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두 달이면 코로나는 없어질 거야. 꼭 그럴 거야"
중국에 계신 장모님과 통화할 때, 장모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다. 작년 초 코로나가 전 세계에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 심천 장모님 댁에 못 간지도 거의 2년이 다 되어간다. 마지막으로 그곳에 다녀온 게 2019년의 추석 명절 때였다. 이제 몇 달 있으면 2022년의 추석을 맞아야 하니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장모님이 늘 이야기했던 두 달은 계속 연장되고 있고, 그게 언제까지 연장될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아이는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자주 찾지만 아이가 '마마'(대만식으로 외할머니를 부르는 호칭)라고 부르는 외할머니의 존재를 잊지는 않았다. 가끔은 마마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한다. 중국어를 자신의 목소리로 선뜻 내뱉지 못하지만 저 화면 너머 말을 거는 장모님의 말들을 알아듣고는 이내 반응을 보인다.
"당근아 너 마마 기억나?"
"아빠 나도 다 기억하거든요? 거기서 놀던 거 기억나요"
"그래? 마마 안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나 계속 마마랑 통화할래~"
어느 순간 장모님께 전화를 걸어달라고 요청하는 아이는 큰 아이패드의 화면으로 외할머니와 만난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장모님이 무언가를 물어보면 아이는 한국말로 대답한다. 그러면 그 말들을 대충 내가 통역하여 장모님께 대신 전달한다. 중국에 자주 왕래할 때 어렵지 않게 내뱉던 언어는 아이의 입에서 말하기 어색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몸짓과 행동으로 전달해 나간다.
장모님과 아이의 영상통화는 대화가 풍성하진 않다. 대신 아이는 자신의 장난감이 있는 방으로 가서 무언가를 하나하나 꺼내서 화면에 보여준다. 자신이 유치원에서 받은 상, 생일 선물로 산 장난감들, 새로 뽑은 작은 뽑기 인형들 같은 다양한 물건들을 장모님께 보여주고 반응을 듣는다. 그렇게 행동으로 의사소통을 해 나가는 아이의 모습, 특히 그때 아이의 표정은 정말 즐거워 보이고 진지하다. 마치 직접 만나지 못해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보여주지 못하지만 안보는 사이에도 자신은 잘 놀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외할머니께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한 번 시작한 통화를 쉽게 끊으려고 하지 않는다.
"당근아 이제 전화 끊어야겠어. 샤워할 시간이야"
"싫어요. 더 할래요. 아빠 잠깐 이리 와봐요"
"안돼! 이제 샤워하고 잘 시간이에요"
"더 할 거야 (울음)"
늘 전화를 끊으려 하면 아이는 더 한다고 떼쓰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화면 앞에서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본 장모님은 그 짧은 잠깐의 시간에 같이 눈물을 흘리신다. 아이가 우는 모습을 봐서 그렇겠지만 그 눈물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있다. 아마도 그 감정 안에는 오랜 시간 동안 딸과 외손녀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눈물을 훔치면서도 아이에게 이제 곧 잘 시간이니 내일 또 하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덧붙이신다.
"당근아 두 달만 참아, 60번만 자고 나면 코로나가 없어질거구, 그때 마마 집에 오면 맛있는 거 많이 해줄게"
늘 하시는 말이다. 먼 이국 땅에 보낸 딸이 건강히 잘 있는지, 직접 만져보고 챙겨주고 싶고, 손녀와 함께 집 근처에 산책을 가고 싶으실 것이다. 그런 사소한 것들을 하지 못하니 장모님은 먼 곳까지 직접 구입한 차나 간단한 전통 과자류를 택배로 보내곤 하신다. 나와 아내가 늘 만류하지만 장모님은 몰래 보내시고는 아내는 빼고 나에게만 위챗으로 문자를 보내신다. 다과류를 보냈으니 아이와 부모님과 같이 나눠먹으라고.
다시 장모님 댁에 갈 수 있는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장모님이 늘 이야기하는 것처럼 두 달 후면 꽤 많은 것이 달라질 거란 생각을 한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단 희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지금은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장모님은 이런 상황에 갑갑해하시는 것 같지만 멀리서 늘 먼저 챙기신다. 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이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고 계신 것이다. 딸의 생일을 챙기고, 사위의 생일을 챙기고, 손녀의 생일도 챙긴다. 늘 누군가의 생일 아침에는 장모님의 문자가 먼저 도착해있다.
어쩌면 그렇게 사소한 것들을 챙기면서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래고 계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 달 후, 또 두 달 후... 언젠가 그 두 달을 세지 않아도 되는 때, 아이와 아내와 손을 잡고 심천행 비행기를 타고 장모님 댁으로 갈 날을 머리에 그려본다. 함박웃음을 지으실 장모님의 표정이 벌써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런 긍정적인 생각들을 하면서 두 달을 또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