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 2049>
30대의 어느 날, 가장 친구를 만났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족발에 막걸리와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얼큰한 상태로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도 취했고 나도 어느 정도 취했을 때 갑자기 이런 대화가 오갔다.
너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해? 그걸 정의할 수 있어?
너는 너지. 너는 김동근이지. 뭐라고 정의할 수 있냐?
그건 아는데, 나는 내가 누군지 도통 모르겠어. 너는 그런 생각 안 하냐? 내가 어떤 존재인지, 그냥 인간이라는 존재가 맞는지?
너… 너 그냥 인간이지. 그럼 뭔데?
술취해서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다양한 많은 이야기를 나눈 친구에게 언젠가 한 번 물어보고 싶은 말이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친구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의 삶이라는게 얼마나 인간적인 것인지. 족발과 술이 뒤섞여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나의 존재에 대해 친구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나라는 존재를 어떤 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아마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 일 것이다. 내 이름, 나의 직업, 내가 속한 인종 등등, 과학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나에 대한 정의는 꽤나 명확하다. 하지만 그것 말고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왜 태어나서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이다. 조금은 더 존재론적인 질문일 수도 있다. 인간으로서, 모든 인간이 살고 있는 그 사회 안에서 삶을 살아가면서 그런 존재론적인 물음을 하게 되기까지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30년이라는 시간을 정신없이 보낸 다음에야 나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주인공 케이(라이언 고슬링)는 자신이 맡은 임무를 마치고 난 이후 사무실에 들어가서는 정기적으로 어떤 검사를 받는다. 계속 바뀌는 화면을 보여주며, 어떤 목소리가 건조하게 글을 읽는다. 무슨 의미인지 모를 말들이 지나가고 어떤 의미인지 모를 화면들이 지나간다. 그런 알수 없는 것들을 통해 복제인간으로 태어난 그가 정상적으로 복제인간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행동에 이상은 없는지를 검사하는 것이다. 그는 그 검사에 응하면서 무표정한 얼굴로 기계적인 질문에 무심하고 간결하게 답변한다. 케이는 그 검사를 받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질문에 잘못된 답을 하는 건 아닐까 걱정되지는 않을까. 그는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미 그가 태어나 활동을 하기 전부터 그에게는 그런 진실이 주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화 내내 자신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케이는 나름 여자친구도 만들고 사회생활을 한다. 누군가를 동정하고 대화하고 먹고 잔다. 그런 그가 인간이 아니면 케이는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복제인간? 복제인간도 결국에는 인간과 비슷한 존재거나 같은 존재다. 케이는 그 정확한 답을 찾으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케이 삶의 목적 자체가 자신이 인간인지 복제인간인지를 확인하는 것 같다. 실제로 영화는 그가 실제 인간인지 아니면 복제인간인지 여부를 알아보는 과정을 꽤나 중요하게 다룬다. 그의 혼란은 AI 여자친구 조이(아나 데 아르마스)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조이를 인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만약 인간이 아니라면, 그 두 존재의 사랑은 진짜인가 아닌가.
만약 케이가 인간에 속하지 않는다고 정의한다면, 나 또한 인간에 속하지 않는다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인간이라고 느끼게 할까. 무엇보다 나는 감정을 느낀다. 기쁨, 슬픔, 분노, 좌절, 혼란, 그런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는 순간순간들이 나를 인간으로 느끼게 만든다. 과거 영국 경험주의자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나의 감정 속에서 인간다움을 찾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혼란스럽다. 아마도 삶에서 그런 혼란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감정일 것 같다. 어떤 시기에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런 혼란의 감정.
그럼 이렇게 질문해 보자. 복제인간인 케이는 진짜 감정을 느끼는가. 그는 때론 분노하고, 슬퍼하고, 혼란스러워한다. 그리고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사랑을 느끼고,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심지어는 누군가를 동정해 자신을 희생하는 결정을 하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함박눈이 내려 쌓인 눈밭 위에서 케이는 데커드(해리슨 포드)에게 길을 터준다. 데커드의 딸에게 갈 수 있게 만들어 준것이다. 그리고는 하얀 눈위에 털썩 쓰러져 내리는 눈을 본다. 조용히 소복소복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는 케이의 눈은 조금씩 초점을 잃어간다. 그는 데커드를 동정했고 그렇게 더 인간적인 결정을 해내고야 만다.
그런 케이가 눈내리는 하늘을 보면서 초점을 잃어가는 모습을 모두 보고 나면, 결국 케이는 인간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가 다른 인간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다름을 찾아내기 어렵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검사기기들이 과연 제대로 작동하는 것인지, 판별기준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건 단지 요식행위일 뿐 아마 인간도 복제인간을 정확히 구분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무의미한 화면과 나래이션만으로는 복제인간인지 아닌지를 검증할 방법은 없으니까.
나는 여전히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40대에 이르러서까지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태어나서 조금씩 세상과 만났고, 10대, 20대를 거쳐 30대가 되면서 일도 하고 사랑도 하면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30대 초반에 그 질문을 해본적있지만, 결혼과 출산, 이직의 시기를 지나고나서 4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다시 질문하게 된다. 그런데 그 답을 명확히 할 수가 없다. 케이가 인간인지 아닌지를 고민했다면, 나는 내 존재 자체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케이와 나의 고민이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좀 더 의미 있는 존재였으면 하는 생각이 그 밑에 깔려있으니까. MBTI같은 과학적인 심리검사를 통해서 나라는 존재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나에 대해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통계적으로 어떤 특정 집단에 속한다고 정의를 내리기에는 다른 부분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40대의 이 순간들이 더욱 혼란스럽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 걸까.
옳다고 생각되는 일에 대해 목숨을 거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일이 아닐까.
영화 속 대사로서 꽤나 거창한 말이지만, 그건 영화 속 케이의 고민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되는 일에 목숨을 걸고 있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자신의 삶을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끌고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들 비슷할 것이다. 왜 살아야 되는지 잘 모르겠고, 나의 존재가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마도 죽을 때까지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런 혼란은 잠시 뒤로 넣어둔다. 일단 살아가면서 가끔씩 그 혼란과 고민을 꺼내 본다.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누구보다 인간적으로 보이는 인물은 케이와 조이다. 그들은 각각 복제인간이고 인공지능이다. 이 둘은 서로 사랑한다. 집에있을 때 그들은 서로 평범한 대화를 주고 받고, 육체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대역을 불러 실제로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존재의 눈에는 완전한 사랑의 감정이 담겨있다. 또한 위험에 빠진 상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죽음 혹은 삭제를 과감히 감수한다.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이들의 사랑은 진짜다. 하지만 케이와 사랑했던 조이의 데이터가 지워지면 케이가 사랑했던 조이는 이제 존재하지 않게 된다. 케이도 똑같다. 케이가 죽으면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케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의 고유한 인간성과 특성이 그를 우리가 아는 케이로 만든다.
나를 정의하는 수많은 정보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죽은 이후에도 나를 정의할 그 정보들. 나는 누구일까는 그런 정보들이 결정해 줄지도 모른다. 그 다양한 정보가 확정적으로 떠돌아다니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적어도 나 자신은 정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계속 이 혼란 속에서 고민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글을 쓴다. 나의 감정을 드러내고 표출한다. 아마도 이렇게 살다 죽는 순간이 가까워 오면, 영화 속 케이처럼 하늘을 보며 누워서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잘 살아낸걸까. 나란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천천히 내 눈의 초점도 흐려져 갈것이다.
아마도 죽는 그 순간까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니까.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혼란 속에서 고민을 계속 할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이고, 내가 누구인지.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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