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 내가 너무 어렸던 건 아닐까. 아니면, 너무 무모했거나, 너무 진심이었거나. 그래서 놓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놓쳐버렸고, 놓아야 했던 마음은 끝까지 붙잡았다.
늦은 연애를 시작했던 25살.
어찌해야할지 몰랐던 그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나를 무모하게 만들었던 시절이다.
온 힘을 다해 사랑했고.
그걸 지키려 노력했던 그 시간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사랑을 나 자신의 항아리에 꾹꾹 눌러 가득 담았다.
하지만 2년의 사랑은 끝이났고,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았던
마음 속의 슬픔을 감추기 위해
동네 골목길을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며 눈물을 훔치고,
극장에 홀로 앉아 눈물을 흘렸다.
때론 추억의 장소로 찾아가
그 길을 걸으며
남겨진 사랑의 흔적들을 곱씹어 보곤 했다.
그렇게 첫 사랑은 아프게 가버렸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름답고 찬란했지만, 그것을 선택한 나 자신이 미워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 사람을 좋아했던 내가, 결국 나를 가장 아프게 했다.
나를 욕하고, 나를 비난하고
나를 미워했던 수많은 시간들.
그 어두운 터널 속을 지날 수 밖에 없었다.
사랑이 끝난 후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했던 '내가' 더 자주 떠오르는 때가 있다. 말을 너무 많이 했던 내가, 말을 너무 아꼈던 내가, 기다리던 내가, 먼저 등을 돌린 내가. 어느 쪽이든, 그 모든 선택의 끝엔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라는 후회가 남는다.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아니었는데,
한 가닥의 후회가 남아
마음을 괴롭힌다.
그리고 그 후회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이 떠난 자리보다 사랑했던 나 자신이 남긴 감정의 흔적이 더 깊고 오래 아프다.
<헤어질 결심>의 서래는 사랑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하고, 결국 사랑을 가라앉히는 인물이다.
자신의 마음 속으로 사랑을 가라앉힌 서래는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넓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힌다.
어쩌면 서래는 사랑을 드러내지 않음을 선택함으로
자신의 사랑을 더 크게 드러낸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화면 속 그녀의 사랑이
서서히 가라앉는 걸 지켜보면서
마음 한 켠이 찌르르 울려왔다.
그녀는 형사 해준과의 사랑을 품은 채 어디에도 드러내지 못하고 감춘다.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깊고, 선택했기 때문에 더 슬픈 사랑.
그녀는 상대를 위해 사랑을 포기한 게 아니라, 자신이 지닌 모든 걸 버리며 그 감정을 묻었다. 어쩌면, 그게 진짜 사랑의 다른 얼굴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나를 시험한다. 내가 얼마나 용기 있는지, 얼마나 무력한지,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그런 시험의 과정 속에서
사랑은 종종 나 자신을 미워하게 만든다.
사랑했던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그때 그 사람보다도, 더 나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원망하기 전에, 그 사람을 미워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왜 그렇게 사랑했을까?’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그 사람을 마음에서 완전히 놓고 나서야 알게 된다. 우리가 사랑한 건 타인이 아니라 그 사랑을 쏟아붓던 자기 자신이라는 걸. 그래서 그 사람을 미워하지 못한다. 대신 나를 미워하게 된다. 그때 그 마음, 그때 그 선택, 그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내가 이후의 삶을 몇 년이나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오래 앓고 나서야 조금씩 용서하게 된다. 용서를 위한 전제는 이해가 아니라 수용이다. 그때 그럴 수밖에 없던 나를 이제는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서래가 바다 속에 감춘 마음처럼 나도 마음 깊은 곳에 그런 사랑을 하나 묻어두었다. 그건 절대 다시 꺼내지 않을 것 같은 기억이지만, 어느 날 어떤 음악, 어떤 장면 앞에서 불쑥 올라온다. 그리고 다시 나를 바라보게 만든다. ‘그 사람을 사랑했던 나를, 나는 진짜로 용서했는가?’
사랑은 떠났지만 그 사랑을 품었던 내가 여기에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를 들여다본다. 그때의 나를 탓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사랑 앞에서 주저앉지 않기 위해, 조금씩 나를 회복하기 위해.
이젠 지금 옆에 있는 사랑을 지켜야할 때다.
그때 묻었던 사랑을 기억하면서,
현재의 사랑으로 덮어 꼭꼭 눌러 담는다.
나 자신인, 그 사랑을 담은 항아리를 사랑하면서.
때론 스스로 항아리를 발로 차고, 깨기도 하지만
결국 그 항아리 속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무던히 애쓴다.
그렇게 결국 난 나를 사랑하게 되겠지.
그렇게 결국 난 나를 사랑해야 되겠지.
때로는,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줄 때가 있다. “괜찮아?”라는 말도 위로가 되지 않고, 기운내라는 말은 오히려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든다. 그럴 땐, 이상하게도 내 안에 있는 '슬픔'이 조용히 나를 안아주는 것 같은 순간들.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는 말없이 곁에 앉아주고, 울어도 된다고 말해준다. 그 눈물 끝에서야 비로소 다시 걸어갈 수 있었던 순간.
다음 화에서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우리를 어떻게 토닥이고 어떻게 다시 살아가게 했는지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