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것이 무너질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곡성>의 종구 – 두려움

by 레빗구미




난 두려움을 꽤나 많이 가지고 살았다.

10대는 부모님과 선생님을 두려워했고,

조금이라도 혼날 상황이 되면

마음 속에 폭풍이 드리워졌다.

내 마음은 요동쳤고 시야는 좁아졌다.
혼이 나고 난 뒤에, 손끝이 떨리고 숨이 거칠었다.

그날 하루는 그냥 두려움 속에서 흘러가곤 했다


나 자신을 가두고

두려운일을 피해보려고 발버둥쳤다.

10대 때의 두려움은

결과를 가지고 오지 못했다는 두려움이었다.

그건 결국 성적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20대에도 그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외로움에서 시작된 두려움은

내가 영원히 혼자일거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마음 속의 구름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방황했고,

춘천의 수많은 골목길을 걸었다.

옆에 여러 친구들이 있었지만

내 마음 속을 알 수 있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내 마음 속 구름을 알 수 있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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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아주 천천히, 조금씩 마음 속에서 시작된다.
별일 아니라고 넘겼던 순간들이 어느새 마음에 짙은 구름을 만들어간다.
불길한 느낌, 설명할 수 없는 불안,
그리고 그 불안이 현실이 되는 날.
그때서야 깨닫는다.
아, 내가 무서워하고 있었구나.
하지만 그 두려움을 너무 늦게 알았다.


어머니가 아팠을 때,

회사 상사가 나에게 고함을 쳤을 때,

여차친구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모든 순간들은 두려움이 현실로 찾아온 순간들이다.


그렇게 찾아온 두려움은 일상을 망가뜨린다.

일상이 무너졌을 때,
누군가를 원망하고, 또 미워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두려움은 늘 그 질문과 함께 온다.

그리고 질문은,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끌고 간다.

나는 그렇게 우울의 늪으로 깊이 빠져든다.
그런 감정을 몇 번이나 견뎌왔다.
예상치 못한 사건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무너졌던 날들.

나 자신을 비하하고 미워했던 날들.

두려움은 그렇게 나를 미워하게 만들었다.


<곡성>의 종구는
딸을 지키고 싶은 아버지였다.

종구는 딸을 지키고 싶었고,

나는 내 감정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두려움은 둘 다를 무너뜨렸다.

그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또 믿으려 했다.
경찰이자 아빠인 그는
현실과 미신 그리고 이성과 광기 사이에서 흔들렸다.
그리고 그 질문에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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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지금 누구 말을 듣고 있는 거냐?”


그 한마디는 곧 나를 향한 질문이기도 했다.

나는 누구를 믿고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

나 자신 조차 믿지 못했던 나는

그 두려움을 어떤 식으로 견뎌왔던걸까.


영화 <곡성> 은 중심인물인 종구를

두려움의 끝으로 몰고가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종구는 무너진다.
딸을 지켜야 했지만,
딸을 잃을까 두려웠고,
믿었던 것들 모두가 거짓일까 봐 흔들렸다.
그의 얼굴엔 공포, 죄책감, 절망이 뒤엉켜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눈빛에서
어느 날 내 얼굴을 봤다.


나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엄청난 압박이 내게 쏟아져 올 때.
믿고 있던 관계가 산산조각 났을 때.
누구도 내 편이 아니라고 느껴졌던 날.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를 의심하고,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등을 돌렸던 날.
그땐 진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말도 안 나오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게 두려움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영화 속 종구처럼

나에게도 딸이 생겼다.

딸에게 생기는 모든 일을 챙기지만,

그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막을 수는 없다.

딸이 태어나자마자 입원했을 때,

신생아 중환자실(NICU) 안 침대에서

아무것도 모른채 그저 울기만했던 그때

내가 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건 거의 없었다.

아이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나의 마음 속에 짙은 구름을 드리웠다.

종구처럼 무너지진 않았지만,

마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두려움과 함께 느꼈다.


두려움은 모든 걸 시험에 들게 한다.
믿음도, 사랑도, 나 자신도.
하지만 두려움은 결국 질문으로 남는다.
나는 그때, 제대로 들여다보았던가.
도망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봤던가.
그 질문에 끝까지 남을 수 있다면,
비로소 다시 무언가를 믿을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딸아이는 입원 후 며칠 만에

집으로 나왔다.

그 두려움의 시간을 극복하고

이제 10살이 되었다.

난 이제 아이의 두려움을 만난다.

태권도 학원 사범님이 무섭고,

시험이 무서운 아이.

마치 내가 겪어온 그 짙은 구름을

만나고 있는 것 같다.

그 두려움은 결국 아이와 함께 자랄 것이다.

이젠 그 모든 두려움을 겪어낸 내가

아이에게 그 구름을 무사히 지낼 수 있게

알려줄 때인것 같다.


〈곡성〉은 아이의 두려움을 지켜내지 못한채

그렇게 끝난다.
하지만 내 마음속 공포는 아직도 어떤 장면처럼 남아 있다.
다시 마주할 용기를 갖는 일,
그게 우리가 두려움 속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종구는 끝내 지키지 못했지만,

나는 그 두려움을 기억하며 끝까지 곁에 남고 싶다.

그 두려움에 속박되지 않도록.

그리고 아이도 그 두려움에서 지켜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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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는
〈비포 선셋〉의 셀린 – 후회
그땐 왜 그 말을 했을까. 아니, 왜 하지 못했을까.
후회라는 감정의 얼굴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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