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크 크레이지(2011)
#. 브런치 무비 패스로 먼저 관람한 영화입니다.
2016년 사망한 안톤 옐친이 2011년 찍은 영화
안톤 옐친은 2016년에 사망했다. 그가 남김 영화들이 많지만 아직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은 영화가 있다. 바로 라이크 크레이지(2011) 다. 이 작은 사랑 영화에서 그의 마지막 모습을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다. 뭔가 늘 힘없고 흐늘대는 모습의 연기를 보여주는 그는 눈빛만은 뭔가 구원시켜줄 것처럼 반짝이는 배우였다. 처음 주연급으로 나왔던 영화는 터미네이터:미래 전쟁의 시작(2009)였다. 카일 리스 역으로 나와 미래의 전사로 거듭나기 전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 이후 그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가 되었다. 크고 작은 영화를 무수히 찍었는데 라이크 크레이지는 작은 영화 중 하나였다. 이 영화 속에서도 안톤의 공허한 듯 사랑스러운 눈빛은 여전하다.
헤어짐의 아쉬움에 대한 영화
누구나 연인과 만나면서 헤어지기 싫은 순간들을 맞이한다. 대부분은 매일 만나고 밤이 되면 헤어져 각자 집으로 간다. 관계가 깊어지면 헤어지기 싫어 모텔이나 집에서 밤까지 같이 보낸다. 잠깐이라도 헤어지기 싫은 심정, 그 아쉬움과 두려움을 느끼는 여러 순간이 영화에 담겨있다.
제이콥(안톤 옐친)과 애나(펠리시티 존스)는 학교 수업 중 만나 사귀게 되지만 영국 사람이었던 애나의 비자 문제로 여름방학을 떨어져 보내야 한다. 하지만 이때 애나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불법 체류를 결정한다. 떨어진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결국 미국에 방학 내내 머무른다. 이때의 선택은 영화 내내 두 주인공의 목덜미를 잡고 점점 다른 길로 안내한다. 이때 애나가 영국으로 갔다가 다시 왔더라면 이 둘의 관계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을 것이다.
장거리 연애 속에서도 사랑은 지속될까?
애나는 결국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방학 동안의 불법체류로 비자 허가가 나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두 주인공은 결국 장거리 연애를 포기하고 친구로 남기로 하지만 두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갈라놓지는 못한다. 이때 두 사람이 느끼는 건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그리움이었을까? 현재도 많은 커플들이 서로 먼 거리에서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다. 서로 한주에 한 번, 아니 두세 달에 한 번씩 보는 커플도 있다. 이들에겐 서로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것이 얼마나 오래갈까? 서로 떨어져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서로를 조금씩 밀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반대로, 애나의 편집장처럼 장거리 연애 끝에 행복한 결혼이 결말로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소하지만 해결되지 못한 문제로 비롯된 거리감
비자 같은, 어쩌면 사소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커다란 벽에 계란을 던지는 것과 같다. 국적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같이 한다는 것은 누군가는 익숙함 국가를 떠나 생경한 곳에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애나와 제이콥은 비자 때문에 각자의 나라에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흐르고 그들의 사랑하는 마음이 똑같다고 해도 이들이 생활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하던 직업을 포기하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이런 현실적인 고민들은 둘을 떨어뜨려 놓는다. 그들의 사랑은 그대로인 것 같지만, 마음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기만 한다.
멀어진 마음만큼이나 커진 상실감과 허전함은 그들에게 새로운 사람을 들여놓게 한다. 그들이 결혼신고를 하고도 발급받지 못했던 비자 때문에 서로에게 소리쳤던 그 순간,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공허함과 실망감이 가득 차 버렸다. 모든 행정이 느리게 진행되는 영국과 빠른 것을 최고로 여기는 미국의 두 사람이 만나 평범하게 사랑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어려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의 육체를 탐닉한다. 그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미칠 듯이 뜨거웠던 그 사랑을 다시 찾는다.
서로 다른 표현방식으로 각자의 나라에서 자리 잡다
애나는 글로 사랑을 표현하고 제이콥은 가구를 만들어서 사랑을 표현한다. 그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오래 만난 그들은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의 작업에 영감을 주고 긍정적인 기운을 북돋아줬다. 서로 떨어져 있을 때 느꼈던 그리움은 좋은 글이 되고 좋은 가구가 되었다. 좋은 기운은 각자의 직업에서 자신들을 좀 더 전문가가 되게 한다. 그들은 그들이 사랑하면서 배웠던 표현방식을 바탕으로 이미 각자의 나라에서 더 발전할 길을 찾았다. 여기서 애나가 미국에 가거나 제이콥이 영국으로 간다는 것은 결국에는 큰 희생이 따라온다.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이 한 번은 결정하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다. 나 자신도 국제결혼을 했기 때문에 여전히 안고 있는 문제이다. 내 나라에 있느냐, 다른 나라로 가느냐. 결국 한쪽은 포기해야 성립되는 방정식이다. 국가의 제도나 시스템도 중요하다. 비자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고려하고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그 모든 것은 단번에 되지 않는다. 결국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무한에 가까운 이해심이 필요하다. 애나와 제이콥은 그 이해심의 단계를 남어 가지 못했다.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두 사람의 눈빛과 포옹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결국 현실의 큰 벽 아래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넓은 이해심과 배려
결국 그들의 결혼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영화는 제시하지 않는다. 영화 속 내용 이후 그 둘은 해피하게 잘 살 수도 있고 결국 다시 각자 헤어지는 길을 택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결정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있다. 그 종이 한 장 사이에 그들의 사랑이 있는지다. 아직 사랑이 남아있다면 그들은 결국 현실의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미칠 것만 같은 그 사랑은 현실과 만나면서 옅어지고 결국 두 사람을 미치게 외롭게 만든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는 그 미칠 것만 같은 사랑을 매일 같이 찾고 있다.
영화 속 안톤 옐친과 펠리시티 존스의 연기는 제이콥과 애나 자체가 되어 현실감을 준다. 특히나 그들이 마주 보며 엷은 웃음을 주고받는 모습은 현실 연인인 듯 인상적이다. 제이콥의 또 다른 연인으로 나오는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세 배우의 연기 모두 마치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현실감을 준다.
덧. 영화 말미에 주인공 애나가 미국에서 컴퓨터를 보며 일을 찾는데 마켓 리서치 어시스턴트 공고을 본다. 애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마켓 리서치 어시스턴트? 음 별로야.” 내가 이 업계에 있어서 그런지 빵 터졌다. 애나가 생각보다 똑똑하다. 애나 말이 너무 와 닿았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