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빠도 아팠어. 미안해

by 레빗구미



감정을 조절하는 건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어린 시절 나는 표현하는 것도 감정을 조절하는 것도 어려워했다.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주변 눈치를 많이 봤고 내 생각이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잘 전달하지 못했다. 부모님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했지만 그래도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잘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보니 좋지 않은 감정은 그냥 내 속 깊숙이 묻어둔다. 그렇게 차곡차곡 사연들을 꾹꾹 눌러 담다 보면 더 이상 담을 공간이 없어 터져 버리는 순간이 온다.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감정을 내뱉지 못하고 쌓아두었다가 한 번에 폭발하듯 분출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연애도 안정적으로 하면서 사람들 간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맺어야 하는지를 배우고 내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가진 마음의 성향을 완전히 다 바꿀 순 없겠지만, 그래도 표현하려 노력하고 불만을 말로 전달하는 것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감정적인 폭발을 하는 장면은 점점 줄어갔고, 꽤나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내와 큰 문제가 없었다. 아내가 나이가 어렸고 외국인이었지만 둘 간의 의사소통이나 감정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흔한 말다툼도 없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것이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 생활이 시작되었을 때, 다시 감정들을 내 속에 쌓아두기 시작했다. 이건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내도 그 감정을 그저 꾹꾹 눌러 담았다. 힘든 육체를 이끌고 피곤함을 이겨내며 챙겨야 하는 아이에게는 화를 낼 수 없다. 내 감정을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저 옆에서 챙겨주고 씻겨 주고 놀아줘야 한다. 아이가 눈빛으로 전달하는 무언의 요구는 부모로서 당연히 감당해야 할 의무와도 같다.


기꺼이 이 고통과 인내를 받아낼 준비가 되어 있지만 아내는 나에게, 나는 아내에게 짜증 내며 감정을 쏟아내는 순간들이 늘어난다. 싸움으로까지는 연결되지 않더라도, 서로 기분이 상해 토라져 있거나 말을 하지 않는 어색한 순간이 우리에게 감정 소모를 더 심하게 만든다. 아이가 세 돌이 된 지금까지 종종 찾아오는 이 감정싸움은 우리에게 각자의 감정을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하게 만드는 장점도 있다. 일단 화가 나면 불만을 이야기하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 과정은 우리가 죽는 그 순간까지 이어질 것이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같은 평화로운 교류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아이의 감정도 알아야 하고, 아이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나 아내가 출장으로 자리를 비울 때는 아이와의 교류가 더 중요해진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금방 신나게 놀다가도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바로 젤리 하나를 손에 쥐어주면 배시시 웃으며 기분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아이는 폭발하듯 화를 내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저 순수한 감정으로 다른 사람과 교류한다.


할머니 집에 갔을 때, 아이는 할머니를 보며 이야기한다. "할머니, 나 할머니 좋아요". 아주 짧은 말이었지만 진심이 담겨있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짧은 문장으로 드러내던 아이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와 뛰며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아이의 표정에는 고여있는 감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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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출장 간 어느 날, 3일째 혼자 육아 중이었다. 아이가 컵으로 물을 마시다가 컵을 나의 새끼발가락 위로 떨어뜨렸다. 무척 아팠다. 발가락이 빨갛게 변했고, 주변에 컵에 있던 물이 다 쏟아졌다. 순간 마음속에 있던 분노가 올라와 아이의 엉덩이를 때렸다. 꽤 강하게 때려서 아이도 무척 놀란 것 같았다. 아이는 바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발가락을 움켜잡고 한참을 가만히 있는 내 귀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그런 순간은 앞으로도 또 찾아올 것이다. 가장 좋은 건 그 순간을 참아내고 시간이 지나서 아이에게 잘 이야기해주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을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쌓아두던 감정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순간에 폭발하기도 할 테니까. 만약 아이나 아내에게 그런 감정을 쏟았다면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후에는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미안하다고.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앞에 가서 이야기한다. "아빠가 엉덩이 때려서 미안해. 근데 아빠도 너무 아팠어. 그리고 물도 다 쏟아져서 화가 났어요. 앞으로 조심해요. 아빠가 미안해". 사실 이 이야기를 한 건 내가 나의 감정이 어땠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이는 이전까지는 특별한 반응 없이 "응" 이라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 내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듣던 아이는 내 얼굴을 만지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아빠 미안해요. 다음엔 안 그럴게요. 아파써?". 약간은 어눌한 말투의 세 살 아이는 이 말을 한 뒤 나에게 다가워 볼에 뽀뽀까지 해주고는 다시 보던 유튜브 화면을 향해 걸어갔다.


내가 표현한 감정에 대해 적확한 감정적 반응을 보인 아이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주변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고, 미안한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아이는 감정을 쌓아두지 않고 그렇게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서 아이가 이제는 표현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했음을 느낀다.


아마도 아이는 성장해 나가면서 자신의 감정을 모두 쏟아내지는 않을 것이다. 어른이 되면 누구나 그렇듯 어느 정도는 마음속에 쌓으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래도 표현해야 하는 순간에 그저 참고만 있는 존재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참고만 있는 것은 감정을 조절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쌓아두기만 하다가는 그저 폭발하고 마는 것이 당연하니까.


아이를 재우기 위해 같이 침대에 누우며 이야기한다. "아빠가 많이 많이 사랑해요". 가만히 쳐다만 보던 아이는 "나도 사랑해요"라고 이야기한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아이에게 처음 듣는 사랑에 대한 리액션이다. 아이의 마음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그 말을 마음속 깊이 담아둔다.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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