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우울해질 때가 있다. 내가 자라온 환경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내 천성이 이런 감성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이 우울이라는 감정이 심해지면 그 감정의 끝까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왜 이럴까'라는 의문을 던지고, 이내 '내가 하는 건 다 안되는구나'를 거쳐, '나는 존재하면 안 되는 거였어', '돌아가 볼까'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감정은 이내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그저 조용한 아이로 머물렀던 어린 시절부터 내 생각과 감정을 선뜻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생각했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울었다. 누군가에게 혼나면 참아내기보다는 눈물을 보이고는 바로 입을 닫고 조용히 내 존재감을 지웠다. 어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이 과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 감정의 파고가 당기고 미는 패턴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종종 우울하고 그 우울감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이런 나의 감정에 대해 누군가에게 속시원히 털어놓은 적은 없는 것 같다. 그저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고 다른 것에 집중하면서 그런 감정들을 잊으려 애썼다. 대외적으로는 크게 문제없고 어느 정도는 밝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다른 사람에게 기억되었던 것 같다.
연애라는 과정은 내게 그런 우울한 감정을 잊는 좋은 시간을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좀 더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가 내 생각보다는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아내와 만나고 나서 내가 꽤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늘 내가 대단하다고 이야기해주었던 아내 덕분에 용기를 내어 결혼까지 하게 되고, 우울한 생각들을 어느 정도는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결혼 이후에도 그런 우울한 감정이 찾아올 때가 있다. 여전히 내가 하는 것이 없고, 잘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자기 비하의 생각에 빠져들어 우울감에 빠진다. 주로 체력적으로 힘이 때 그런 감정이 쉽게 찾아오는 것 같다. 누구나 감정의 높낮이가 있듯이 이 리듬은 반복된다. 최근에도 그런 우울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내는 이제 자신의 일을 하느라 무척 바쁘다. 아내가 자신의 비즈니스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고 앞으로의 긍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면, 나는 좀 더 걱정이 많은 편이다. 현재의 장애물이나 단점들을 먼저 보고 앞으로 내가 겪어야 할 어려움을 먼저 떠올린다. 아내는 주위 반응이 어떠하든 일단 시작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해결책을 마련하려 한다. 또한 무엇보다 긍정적으로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쉽게 감정의 골로 빠져들지는 않는다. 반면 나는 주위 반응을 신경 쓰고 해결책을 마련하지만 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무엇보다 내가 바라본 나는 못하는 것 투성이다. 어떤 부정적인 필름이 내 시각을 가리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늘 아내에게 자기 자신을 너무 부정적으로 본다고 핀잔을 받는다. 어쩌면 그게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 나를 믿지 않고 나 자신에 대해 확신이 없는 것은 결국 우울감의 길로 접어들게 한다.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글을 써나가는 것도 이런 우울감에 일조한다. 브런치, 블로그에 글을 쓰고 SNS에 공유하고 나면 자꾸 몇 명이나 읽었을지, 이런 글을 읽기나 할지, 이렇게 글을 써나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를 의심하고 생각하며 나를 깎아내린다.
'나에 대한 확신이나 자신감이 왜 이렇게 없을까?'. 이 문제를 40대가 된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했다. 어쩌면 평생 내가 안고 살아가야 할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데 어느 정도 써나갈 능력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나면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비교대상이 있다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자꾸만 생각의 흐름이 그 길로 접어든다. 앞으로도 계속 이 문제를 안고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이제 결혼 생활 8년이 넘어가니, 아내도 나의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울해지는 시기에는 내 감정을 아내에게 아주 솔직하게는 이야기하기 어렵다. 바쁜 아내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고, 사실 어떤 식으로 내 감정의 이야기를 설명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가능하면 혼자 참아 넘기고, 정말 못 참을 정도가 되면 그때서야 조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어렵게 입을 떼고 이야기를 해나가면 결국, 아내가 말을 한다. 아내의 한 마디는 큰 힘이 된다. 잘 될 거라는, 잘하고 있다는 그 말을 아내로부터 들으면 긍정적인 마음이 다시 싹트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야기할 때는 내가 지금 어떤 것들을 하고 있는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럼 아내의 격려가 이어진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다고, 이런저런 것들을 이야기하면 아내는 늘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기가 잘 될 거예요. 우리가 잘할 수 있어요".
그럼 내 안에 생각은 이렇게 정리된다.
"그래 잘하고 있는 거야. 잘 될 거야. 나를 미워할 필요는 없어"
우울한 감정은 계속 나를 찾아올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걸 느끼고 아내와 이야기하고 또 글을 써 내려가면 그래도 좋은 것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던 때, 목표는 10년 후 책을 내보고 싶다 정도였다. 공모전이 있으면 그곳에 글을 내보기도 하고 영화 관련 모임이 있다면 참석해 보고 싶었다. 당장은 다 이루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영화 리뷰든, 내 생각을 정리한 글이든 써나갈 수 있는 공간은 있다. 그리고 무한 긍정의 아내도 있으니 마음속에 모든 걸 담아두기보다는 그 생각들을 같이 나누면 조금은 감정의 골로 빠져있지만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