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눈 속에서 나를 보다

by 레빗구미


누군가 나를 보는 시선을 부담스러워했었다. 정확히 말해 상대방의 눈을 보며 이야기하지 못했었다. 왜 그렇게 상대방의 눈을 피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어느 순간부터 상대방의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늘 다른 곳을 보며 이야기했다. 저 멀리 뒤 편의 벽을 보며, 책상을 보며, 내 손을 보며 대화를 나눴다. 말 조차 적었던 나는 소통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일방적인 소통일 뿐이었다. 그저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 어쩌면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 자체를 두려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눈을 보지 않고 상대방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상대방의 눈을 본다는 것이 너무 어색했고 어려웠다. 어느 날 친척 형과 대화를 나눌 때, 그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지 않고 있었고 그것이 상대방에게 이상한 느낌을 주었다.


"너는 왜 눈을 안 보고 이야기해?"

"응? 눈을 안 봐도 다 듣고 있는데, 이상한 건가?"

"음.. 내 이야기를 안 듣는 것 같잖아. 내가 이야기할 때도 그렇고 니가 이야기하는 때도 다른 곳을 보니까 뭔가 자신감이 없어 보여. 분명히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상대방 없이 대화하는 느낌이야. 전화도 아닌데"

"앗. 그렇게 느껴지나? 근데 눈 보는 게 어색한데."



쉽게 고쳐지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 뒤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누군가와 눈을 보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연애를 시작하고 여자 친구들과도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30대가 넘어서야 상대방을 보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들에 확신이 생기고, 자신감이 들었다. 아마도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나 자신을 아끼기 시작한 것 같다.


나 자신에 대한 방어기제로, 그리고 나를 무조건 상대방보다 낮은 하찮은 존재로 찍어 누르던 나의 이성은 아마도 그때까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만 눈을 보며 이야기를 했다. 나 자신을 완전히 드러낼 수 있는 존재에게만 상대방의 눈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늘 나 자신을 최대한 감추고 눈을 바닥으로 떨궜다. 그걸 극복하는데 30년이 넘게 걸렸다. 이젠 상대방의 눈을 피하지 않는다. 그렇게 만든 건 다양한 경험도 있지만 결국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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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보며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여기 있고 여기 이 관계에 집중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를 만나도, 고객을 만나도, 연인을 만나도 우리는 상대방의 눈을 보며 이야기한다. 눈을 보며 나 자신이 어떤 태도이고 어떤 사람인지까지도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각자의 감정도 전달할 수 있다.


아내와 같은 회사에 다니던 시절, 아내가 날 쳐다보던 눈을 기억한다. 가을 단풍이 떨어지기 시작한 가을 무렵 아내와는 자주 눈이 마주쳤다. 주변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뒤돌아 나를 쳐다보던 그 눈은 마치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뭔가 확신이 들게 하는 그 눈동자는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아무 연결고리가 없던 우리가 만날 수 있게 만든 그 눈빛은 연애 기간 내내 상대방의 눈을 보게 만들었다.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아도,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그 눈을 바라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눈에서 나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나도 자신감 있게 그 눈을 바라보며 내 사랑을 전달했다. 마치 연애 신호가 5G로 바뀐 것처럼 그저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전달할 수 있었다. 상대의 눈동자에 비친 나 자신이 보일 때, 그때 진정으로 다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상대방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망설임 없이 나를 설명하고, 내 생각을 말하고 사랑을 표현한다. 그런 거침없는 눈 맞춤의 원천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렇게 찾은 나를 눈을 통해 전달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한다. 아이와 눈을 보며 대화를 하면 아이의 감정을 좀 더 빨리 느낄 수 있다. 아이가 왜 짜증이 났는지, 왜 슬퍼하는지를 이제 4살이 된 아이와 눈을 맞추며 알아낸다. 아내가 나에게 감정을 전달했듯, 나도 아이를 보며 내 감정을 전달한다.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빙긋 웃는다.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한다.


아내와 대화를 나눌 때 눈 맞추는 순간은 줄어들었다. 밥 먹을 땐, 아이를 챙기며 밥을 먹어야 하고, 아이가 잠든 이후에는 각자 밀린 집안 일과 외부 일을 하느라 대화할 시간이 많이 줄었다. 잠깐 서로를 쳐다본 후, 각자의 일을 마무리하기 바쁘다. 그래도 잠시라도 상대방의 눈을 보며 전달한다. 내가 아직 여기 있다고,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 그대로라고. 그리고 상대방의 눈에서 다시 비친 나를 본다. 여전히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조용히 생일을 맞은 아내의 눈을 보며 한 번 더 말한다.

"생일 축하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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