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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Feb 25. 2018

외로운 이들의 사랑이야기

-셰이프 오브 워터 (2017)

 기예르모 델토로, 그 자신의 장르로 창조한 사랑이야기

 기예르모 델토로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의 영화를 처음 접한 건 1997년 작인 미믹에서다. 그 당시엔 감독이 누군지도 모르고 괴물이 나오는 액션 영화로 알고 비디오테이프로 빌려봤던 기억이 있다. 그 뒤에 블레이드 2(2002)를 보고 나서 이 감독을 검색하여 기억하게 되었다. 그의 영화에서 언제나 새로운 형상의 크리쳐가 나오고 그 크리쳐가 나쁜 역할이든, 좋은 역할이든 굉장한 디자인을 보여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만든 작품들은 B급 영화 고유의 느낌에서 출발한다. 보통 B급 영화라고 하면, A급 영화보다 조금 떨어지는 CG, 스토리 등이고, 약간 촌스럽게 보이는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영화 들이다. 하지만 B급 영화라고 해서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많은 B급 영화 중에서도 볼만한 작품들이 꽤 많이 있었다. 많은 감독들이 80-90년대에는 B급 영화를 찍으며 그들의 경력을 발전시켰었다.


 델토로는 그의 고집과 색깔을 자신의 영화에 잘 드러낸다. 블레이드 2에서 뱀파이어가 죽어가는 장면의 CG는 그 당시에는 충격적이었고, 헬보이 시리즈(2004,2008)의 만화적 세계관도 매력적이었다. 판의 미로(2006)는 또 어떠한가. 동화적 상상력으로 어른들에게 와 닿는 영화를 창조해 냈다. 퍼시픽 림(2013)에서 그는 그가 생각하는 미래 로봇의 세계관을 담아 육중한 크리쳐들과 로봇의 대결을 박진감 있게 그려냈다. 실패작이라고 평가받는 그의 최근작 크림슨 피크(2015)에서도 그의 호러 감성이 잘 묻어나 있다. 그는 성공적인 흥행 감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의 영화는 그만의 인장이 있다. 기존에 있었던 비슷한 이야기를 그만의 방식으로 독창적이고  아름답게 들려주기 때문에 그의 마니아 팬들도 많은 것 같다. 이번엔 그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무슨 영화일까? 새로운 크리쳐물

 셰이프 오브 워터(2017)는 포스터나 예고편만 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쉽게 알 수가 없었다. 새로운 크리쳐물인가 궁금증이 생겨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면서 계속 영화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다. 그 시대는 미국과 소련이 여러 가지로 경쟁하던 시기였고, 서로 스파이들이 많이 숨어서 활동하던 시기였다. 특히 우주 개척 사업을 누가 먼저 하느냐를 가지고 경쟁했던 시기였다. 그 시대 배경 아래 군 주도의 실험실이 배경이다.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정치적으로 실험체를 이용하여 상대 국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게 무엇이든 특별한 결과물이 없다면 바로 그 프로젝트는 사망 선고가 내려졌던 시기였다. 그 시대를 배경으로 특정 실험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의 주인공인 엘라이자(셀리 호킨스)는 말을 못 하는 농아이며, 과학 실험을 하는 정부 실험실에서 일하는 청소부다. 실험 경쟁의 한가운데에서 동료 젤다(올리비아 스펜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즐겁게 일하고 있고, 집에서는 이웃 자일스(리처드 젠킨스)와 같은 층 옆 집에 살고 있고, 자일스와도 둘도 없는 친구로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도움도 준다. 영화가 시작되면 엘라이자가 잠에서 깨서 일하기 전까지 하는 일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누구나 하는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여기에는 음식을 준비하고, 샤워를 하면서 물속에서 혼자 에로스적인 일을 하기도 하고, 이웃인 자일스와 대화도 나눈다. 이런 일상 속에서도 그는 농아 이기 때문에, 접촉할 수 있는 사람에 한계가 있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동정을 사기도 한다. 세 들어 살 고 있는 극장 건물의 주인도 그녀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하여주려고 한다거나, 선의의 도움을 주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농아인 엘라이자를 측은한 마음으로 동정하게 되는 반면, 그녀가 대화할 수 있는 젤다와 자일스는 동정심보다는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된다.

외로운 상황 속에 놓여있는 등장인물들


 그녀를 비롯하여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특정 상황에 고립되어 있거나, 장애가 있어 소통에 문제가 있고 그러므로 인해 모두 외로운 상황이다. 엘라이자는 농아여서 주변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고, 그래서 연애 상대를 찾는데도 어려움이 있고, 아침마다 물속에서 자신을 위로하며 그런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자일스는 이제 나이가 들어 일에서 퇴직을 당하고, 과거 직장상사도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 또한 그가 짝사랑을 하던 파이(pie) 레스토랑의 종업원에게 퇴짜를 맞아 늘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엘라이자와 같이 일하는 젤다는 어떤가, 젤다는 결혼도 했지만, 남편과는 대화가 되지 않아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있고, 그 처지를 엘라이자에게 이야기하며 외로움을 달랜다. 또한 실험실에서 일하는 박사인 호프 스테들러(마이클 스털버그)는 소련과 미국 사이에서 괴생명체(더그 존스)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의 소속이 소련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괴생명체를 살리는 선택을 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그는 양 나라의 언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편을 들어주는 국가는 없으며, 결국에는 엘라이자를 도와 괴생명체를 살리게 된다.


 영화에서 괴생명체 등장 후, 엘라이자와 만나는 순간은 두 사람의 양 손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맞닿는 것으로 그려진다. 괴생명체는 물속에서, 엘라이자는 물 밖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보통 첫눈에 반하거나, 뭔가 느낌이 통하는 장면은 보통의 로맨스 영화에서는 대단하고 아름답게 묘사되지만,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는 보통의 일상적인 순간처럼 묘사하고 있다. 어떤 끌림을 느낀 엘라이자가 가져와서 괴생명체에게 주는 삶은 달걀 엘라이자의 언어를 알려주며 소통을 시도하는 모습은 일반적인 연인이 거치는 '썸(some)'의 모습과 닮아있다. 이런 모습은 특히나 국제 연애를 하는 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한 명은 타국으로 온 사람이고, 한 명은 본인의 국가다. 서로의 언어를 몰라도 뭔가 좋은 느낌을 받으면, 소통을 시도하려고 하는데 그게 어떤 언어이든 상관없다. 먼저 음식을 나눠먹고, 음악을 듣고 자신들의 언어를 조금씩 알려주며 서로를 알아가고 결국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서로를 알기 위해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마음을 열게 된다. 이 과정이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두 주인공에게 벌어진다.

폭력과 성공 욕심에 중독되어 외로움 이들을 괴롭히는 악역


 악역으로 등장하는 리처드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과거 한국전쟁에서 윗사람에게 인정받고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실험실의 책임자 역할이다. 그는 계속 윗 선인 장군에게 인정받기 위해 더 폭력적인 방법을 써서 결과물을 빠르게 내려고 한다. 괴생명체를 고문하고 괴롭혀 결과물을 얻으려고 하는데 그를 보며, 최근 개봉한 1987(2017)의 고문이 떠올랐다. 자신이 유리한 물 밖에 괴생명체를 묶어놓고 고문하며 괴롭히는 모습도 그렇고, 영화 후반부에 자신의 상관인 장군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모습이 영화 1987의 고문 기술자의 처지와 다르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나쁘게 그려지지만, 그 역시 정치 체제 경쟁의 희생자로 폭력적인 방법에 도취되어 일을 진행하지만 결국 그 도취된 폭력성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 결국 그도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그가 원하는 소통을 하지 못하고 고립되어 외로운 존재였다. 그의 가족들은 모두 그에게 말을 많이 하는데, 그런 그는 그 대화에 참여하거나 반응하지 않고 침묵하는 존재인 농아에게 은근한 성적 끌림을 느낀다. 그의 소통 방식은 일반적인 소통이 아니라 무조건 자기 말에 복종하고 말없이 따르게 만드는 일방적인 소통 방식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그 자신은 외로웠으리라 생각된다.  


 결국에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다. 엘라이자와 괴생명체가 서로 소통하고 서로의 마음을 느끼게 된 순간부터 자유롭게 흘러가는 물처럼 그들의 마음은 이미 서로의 마음에 흘러갔다. 두 주인공은 각자의 특징 때문에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 늘 외로움을 느꼈는데, 그들이 가진 단점은 두 사람이 만나서 소통하는 순간 모두 장점이 되어 버린다. 그들은 후반부에 성적인 교감과 관계도 맺게 되는데,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던 장면이 물속에서 매우 아름다운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들이 서로를 안을 때, 그들이 서로의 손을 잡을 때 보는 이들은 이들의 행복한 모습에 미소를 짓게 된다. 그 주변인들은 어떤가, 그 둘의 사랑을 지지하고 도와주는 사람들도 그들을 도움으로써 누구의 지휘나 지시가 아니라 온전히 자기 자신의 결정을 하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외로운 마음을 조금 덜게 된다.

 영화 전반에 물의 모습은 다양하게 변주되며 아름답게 보여주게 된다. 특히 비올 때, 버스 창의 비가 물방울에서 시작하여 하나 둘 모여 점점 커지는 모습도 매우 아름답고, 물속에서 또는 물 근처에서 묘사되는 물의 모습에는 어떤 성적인 매력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묘한 물의 분위기는 두 주인공이 물속에서 사랑을 나눌 때 극대화되어 아름다움의 절정을 달린다. 결국 중반부 탈출 장면을 거쳐 후반부 부두 탈출로 이어지고 결말부에 엘라이자의 비밀이 밝혀지게 된다. 결국 사랑이란 주변 사람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신 만의 특징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자신만의 단점,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늘 이상하거나 안 좋게 느껴져 없애거나 조정하고 싶었던 그 단점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소통하면서 그 자신만의 장점으로 승화되는 모습이 우리의 사랑이야기와 닮아있다. 결국 사랑은 서로 소통하면서 자기 자신의 다른 장점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의 주요 등장인물 모두 그 역할에 딱 맞는 연기를 보여준다. 엘라이자를 연기한 셀리 호킨스는 농아이지만 사랑과 에로스를 욕망하고 소통하고 싶은 느낌을 매우 아름답게 잘 전달했다. 괴생명체를 연기한 더그 존스는 델토로의 여러 영화에 크리쳐로 분장 연기를 많이 했는데 이번에도 사랑을 느끼는 크리쳐를 실감 나게 연기했다. 그밖에 엘라이자 커플을 지원하는 친구들의 연기도 훌륭하고, 그들의 사랑을 막으려는 악인을 맡은 마이클 섀넌도 극악무도한 연기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는 물일 것이다. 수조의 물, 내리는 비의 물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는 물의 형태들은 영화의 흐름 속에 잘 스며들어 영화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영화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데에는 음악도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The shape of water' 도 아름다운 물속의 로맨스와 잘 어울리며, 영화 중반에 흘러나오는 'La Javanaise-마들렌느 페이루' 의 노래도 너무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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