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을 함께한 장난감 그리고 아이

by 레빗구미


어린 시절엔 장난감이 무척 소중했다. 침대 옆에는 인형들이 나란히 앉아있고, 노는 방에는 온갖 로봇과 자동차들이 구석구석을 채웠다. 나와 동생의 방은 그랬다. 남자 형제였던 우리의 방은 로봇, 자동차, 공룡 같은 장난감들이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장난감이 많았던 건 아니었다. 부모님은 장난감을 많이 사줄 형편이 되지 않았고, 나와 동생은 그것에 대해 크게 불만을 가진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사고 싶은 장난감이 많았을 뿐이다.


커가면서 많은 장난감들은 게임기로 대체되었다. 영화 <토이스토리> 시리즈에서 장난감 주인인 아이 앤디가 겪는 상황처럼 이사를 한 번 가면 대부분의 장난감들은 버려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떤 걸 가지고 가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어린 나이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어떤 걸 버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난감은 미국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가필드 인형이다. 그 인형을 고등학교 시절까지 가지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것만은 버리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영화 속 앤디가 가장 아끼던 우디의 위치였을까. 그 인형은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누군가에게 기부되었다. 기부되기 전까지 혼자 있을 때면 내 마음속 이야기를 가필드에게 털어놓았다. '땡구'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그때, 정말로 큰 소리로 물었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너라도 있어 다행이다"


어쩌면 장난감으로부터라도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내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는 그 장난감을 많이 아꼈다. 그래서 선뜻 먼저 버린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방 어딘가에 고이고이 잘 간직했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장난감이랄 것이 없다. 그저 작은 스마트 폰과 노트북이 내가 가진 유일한 장난감이고, 그것으로 못할 것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결국 전자기기가 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일 것이다. 나만의 시간을 가질 때, 나는 이것들을 이용해 놀면서 나 자신에 대해 기록한다. 어릴 적 가지고 있던 장난감은 내게는 이제 남아있지 않다.


언젠가 아내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어렸을 때 무슨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어요?". 사실 뻔한 대답이었다. 수많은 공주 인형과 그밖에 인형들을 가지고 놀았다. 아내의 부모님인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아내가 어린 시절 원하는 장난감을 거의 다 사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 친척 언니와 많은 시간을 소꿉장난을 하며 보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증거는 여전히 장모님 댁에 남아있다. 장모님 댁에는 꽤 많은 인형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몇 개의 공주 인형과 개구리나 강아지 인형 같은 작은 장난감들이 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모두 아내가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것들이다. 놀랍게도 20년도 더 지난 그 장난감들은 여전히 버려지지 않고 예전 아내의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마치 <토이스토리>의 장난감들처럼! 심지어 모두 같은 장소에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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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내는 그 장난감들에 관심이 없다. 마치 <토이스토리 3>의 마지막 장면처럼 그 인형들은 그대로 우리의 아이에게 전달되었다. 아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이제 우리의 딸이 가지고 논다. 아이는 그것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관심이 없다. 아이의 눈에는 새로운 장난감이고 너무나 귀여워 안아주고 싶은 친구일 뿐이다. 잠잘 때도 인형 몇 개를 골라 꽉 안고 잔다. 어떤 때는 인형을 던져버리기도 하지만 인형을 다른 사람 준다고 하면 금세 자기 꺼라며 큰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는 그렇게 그 장난감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로 각인시켜 버린다.


그 장난감들은 아이에게 또 다른 추억을 안겨주고 있다. 장모님 댁의 장난감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종류의 캐릭터다. 중국에서 한국 집으로 돌아오면 한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캐릭터의 인형과 장난감이 있다. 요즘 아이는 콩순이에 빠져있다. 놀 때는 콩순이 장난감으로 소꿉장난을 하고 잘 때는 곰돌이 푸와 티거 인형을 꼬옥 안고 잠이 든다. 그 밖에도 수많은 장난감들이 아이의 놀이방에 가득 차 있다.


나와 아내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지금 아이와는 많은 시간을 같이 장난감을 가지고 시간을 보낸다. 같이 소꿉장난을 하고 대화를 주고받는다. 지금의 장난감들과는 세 식구가 함께 한다. 장난감들에게 밥을 만들어 먹이고 샤워를 시키고 잠을 재우고 나면, 비로소 아이가 잘 시간이 된다. 나와 아내의 추억은 그렇게 아이의 추억이 된다.


언젠가는 그 장난감들을 버려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어른인 나의 머릿속에는 어떤 걸 먼저 버려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에 그건 아이가 결정할 일이다. 아마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버려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아내가 버리지 않아 다시 아이에게 전달된 그 장난감들처럼 어쩌면 아이의 추억을 가득 담은 장난감들 중 일부는 아이가 미래에 만나게 될 또 다른 아이에게 전달될지도 모른다.


그 장난감의 미래를 우리가 당장 알 수는 없다. 그저 아이가 장난감과 함께 하는 현재를 즐기면서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와 아내의 추억을 만들었던 그 수많은 장난감들은 이제 아이에게 따뜻한 기억들을 만들어 줄 것이다. 내가 힘들 때 날 위로해주었던 땡구 인형처럼, 아이도 자신을 위로해 줄 따뜻한 장난감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이는 이제 막 장난감에 의미를 두기 시작했고, 꽤 오랜 시간 동안 장난감과 같이 성장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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