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엔 잘 몰랐던 마음이,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어둠처럼 스며든다. 왜 그랬을까. 왜 그 말을 하지 않았을까. 입 안까지 올라온 말들이 끝내 목구멍을 넘지 못한 그날. 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한 채, 그 순간을 수없이 반복해서 떠올렸다.
<비포 선셋>의 셀린이 그랬다. 시간은 흘렀고, 상황도 달라졌고,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다시 나타났다. 과거의 그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자신을 결국 지금까지도 붙들고 있었다. 후회는 무너뜨리지 않는다. 그저 너무 오래 머물러, 마음을 눌러앉게 할 뿐이다.
후회는 어떤 방향을 가진 감정이 아니다. 희망을 향하지도, 절망을 향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나간 장면들 속, 그때 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이 나를 찾아오는 감정이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그 순간, 안아줄 수 있었던 그날. 그걸 하지 못한 내가 지금까지 나를 괴롭힌다.
누군가를 놓치고, 그 사람을 다시 마주했을 때, 셀린은 여전히 날카롭고, 조심스럽고, 하지만 깊은 속엔 엄청난 그리움이 있다. 그녀는 왜 그랬는지 설명하고 싶고, 왜 그러지 못했는지 설명받고 싶다. 하지만 모든 말은 한 발 늦는다. 사랑은 때로 그렇게 도망간다.
나도 그런 감정을 안다. 누군가를 사랑했지만, 내가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두려워서 아무 말도 못 했던 순간. 내가 너무 괜찮은 척해서, 결국 멀어지게 만들었던 관계. 그때 나는 그 말을 하지 못한 나를 매일 밤마다 원망했다.
<비포 선셋>은 사랑이 남긴 후회를 노래하는 영화다. 셀린의 눈빛, 제시의 망설임. 그 모든 것들이 단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그때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돌이킬 수 없지만,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말할 수 있을까?
셀린과 제시의 다음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은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키운다.
해피엔딩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들은 후회를 남지기 않기 위해
대화하고 또 대화한다.
그렇게 따뜻한 말들을 계속 던지고 있다.
나도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을 지금은 할 수 있다.
이젠 소원해진 아내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점점 커가는 아이에게 마음을 건넨다.
때론 거친 말이 나갈 때도 있다.
그런 상황을 지나고 나면
금방 괴로운 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는 사과를 하고 또 마음을 전한다.
뜨거운 사랑을 하기 어렵겠지만,
따뜻한 사랑을 할 수는 있으니까.
사랑의 모양이 다르지만,
그 모양대로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이제 하지 못할 말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
말은 늦을수록 아프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반드시 해야 한다.
사랑이든, 사과든, 고백이든.
그건 내 선택이고,
다른 후회가 없도록
내 마음 속 사랑의 말들을 그대로 전하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그 말.
그리고 나머지 시시콜콜한 일상의 말들.
오늘도 그 말들을 던지며,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다.
그 사람을 사랑했던 나를, 나는 용서할 수 있을까. 아름답고 위험했던 감정, 잊지 못할 그 순간의 눈빛과 선택. 사랑이라는 말이 어딘가에 가시처럼 박혀 있던 날들에 대한 이야기. 9화에서는, <헤어질 결심>의 서래를 떠올리며 우리가 놓고 온 사랑의 모양을 떠올려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