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지암(2018)
한때 유행했던 한국 공포영화 장르
한 때 한국 공포영화가 인기를 끌었던 시기가 있었다. 2000년대 초에 여고괴담1(1998), 여고괴담2(1999), 장화홍련(2003), 가위(2002) 등 다양한 공포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공포영화를 제작하는 비용이 일반 영화에 비해서는 작기 때문에 주로 신인 감독들이 공포 영화 장르를 택해 자신의 장기를 영화에 잘 녹여냈고, 그 당시 관객들에게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 당시 공포 영화를 만들어 흥행에 성공했던 안병기, 김태용, 민규동, 김지운 감독들이 대표적이고 아직까지 좋은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감독들이다.
그 당시 한참 유행하던 공포 영화는 200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시들해지더니 아직까지 정통 공포영화 중 최근에 눈에 띄는 작품이 없었다. 그나마 곡성(2016)이 공포영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정통적인 공포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당시에 좋은 소재와 주제로 접근했던 공포영화와 좋은 호러의 효과들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었던 많은 한국 공포 영화들을 지금은 거의 볼 수가 없다. 그래도 꾸준히 좋은 공포 효과로 스릴러나 공포 영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감독은 최근에는 정범식 감독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기담(2007)을 시작으로 무서운 이야기(2012) 등에서 다양한 호러 감각을 보여 주고 있다.
공포 효과 하나에만 집중한 영화 곤지암
영화 곤지암은 정범식 감독의 가장 최근 작품이고, 정말로 공포 하나에만 집중한 영화다. 영화에는 다양한 최신 장비들이 등장하는데, 1인용 카메라인 고프로, 드론 카메라 등을 등장시켜 다양한 시각에서 영화를 보게 한다. 영화의 줄거리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없다. 한 SNS의 공포 체험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일반 신청자와 함께 곤지암의 폐정신병원에 공포체험을 하러 가서 벌어지는 일이다. 스토리 라인 자체는 별 볼 일이 없다.
곤지암은 스토리 라인보다는 각 인물들의 리액션이나 공포 효과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 처음에는 곤지암 정신병원이라는 실제 폐 건물을 등장시키고, 여러 가지 떠도는 괴소문들을 미리 알려주면서 앞으로 어떤 무서운 장소를 방문하게 될지를 인지시킨다. 초반에 팀을 모아서 친밀감을 높이는 장면은 큰 부담 없이 즐겁게 볼 수 있다. 그 후 곤지암 정신병원을 방문하는 당일의 모습에서 들어가려는 건물을 처음 보여주는 순간부터 관객들의 가슴을 쿵쿵 뛰게 만든다.
영화의 주인공은 곤지암 정신병원 건물 자체
영화의 주인공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정신병원 건물 자체다. 버려진 건물이 주는 으스스함이 있고, 공포감을 주는 여러 괴담들이 있다. 또한 관객 입장에서는 곤지암 정신병원이 실제 영화밖에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 건물은 실제로 경기도 광주에 여전히 폐 건물로 남아있다. 그래서 영화는 정신병원의 각 장소를 샅샅이 보여주며 그곳의 무서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신병원 입구부터 고프로로 촬영되는 각 인물들의 얼굴이나 리액션을 돌아가면서 보여준다. 그리고 건물에 들어간 순간부터 와이드 앵글과 초근접 화면으로 정신병원 곳곳을 보여주게 되는데, 이때 환경이 주는 공포감이 느껴진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이 그 건물에서 탐사하는 느낌을 준다. 건물에 쓰여있는 낙서, 이상한 소리, 문이 저절로 움직이는 장면 등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 주인공들과 같이 놀라고, 점점 공포심이 커지게 된다.
중반 이후 사라지는 조여 오는 공포감
이 긴장감과 공포감은 영화 중반부까지는 효과적으로 유지된다. 특정 장면에서부터 각 인물들이 공포감에 이성을 잃게 되면서 영화는 점점 실제 공포의 원인들을 보여주게 된다. 실제 귀신을 등장시키거나, 인물들의 이상한 행동들을 보여주는데, 그 모습들이 실제로 공포감을 극대화시킨다기보다는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후반부의 공포 효과들은 건물 자체의 특성을 살리기보다는 귀신의 형상이나 상황 자체의 공포로 전환되게 된다. 그래서 후반부의 공포 효과는 너무 직접적이고, 괴기해서 허탈한 느낌을 준다. 각 인물들의 동선이나 반응도 폐건물의 구조들을 활용한 것이 아니어서 앞에서 보여줬던 공포 효과들이 반감되는 느낌을 준다.
배우들은 모두 신인 배우들이다. 그리고 영화가 유튜브에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반영된다는 콘셉트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 입장에서 더 몰입하여 보게 만든다. 과거에 할리우드에서 한 때 유행하던 블레워 위치(1999) 나 파라노말 액티비티(2010)처럼 캠코더를 이용하여 공포감을 만들었던 그 장르를 이용하여 보고 있는 영상이 실제 일어나는 일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이런 장르는 대부분 신인 배우를 쓰는데, 그래야 보는 관객 입장에서 진짜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페이크 다큐 형식의 공포영화는 한국에서는 처음일 것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흥행하고 있는 페이크 다큐
공포영화 장르는 원래 장년층보다는 청년층 특히 20대에 먹히는 영화 장르다. 그래서 곤지암도 젊은 관객들에게 호응이 높다. 물론 관람한 관객들 대부분은 좋지 않은 느낌으로 끝난 영화에 대해서 불만을 터뜨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거나 실제 정신병원을 같이 탐사하는 느낌이 들었다면, 이 영화는 만든 의도를 잘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지지 부진한 한국 공포영화 중에서 이렇게 무서웠던 공포영화가 있었을까? 이런 순수한 공포 영화는 최근에는 없었다. 이런 시도가 앞으로도 계속되어서 공포의 극단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한국영화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