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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Feb 02. 2018

1987(2017)

-시민이 움직였던 그날

1987 그리고 2017

1987년에 일어났던 박종철 고문살해 사건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해에 일어났던 민주 항쟁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고등학교 시절 역사책에서나 몇 줄의 문장으로 알게 된것이 전부다. 그 항쟁으로 인해 민주 선거제가 있을 수 있었다는 정도가 내가 아는 대부분이었다. 사실 1987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아. 또 다른 타입의 현대사 영화가 나오는구나’ 라는 생각이었다. 현대사를 다루는 많은 영화들이 있는데, 정말 재미있거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가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기대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든 생각은, ‘다시 한 번 보고싶다’ 였다. 영화는 박종철 학생이 고문으로 죽게 된 그 시점의 남영동에서 시작된다. 처음 부터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장면들은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며, 박처장(김윤석)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서 그 사람의 악독함과 단호함이 너무나 잘 느껴진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인물은 박처장이 유일하고,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각각의 역할이 다하면 비중이 줄어든다. 어쩌면 영화는 사회적으로 생성된 절대 악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기관 혹은 개인이 모두 역할을 해야 대항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영화를 보고 이런 저런 생각이 들게하고, 마음을 뜨겁게 하며 2017년 현재를 떠오르게도 한다.


영화의 전반부는 박종철 사망 후 공안당국의 대처를 보여주면서, 검사(하정우), 기자(이희준), 교도관(유해진) 등의 반응을 보여주며, 사건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후반부는 일반 대학생인  연희(김태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일반인의 시각에서의 반향에 대한 것을 보여준다. 즉, 영화의 전반부는 사건의 작용에 대한 것이라면, 후반부는 그 사건에 대한 반응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사건의 작용에 대한 내용이 지루할 것 같았지만, 막상 박처장의 대처와 그에 대항하기 위해 움직였던 각각의 사람들의 반응이 흥미롭고, 재미있게 진행된다. 영화의 전환을 맞는 후반부 연희의 등장 부터는 약간의 가벼운 로맨스 물 처럼 흘러가지만, 결말부로 달려가면서 클라이막스 부분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특히 영화에서 좋았던 부분은 연희의 시각이다. 연희는 일반인들의 생각을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연희는 시위하는 다른 대학생에게 묻는다. ‘시위를 왜 해요? 가족들 생각은 안하세요?’ 이것은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하는 생각이다. 그 당시만 해도 시위에 나가면 개인 삶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하고 위험해 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시위에 관심을 두지 않거나 혀를 차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박종철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여러 기사가 써지고, 각종 입소문으로 전국으로 퍼진 항쟁은 결국 사회를 변화 시킨다. 이런 일반인들의 변화를 연희가 대표해서 보여주고 있다.

소시민의 참여가 작은 사회변화로..

사실 연희도 이 사건에 어느 정도 관여가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한 대학생의 죽음, 그리고 그 후에 또 한 명의 죽음은 전국을 분노하게 했고, 연희도 이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런 개개인의 시위 참여는 2016-17년에 나타났던 시위와 연결될 수 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비리로 시작된 촛불 시위는 결국에는 100만명이 넘는 시위를 여러번 하게 만들었고, 결국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이것 또한 1987 항쟁처럼 개개인의 참여로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었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 변화는 시간이 갈 수록 더욱 크게 느껴진다. 영화 1987은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소시민들에게 이야기하는 영화 같다. 잘했다고, 자랑스럽다고..


영화에서 배우 강동원이 어떤 인물인지가 밝혀지는 순간에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나는 그 인물을 사건으로만 접했고 대단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만, 그 인물이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변화를 위한 시위에 좀 더 적극적으로 임했다는 것만으로 그렇게 된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더 분노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나같이 잘 모르는 사람들 에게, 그리고 사건을 잘 아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뜨겁게 하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다.


모든 배우들은 대단한 열연을 펼쳤고, 특히 박처장역할을 한 김윤석은 간담을 서늘하게하는 영화속 수퍼빌런으로 긴장감을 높였다. 하정우도 검사 역으로 굉장한 힘을 보여주고 있고, 나머지 인물들도 대단하다. 감독인 장준환 감독의 세번째 연출작인데, 참 대단하다고 밖에 말을 못하겠다. 이 영화가 아마도 아주 큰 흥행을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이미 신과함께가 연말 흥행을 잡고 있어서, 꽤나 무거운 주제를 가진 1987이 많은 흥행을 하긴 어려울 거다. 그래도 손익분기점은 넘겼으면 하는 희망이다. 근 10년내 한국영화 중에서 내게는 최고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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