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실린 내 얼굴을 보며 생각한 것들

by 레빗구미





브런치 작가로서, 그리고 한 명의 글쓰는 사람으로서 신문에 내 얼굴과 이름, 그리고 필명이 나란히 실린다는 건 꽤 기묘한 경험이다. 지난 금요일, 한국경제신문 문화면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기사 속 나의 모습이 어색했지만, 제법 그럴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자의 정제된 언어 덕분에 내가 뱉은 투박한 말들은 꽤나 근사한 이야기처럼 포장되어 있었다. 2025년 29초 영화제의 명예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내가 보았던건 무엇일까?


기사 헤드라인으로 뽑힌 문장은 이것이었다.


망설이지 말고 녹화 버튼 ON... 29초의 고민, 세상에 닿을 것


서면 인터뷰에서 "영상을 꿈꾸는, 혹은 창작을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라는 질문을 봤을 때,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저 말을 적었다. 바로 쓸 수 있는 답변이 아니었다. 그건 나 자신에게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하는 주문과도 같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을 망설임으로 소비하는가. 글을 쓸 때도, 사진을 찍을 때도, 혹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때도, 우리는 늘 완벽한 타이밍과 완벽한 준비를 핑계로 시작을 미룬다. 29초짜리 영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29일, 아니 29개월을 고민한다. 장비가 부족해서, 시나리오가 엉성해서, 내 글쓰기가 부족해서, 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29초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내가 목격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거친 숨소리가 있었고, 흔들리는 앵글이 있었고,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진심이 있었다. 수상작으로 호명된 작품들의 공통점은 테크닉의 우월함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찍어낸 용기였다.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녹화 버튼을 누르는 행위. 그것은 단순히 기계를 작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나 사이에 연결 통로를 여는 일이다. 그 빨간 불이 들어오는 순간, 나의 사적인 상상은 공적인 기록이 된다. 나는 그 두려움을 안다. 나 역시 매일 빈 화면 앞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쓸까 말까를 고민하니까. 그래서 저 말은, 망설이고 있는 당신에게 건네는 말이자, 여전히 두려워하는 나를 다독이는 말이었다.


기사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내가 플랫폼별로 글을 다르게 쓰는 방식을 전략이라고 분석해 준 대목이었다.


"긴 호흡의 글은 브런치와 블로그에, 짧고 강렬한 소통은 스레드와 인스타그램에 맞게 가공했다."


사실 이것은 치밀한 전략이라기보다, 생존 본능에 가까웠다. 직장인으로서의 삶과 글쓰기의 삶을 병행하기 위해 나는 효율을 찾아야 했고 어떤 방식으로든 내 글을 넓게 알리고 싶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는 짧은 스레드를 썼고, 주말에는 긴 브런치 글을 썼다.


스레드 라는 공간은 마치 친구들과 나누는 수다방 같았다. 거기서는 폼 잡을 필요가 없었다. "오늘 영화 진짜 별로지 않아?"라고 툭 던지면, "맞아, 진짜 돈 아까워"라는 답이 즉각 돌아온다. 그 가벼운 속도감이 좋았다. 반면 브런치는 나만의 동굴이다. 여기서는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다.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며 긴 호흡으로 내 생각을 주욱 정리한다.


기자는 이것을'타깃 맞춤형 차별화라고 멋지게 포장해 주었지만, 본질은 결국 소통의 갈증이었다. 나는 가볍게도 섞이고 싶었고, 무겁게도 남고 싶었다. 그 두 가지 욕망이 나를 여러 플랫폼으로 이끌었다.결과적으로 그 분산한 것은 옳았다. 29초영화제를 알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스레드에서는 "야, 이거 29초면 된대. 한번 해봐"라고 꼬득였고, 브런치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서사를 압축하는 미학"에 대해 논했다. 메시지의 형태는 달랐지만, 본질은 하나였다. "당신의 이야기를 꺼내라."


'29초영화제 명예 홍보대사'라는 타이틀은 내게 꽤 무거운 책임감을 준다. 단순히 행사를 홍보하는 것을 넘어, 이 영화제가 가진 태도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오랫동안 선택받은 자들의 것이었다. 자본이 있거나, 천부적인 재능이 있거나, 특별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 하지만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그 견고한 성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제 누구나 주머니 속에 카메라를, 편집기를, 그리고 방송국을 가지고 다닌다.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나는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이 영화제를 처음 알았다. 그때 느꼈던 건 호기심이었다. "정말 29초 만에 영화가 된다고?" 그리고 직접 참여하고 심사하며 깨달았다. 시간의 제약은 오히려 창의력의 기폭제가 될수도 있다는 것을.


신문에 실린 내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레빗구미'라는 부캐가 이제 본캐의 삶과 조화롭게 들어와 있구나,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다. 회사에서는 팀장으로 살지만, 퇴근 후에는 작가 레빗구미로 산다. 이 이중생활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묻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너무 지칠땐 뭐하는 건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를 통해 확신을 얻었다. 이 두 가지 삶은 서로를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지탱한다는 것을. 삭막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느낀 갈증을 글과 영화로 풀고, 창작의 세계에서 느낀 불안정함을 일상의 루틴으로 잡는다.


29초영화제 홍보대사로서,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응원'이다. 망설이는 사람들의 등을 떠밀어주는 일.


"완벽하지 않아도 돼. 흔들려도 돼. 초점이 나가도 돼. 그냥 찍어. 그냥 써. 너의 그 29초가, 너의 그 한 문장이 누군가에게는 영화가 될 거야."


기사는 활자로 박제되어 남겠지만, 나의,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는 계속 흘러갈 것이다.

2026년의 1월, 나는 여전히 망설이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고민은 충분히 했다.

이제, 타이핑을 시작하고, 녹화 버튼을 눌러보자.

당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닿을 시간이다.


내 이야기가 세상에 닿은 것처럼.

그리고 내 이야기도 언젠가는 더 많이 퍼져가겠지.

그 날을 나자신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