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포스트(2017)
스티븐 스필버그의 또 다른 이야기
스티븐 스필버그는 지금 현재 미국 영화 감독 중에 오락영화와 작품성 있는 영화를 모두 찍을 수 있는 유일한 감독일 것이다. 물론 좋은 감독이 많이 있지만, 스필버그 만큼 여러가지 장르로 다양한 주제를 찍는 감독은 드물다. 그는 조스(1975)와 같은 공포 영화도 만들었었고, 인디아나 존스(1984) 같은 어드벤처물, 쥬라기 공원(1993), ET(1984) 같은 SF, 쉰들러 리스트(1993), 컬러퍼플(1985) 같은 현실을 반영하는 드라마도 찍어봤다. 이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많이 만들어온 그는 이번에 레디플레이어원(2018) 이라는 SF 액션 물을 찍는 중에, 더 포스트(2017)를 찍었다. 촬영하는데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어떤 식으로 집중해서 이야기 하는지 잘 아는 감독이다. 늘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관객 입장에서 즐거운 일이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추악한 진실과 관련된 이야기
더 포스트는 닉슨 대통령 시기에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벌어졌던 일을 토대로 하고 있다. 미국이 숨겼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추악한 진실을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를 중심으로 백악관과 소송전을 벌이게 되는 이야기의 일부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워싱턴 포스트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당시 포스트의 사장이었던 캐서린(메릴 스트립)과 편집장 벤(톰 행크스)을 중심으로 영화가 전개되는데, 좀 더 무게추가 있는 쪽은 캐서린이다. 영화는 캐서린이 회사의 주식 상장을 위해 투자자 총회에 참석하는 내용을 시작으로 해서 뉴욕 타임즈의 보도에 대한 태도,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 대한 논쟁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캐서린의 성장담을 담고 있다.
캐서린은 죽은 남편 대신 회사 운영을 맡고 있고, 그 당시 워싱턴 포스트는 일개의 지역 신문 정도의 규모 였다. 회사 재정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어서 캐서린은 주식 상장을 통해 보다 많은 투자를 받으려는 노력을 한다. 이 때 캐서린이 투자자들을 설득하러 가지만, 그 앞에서 그녀는 쉽게 말을 하지 못한다. 편집장인 벤과의 회의 에서도 편집의 권한은 벤에게 맡기고, 기사에 대한 부분은 관여를 많이 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연약해보이고, 신문사의 미래에 대해서 오직 운영, 특히 자금적인 부분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 와중에 뉴욕 타임즈가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 하면서, 편집장 벤은 다방면으로 이와 관련한 특종을 얻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후에 그 문서 습득 후 보도에 관한 것을 캐서린과 토론하게 된다.
진짜 기자들의 이야기
영화는 이 일련의 과정들을 철저히 건조하고 전문적인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실제 신문사에서 루틴하게 벌어지는 일들을 묘사함으로서 더욱 현실감을 준다. 무엇보다 영화 후반부에 법률팀, 보도/편집팀, 경영진 등이 다 같이 전화로 컨퍼런스 콜을 하는 장면은 굉장한 긴장감을 준다. 보도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단순한 토론을 법률적 관점, 언론적 관점, 경영진 관점으로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보는 관객도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든다. 마지막에 신문 인쇄기가 돌아갈지 말지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현재 시점의 여러가지 상황들과 맞닿아 있다. 그 당시 강압적이고 독선적이었던 닉슨 대통령의 모습은 트럼프 대통령과도 비교가 되고, 언론을 통제하려고 하는 모습도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미국 내에서도 현실의 거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닉슨 행정부의 언론에 대한 태도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의 추악함을 보면 현재 한국의 상황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지난 10년의 보수정권 동안 권위적이고, 통제적인 정부를 오래 봐왔다. 그리고, 그 안에는 여러가지 추악함과 부패가 자리잡고 있었다. 결국 한 방송사의 폭로로 시작된 기사와 뉴스들은 한국의 정치 상황을 많이 바꿔 놓았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대한 비판을 했다. 언론의 역할인 권력 견제, 정부 견제 등을 잘 하지 못하고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 인데, 이런 점들을 떠올려 보면, 닉슨 시절 언론들이 얼마나 단결했고, 혁명적이었는지를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사장 캐서린의 성장담
결국 영화는 사장인 캐서린의 성장담이다. 그녀는 영화 속의 결정으로 언론의 사명감이나 의무를 잘 알게 되었고, 그것이 언론사에게 가장 좋은 투자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 당시 실제로 그런 토론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논쟁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기사화의 결정은 사장인 캐서린이 했을 것이다. 그 정도 규모의 신문사에서 유일한 여자 사장이었고, 잘 못하면 감옥에 갈 수 있었던 상황임에도 그녀는 과감한 결정을 하게 되고, 결국 그 결정은 워싱턴 포스트의 성장하게 만들었다.
캐서린을 연기한 메릴 스트립은 강렬하진 않지만, 보는 이를 설득하는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 초반에 많이 머뭇 거리고,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모습에서 후반부 단호하게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매우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다. 벤 역할을 맡은 톰 행크스의 연기도 부드러운 편집장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다른 신문사 인물들도 적절한 연기를 보여준다. 마치 모든 인물들이 실제 기자나 관련자 인 듯한 느낌을 준다. 모두 아주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들은 아니지만, 마치 톱니바퀴 처럼 잘 맞는 기자들의 팀웍을 잘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