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왜 그 말을 했을까. 아니, 왜 하지 못했을까

<비포 선셋>의 셀린 - 후회

by 레빗구미



지금은 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면,

신기루 같이 느껴진다.

있었지만 사라진 것.

뜨거웠지만 차가워진것.

어쩌면 사랑의 온도는 계속 변해왔을지도 모른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나이에 따라.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그 마음의 온도.



20대는 그런 사랑의 파고를 가장 많이 겪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사랑을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던 때.

상대방에게 말을 걸기도 쉽지 않았던

그 시기의 내 마음은 차가운 얼음장과도 같았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싶지만,

어찌 해야할지 몰라 헤메었다.

어쩌면 방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수많은 시간.

그저 대학교 주변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뭘 해보지도 못한채 시간을 보냈다.

아니 그게 정말 좋아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급한 마음만 있었던것 같다.

그렇게 얼음장 같은 대학시절을 졸업하고나서야

누군가를 의미있게 만나고 사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마음이 너무 차가웠기에

누구도 만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5.JPG


몇 번의 연애를 한 기억중

짧게 만난 한 사람이 기억난다.

전혀 연인이 될 거라 생각 못했던 사람.

학교 다닐 때 오가며 친하게 지냈던 사람.

졸업 후 가끔씩 보다가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마음 속은 따뜻함으로 채워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지만,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날,

뒤돌아 가고 있는 상대를 한참 쳐다보고 있던

그 순간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때는 그저 바라만 봤었지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말을 좀 더 걸어볼걸,

내 마음을 전해볼 걸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건 쉽게 사라지지 않는 마음이다.



후회는 나중에야 찾아온다.

그 순간엔 잘 몰랐던 마음이,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어둠처럼 스며든다.
왜 그랬을까. 왜 그 말을 하지 않았을까.
입 안까지 올라온 말들이 끝내 목구멍을 넘지 못한 그날.
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한 채,
그 순간을 수없이 반복해서 떠올렸다.


<비포 선셋>의 셀린이 그랬다.
시간은 흘렀고, 상황도 달라졌고,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다시 나타났다.
과거의 그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자신을
결국 지금까지도 붙들고 있었다.
후회는 무너뜨리지 않는다.
그저 너무 오래 머물러, 마음을 눌러앉게 할 뿐이다.


4.JPG

후회는 어떤 방향을 가진 감정이 아니다.
희망을 향하지도, 절망을 향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나간 장면들 속,
그때 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이 나를 찾아오는 감정이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그 순간,
안아줄 수 있었던 그날.
그걸 하지 못한 내가
지금까지 나를 괴롭힌다.



누군가를 놓치고,
그 사람을 다시 마주했을 때,
셀린은 여전히 날카롭고, 조심스럽고,
하지만 깊은 속엔 엄청난 그리움이 있다.
그녀는 왜 그랬는지 설명하고 싶고,
왜 그러지 못했는지 설명받고 싶다.
하지만 모든 말은 한 발 늦는다.
사랑은 때로 그렇게 도망간다.



나도 그런 감정을 안다.
누군가를 사랑했지만,
내가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두려워서
아무 말도 못 했던 순간.
내가 너무 괜찮은 척해서,
결국 멀어지게 만들었던 관계.
그때 나는 그 말을 하지 못한 나를
매일 밤마다 원망했다.



<비포 선셋>은 사랑이 남긴 후회를 노래하는 영화다.
셀린의 눈빛, 제시의 망설임.
그 모든 것들이 단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그때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돌이킬 수 없지만,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말할 수 있을까?



셀린과 제시의 다음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은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키운다.

해피엔딩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들은 후회를 남지기 않기 위해

대화하고 또 대화한다.

그렇게 따뜻한 말들을 계속 던지고 있다.


나도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을 지금은 할 수 있다.

이젠 소원해진 아내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점점 커가는 아이에게 마음을 건넨다.

때론 거친 말이 나갈 때도 있다.

그런 상황을 지나고 나면

금방 괴로운 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는 사과를 하고 또 마음을 전한다.



뜨거운 사랑을 하기 어렵겠지만,

따뜻한 사랑을 할 수는 있으니까.

사랑의 모양이 다르지만,

그 모양대로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이제 하지 못할 말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

말은 늦을수록 아프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반드시 해야 한다.

사랑이든, 사과든, 고백이든.

그건 내 선택이고,

다른 후회가 없도록

내 마음 속 사랑의 말들을 그대로 전하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그 말.

그리고 나머지 시시콜콜한 일상의 말들.

오늘도 그 말들을 던지며,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다.



8.jpg






그 사람을 사랑했던 나를,
나는 용서할 수 있을까.
아름답고 위험했던 감정,
잊지 못할 그 순간의 눈빛과 선택.
사랑이라는 말이 어딘가에 가시처럼 박혀 있던 날들에 대한 이야기.
9화에서는, <헤어질 결심>의 서래를 떠올리며
우리가 놓고 온 사랑의 모양을 떠올려 보려고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