과 딸을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패트리시아(패트리시아 벨라즈퀘즈)도 두 아들을 혼자 돌보고 있는 엄마다. 요로나는 두 아들을 죽이고 저주를 받은 영혼이고 패트리시아는 그런 요로나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 두 아들을 방에 가둬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극복해 내려 애쓰는 인물이다. 그때 개입되는 애나는 아동복지사의 직업을 가지고 있고, 학대가 의심되는 패트리시아의 가정에 방문하게 되면서 요로나의 저주에 빠지게 된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편모 가정의 모습을 잘 묘사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침에 혼자 두 아이를 챙기느라 정신없어 보이는 애나의 모습 그리도 아이들에게 걱정스러운 문제가 생긴 후 아이의 등교를 막으면서까지 해결하려는 모습, 그 수습과정에서 매우 지친듯한 모습은 편모 가정의 삶이 어떠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영화 초반 애나가 아이들을 학대한 것으로 의심되는 패트리시아 가정에 방문했을 때, 지치고 정신이 없어 보이는 패트리시아의 모습은 우리가 편모 가정을 바라보는 시선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그 편견은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 때 그대로 편모의 학대나 잘못된 교육이 있었다는 식으로 아동복지사의 눈으로 옮겨진다.


실제로 영화 속 패트리시아는 그의 행위 자체가 아이들의 보호를 위함이었지만 결국 아이와 분리되어 버리고 만다.  엄마와 분리된 아이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영화에서 매우 잘 묘사되고 있다. 이는 엄마의 역할과 정신적인 상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는 그 이후 애나와 아이들이 동일한 상황 속으로 빠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객관적이고 냉철했던 애나 역시 아이들의 변화와 이상한 현상으로 인해 잠을 자지 않고 아이들 옆을 지키고 스스로 문제를 바로 잡으려 최선을 다한다. 그 과정에서 이성을 잃고 지쳐있는 자신의 모습과 아이들에게 남겨진 상처는 역시나 외부 사람들에게 학대라는 의심을 받게 만든다.


멕시코의 삼신할매, 요로나 괴담을 바탕으로 한 영화


영화 속의 악령으로 나오는 요로나는 기본적으로 멕시코에서 전해지는 괴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말을 안들으면 요로나가 잡아간다고 겁을 주는데 활용되는 이 괴담은 한국의 삼신할매 괴담과 비슷하게 활용된다. 요로나는 남편이 바람피는 것을 알게 되어 남편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 위해 두 아들을 죽이는 캐릭터다. 그는 그 행위 후 후회를 하며 자신도 강에 물을 던지게 되고 그 한 때문에 자신의 아이를 되찾기 위해 다른 사람의 아이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이 영화에서 악령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혼자 아이들 키우며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요로나라는 캐릭터는 편모 가정을 이끌어가던 엄마라는 존재를 보듬지 못하면 어떤 결말을 불러오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주인공 애나 역시 혼자 힘으로 힘든 상황을 겪게 되지만 그는 외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려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이는 요로나와 패트리시아하고는 다른 선택이다. 애나는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인지하고 외부에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도움을 주는 사람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그 문제와 곧바로 직면했다. 도움은 온 가족을 싸울 수 있게 만들었고, 그것을 해결하는 건 그 가족, 특히 엄마가 중심이 되어 진행된다. 결국 세 편모 가정 중 외부의 도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건 애나의 가정이다. 애나가 싸움을 시작하자 아이들도 그 싸움을 돕기 시작한다. 결국 그 가정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도와 문제를 직면한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공포영화다. <컨저링> 유니버스라는 공포영화 시리즈에 속하는 이 영화는 이 시리즈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공포스러운 현상 또는 상황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특히 실내의 기현상 등을 효과적으로 묘사했던 이 시리즈들은 저예산임에도 불구하고 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유니버스가 되었다. <컨저링>을 비롯해 <애나벨>, <더 넌> 등 이미 다양한 시리즈가 만들어지고 있고, 모든 시리즈는 평균적인 오락영화로서 준수한 재미를 선사한다.


공포 엔터테이닝 장르에 넣은 가족의 문제 


이 시리즈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가족에 대한 것이다. 갑자기 죽은 딸, 귀신 들린 집에 이사 온 가족, 정신병으로 의심받는 이상한 딸 등 이상한 현상을 겪는 가족들의 고통과 상실감을 공포 장르를 빌어와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는 퇴마사의 존재를 둬 기 현상을 일으키는 존재들과 연결시키고 그들이 최대한 현재의 가족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싸워 나가는 과정이 담겼다.



어쩌면 이 시리즈는 가족이 가지고 있는 상실감과 상처가 가족 내부의 관계와 모습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 사회의 가족 관계에 이해하지 못할 외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잘 보여준다. 이번 <요로나의 저주> 도 편모 가정의 사례들을 끌고 와 효과적으로 활용한 영화다.


이번 영화가 뛰어난 수작은 아니지만 효과적으로 활용된 시각효과와 엄청난 속도감으로 관람 내내 지루함 없이 볼 수 있다. 너무 직접적으로 요로나의 무서운 모습이 여러 번 나오면서 무서움을 덜 느끼게 되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주는 등의 문제점들이 있지만, 영화 <요로나의 저주>는 여전히 공포 오락영화 장르 안에서 사회적인 문제와 재미를 동시에 보여주는 컨저링 유니버스에 속하는 준수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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