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러 갑니다(2018)
잔잔하게 마음을 적셨던 일본 원작 영화
2004년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본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잔잔한 일본 멜로가 유행하던 때였다. 아주 큰 흥행을 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본 멜로 영화를 보고 가슴을 촉촉하게 물들였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2003년 이치카와 다쿠지라는 소설가가 낸 책이 원작이다. 이 작가의 소설 중 '연애소설'이라는 책도 영화화되어 성공한 전례가 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보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이 영화의 따스함은 2000년대 초반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를 보고 따뜻한 사랑을 꿈꾸고 평범하게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한 간접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2018년에 한국에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리메이크하여 개봉했다. 소지섭과 손예진이 주연으로 캐스팅되었고, 내용에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최근 한국영화 중에서 멜로 영화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더욱 반가운 느낌이 들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14년이 지난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엄마가 없는 삶을 보여주는 초반부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건 펭귄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다. 펭귄 엄마가 죽어서 하늘나라에서 아들을 지켜보다가 비올 때 떨어져 아들을 만나고, 비가 그치면 다시 구름나라로 돌아가는 동화가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진다. 이 영화에 긴장감을 주고, 흥미를 주게 하는 핵심적인 이야기이다. 이 애니메이션이 보여진 후, 우진(소지섭)과 그의 아들 지호(김지환)다. 그들이 생활을 살아가는 모습이 나온다. 왠지 지호 엄마(손예진)는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엄마인 수아는 얼마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 사람이 떠난 후에 남은 사람들의 모습을 천천히 보여주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새벽에 일어나 직장인 스포츠 센터에 가서 오픈 준비를 하고, 아침에 돌아와 지호와 아침을 준비해 먹는다.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지만, 두 사람 모두 죽은 아내,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매우 크다.
중간에 쓰러진 수아를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세 사람 모두에게 수수께끼를 던져주면서 진행되게 되는데, 그 과정이 따뜻하다. 같이 장난을 치고, 요리를 해 먹고, 산책하고, 이 평범한 삶 자체에 공유할 상대방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누군가가 떠나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 평범한 일상을 같이 지내는 것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하지만 수아가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진과 지호는 걱정하며 최대한 비밀을 지키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유머들은 효과가 좋다. 큰 웃음보다는 역시 잔잔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아들 지호의 리액션이 보여주는 뭉클함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심이 되는 인물은 아들인 지호 일 것이다. 예기치 않게 엄마를 잃고, 앞으로 한 부모 가정에서 자라게 될 지호가 집과 학교에서 보이는 행동들은 현재도 많은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실제로 겪는 일이다. 엄마가 영화처럼 실제로 다시 찾아오지는 못하더라도, 주변의 친구들과 친척들이 그 어둠을 밝게 채워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 비가 그치고 수아가 떠난 뒤 우진과 우진의 친한 친구는 지호를 잘 챙겨 성인으로 성장시킨다. 수아의 힘도 있었지만, 지호에게 이 둘이 없었다면 그 삶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우진은 일종의 장애를 가지고 있다. 과격한 운동을 못하고 심하게 흥분하면 쓰러져 의식을 잃는다. 그래서 학창 시절 수영도 포기하고 삶의 어두움을 가지게 된다. 이때 수아를 만나고 결혼하면서 그 어둠을 밝음으로 채우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어두운 면을 밝게 비춰주는 것. 결혼이라는 제도를 빌려 상대방의 어두움을 밝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건 꽤나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상대방을 믿고 사랑하고, 북돋아 주고,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어느덧 행복이라는 달콤함이 따라온다. 우진은 수아 때문에 더 밝아졌고, 지호를 낳으면서는 더욱더 그런 행복을 지속할 수 있었다.
초반은 우진의 시점, 후반은 수아의 시점
영화는 초반에는 우진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지만, 후반부에는 수아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우진의 입을 빌려 우진과 수아의 과거 연애 이야기를 들려주고, 수아의 입을 빌려 그 답을 들려준다.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해준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 알았을 때, 그러니까 좋은 일, 좋지 않은 일을 모두 알고 있다면 똑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우진과 결혼해서 앞으로 나에게 벌어질 일을 모두 안다면 나는 그 선택을 또 할 수 있을까? 작년에 개봉한 영화 컨택트(2017)에서 제기하는 질문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질문이다. 두 주인공 모두 다시 그 길을 따라간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간 여행 영화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과거의 중요한 사건들을 틀어놓는다. 그래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가만히 놔두고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현재 지금 얻는 행복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두 사람이 만나서 새롭게 만나게 되는 자녀나, 주변 사람들과의 좋은 추억과 관계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영화의 유머들이 그렇게 빵빵 터지는 편은 아니지만,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영화는 크게 클라이맥스라고 불릴 만한 장면을 따로 넣지 않았다. 그래도 후반부는 눈물을 흘리게 된다. 눈물을 흘리게 하는 사람은 대부분 아들 지호다. 아들 지호의 대사와 반응에서 우리는 얼마나 그가 엄마를 필요로 하고 그리워하는지 알 수 있다. 영화 말미 수아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잘 할 거야. 그렇게 되어 있어".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고 결혼하는데, 그 대사와 같은 믿음이 필요할 것이다. 상대방을 믿고 앞으로의 일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평범한 행복을 찾게 된다. 다시 과거로 간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미래보다는 보이는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 오히려 행복할지 모른다. 최근에 이런 영화들이 다시 나온 다는 것은 결국 평범한 지금의 삶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의미가 아닐까?
너무 동화 같지만, 그래도 너무나 이쁘고 따뜻한 영화
영화는 전반적으로 모든 것이 이쁘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소지섭과 손예진은 멜로 영화에 정말로 잘 어울리는 배우들이다. 두 사람다 모두 사랑스럽고 두 사람이 같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지의 캐릭터가 너무 바보 같아서 만화 같은 느낌은 들지만, 이 영화를 싫어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영화의 촬영지 배경이 춘천인데, 역시나 춘천은 아름다운 도시다. 일본 원작 영화와 크게 다르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그 감성을 그대로 현재 시점으로 옮겨놓은 영화였다. 그래서 가슴이 따뜻한 채로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