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소에 머릿 속에서 상상하던 출산의 모습은 병원의 수술실 모습이었다. 드라마나 뉴스 등의 대중매체에서 보던 분만실의 모습은 대체적으로 그랬다. 사실 남자는 산부인과에 갈일이 없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보던 것 처럼, 진통이 시작되면 병원으로 급히 가서 진찰을 받고 받자마자 힘을 몇 번 주면 아기가 나오는 것을 생각했다. 아마 대부분의 보통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결혼 전, 출산 전의 여자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만큼 출산 현장 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그 시기 이전에는 쉽게 상상해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나와 아내도 그랬었다. 아무 생각없이 병원에 다니다가 아무 고민 없이 언젠가는 출산을 할 거란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나: 선생님 이제 출산이 거의 다 되었는데, 특별히 문제가 없겠죠?
선생님: 네 태아가 좀 내려왔지만, 그래도 거의 출산 직전이니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출산 방식은 어떤 것으로 하시겠어요?
아내: 네? 출산 방식이요? 그냥 진통 오면 출산 하면 되는 것 아니에요??
나: 제왕절개랑 자연분만 이야기 하시는 건가요?
선생님: 아니오. 그거 말고,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당연히 자연분만을 하셔야하고요. 저희가 자연주의 출산도 해요. 비용이 좀 더 들긴 하지만, 저희 병원이 전문이기도 해요. 자연주의가 싫으시면 일반 분만도 가능하세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병원을 나오면서 아내와 한참을 신기하게 이야기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와서 우리는 나란히 탁자에 앉아 자연주의 출산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평생동안 전혀 들어보지 못한 단어였고, 출산 방법이었다.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렇게 정보가 많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러 군데서 자연주의 출산 방법을 검색한 결과, 자연주의 출산은 크게 다음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출산 환경을 최대한 편안하고 자유롭게 조성한다
투입되는 약물을 최소화 한다.
통증을 감소시키기 위해 자연스러운 방법을 먼저 사용한다.(음악, 마사지, 자세 변경 등등)
관장, 제모,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는다.
탯줄은 태맥이 끊긴 후 자른다.
수중분만을 한다.
아기와의 유착관계 형성을 위해 모자동실을 한다
사실 처음에 자연주의 분만을 듣고 검색하던 초기만 해도, 그냥 수중분만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계속 검색해 보니 수중분만은 최종 분만 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고, 분만 이전과 이후의 환경과 방법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는 방식이었다. 나와 아내가 그 병원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집에서 가까워서 였는데, 지나고 보면 우리에게 좀 더 많은 선택지를 주는 환경이었다. 우리는 한참을 고민했다.
아내: 자기는 어떤 것 같아요? 자연주의 출산 해볼까요?
나: 음.. 나는 다 괜찮은데요. 자기는 어때요? 자기 의견이 제일 중요하죠. 자기가 제일 고생하는 사람이잖아요.
아내: 자연주의 좋긴한데... 비용이 조금 부담이 되긴 해요..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일반 분만해도 수중 진통을 할 수 있다고 했어요.
나: 수중 진통? 그걸 할 수 있다고 했어요? 난 왜 못 들었지?
아내: 또 딴생각했구나? 분만까지는 아니고 자궁 문이 70% 즘 열렸을 때 덜 아프게 벌어지도록 물속에 들어가서 진통의 마지막 까지 하는거래요. 그렇게 하고는 분만은 나와서 진행해요.
나: 오 그런 것도 있구나.
아내: 내 생각에 그거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나: 그래요. 그럼 일단 일반 분만으로 해보자!
우리는 고민 끝에 일반 분만을 선택했다. 중국 장모님과 친지들은 자연주의 출산이 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겨우겨우 설명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우리 부모님도 생소해 하셨는데, 수중분만을 설명하니 어느 정도 이해를 하셨었다. 그렇게 선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 밤에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주기적으로 수축되는 느낌이 온다고 해서 얼른 병원에 갔다. 밤 12시 즘이었는데, 급한 마음에 얼른 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확인 했는데, 가진통이었다. 진짜 진통은 한 번 진통 시 30초 이상 지속 되지만 가진통은 규칙적이지는 않다고 한다. 다행히 그 새벽에 진짜 진통이 아니라고 해서 다시 집에와서 한 주 정도를 더 보냈다., 그러나 어느 날 새벽에 아내가 나를 깨웠다.
아내: 자기야! 자기야! 양수가 터진것 같아요. 물이 나와요.
나: 어? 어? ... 어? 어??
아내: 얼른 엄마랑 동생 깨우고요... 어찌 해야되지? 베개 좀 줘봐요!!!
나: 장모님! 장모님! 처남! 양수가 터졌어요. 자기 얼른 누워요.(베개를 준다)
나는 매우 당황했었다. 아내도 마찬 가지였고, 양수가 먼저 터졌을 때 어찌해야하는지 알지 못했다. 물이 빠지면 태아가 숨을 못쉬거나 위험할까봐 아내는 얼른 누워 배게로 엉덩이에 깔고 누웠다. 그 사이에 나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는데, 양수가 터져도 괜찮으니, 출산 준비해서 병원으로 걸어오라고 한다. 진통도 심하지 않아서 우리는 대략 짐을 챙겨서 병원으로 걸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웃기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까지 흥분할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때를 생각하며 이야기 할 때 우리는 늘 웃는다. 어이가 없어서.
병원에 간 시간이 3시즘 이었다. 그 병원의 분만실은 마치 호텔의 방처럼 굉장히 깨끗한 곳이었다. 한쪽에는 욕조가 있고, 안쪽에 침대, 그리고 진통 시 도움을 주는 체조 볼과 기구들이 있었다. 한 번 돌아보고는 진료를 받았다. 진통이 규칙적으로 있었지만, 아주 강하지는 않았었기 때문에 조금 쉬었다가 아침에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 사이 장모님과 처남은 집에 가서 좀 쉬다 나오기로 하고, 나와 아내는 아침을 먹었다. 아내는 맥도널드 아침메뉴를 먹고 싶어해서, 밖에서 사와서 같이 먹었다. 그때 좀 더 든든하게 먹을 걸 아직도 후회를 한다. 그때는 평소 먹는 양만 먹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아침 7시 반즘 부터 진짜 아픈 진통이 시작되었다. 아내는 말이 없어졌고, 계속 볼에서 점프를 하고, 아플 때 마다 내 손을 꽉 쥐었다.
손을 잡고 같이 호흡을 하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생각보다 자궁문이 빨리 열리진 않았다. 나는 그렇게 출산 과정이 길게 걸릴 줄 미처 몰랐었다. 아침 11시에 자궁문이 어느 정도 열려서 따뜻한 물을 욕조에 받아 물 속에 들어갔다. 아내 말로는 아픈게 많이 없어졌다고 한다. 물 속에서 자궁문이 다 열릴 때까지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아내는 진통에 아파 할 때는 몸이 사시나무 처럼 떨렸다. 아픈 걸 잘 참는 아내는 소리지르는 대신 내 손을 힘껏 잡았고, 이를 꽉 다물었다. 오후 12시즘 자궁문이 다열리고 침대에 누워 힘을 계속 줬지만 겨우 아기 머리만 보이는 정도였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힘을 주는데, 그걸 옆에서 볼 때 너무 힘들었다. 아내가 힘껏 힘 줄 때 보이는 눈의 실핏줄과 튀어나올 것 같은 눈알은 아마 잊지 못할 것 같다. 보는 내가 너무 고통 스러웠다.
결국 아내는 기운이 없어 잠시 눈을 붙였다. 아마도 아침을 너무 적게 먹어서 힘이 다 없어진 것 같았다. 아내는 아직도 그날 버거를 하나 더 먹어야 했었다고 후회를 하곤 한다. 결국 두 시간을 힘주다 오후에 당근이가 나왔다. 옆에서 계쏙 크게 호흡을 후~ 하~ 후~ 하~ 했던 나도 힘들었지만 아내의 힘없는 모습이 더 신경쓰였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온 새나는 아내의 품에 조금 있다가 내가 탯줄을 자르고 나서 크게 올었다. 그러고는 다시 아내 품에서 꼼지락하면서 같이 쉬었다.
나: 자기야 많이 힘들죠? 내가 해줄게 없네요.
아내: 아니에요. 자기가 옆에서 호흡 같이 해줘서 정말 도움이 되었어요. 너무 아프니까 호흡 하기 힘들어요.
나: 호흡을 잘 못하면 태아한테 산소 공급이 안되서 위험하다고 해서 진짜 열심히 했어요. ㅠ
아내: 네네 고마워요. 아침에 버거를 하나 더 먹을 걸.. 힘이 정말 없었어요. 에흐..ㅠ
나: 그래도 건강히 잘 나와서 다행이에요.
아내: 당근아 너두 고생했다. 우리 세 식구 정말 다들 고생했어요.
나: 자기가 정말 고생했어요. 정말 출산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것 같아요. 정말 옆에서 보기도 힘드네요.
그렇게 새나가 우리와 만나게 되었다. 그때 장모님과 처남, 우리 부모님은 모두 처음 새나에게 인사를 했다. 장모님도 우리 어머니도 눈물을 보이셨고, 건강히 무사히 모든 과정이 끝난 걸 감사했다. 나는 그날 첫 양수가 터졌을 때 부터 아기가 나오는 그 순간까지를 아래 처럼 간략히 메모해 두었다. 그리고 아내와 새나의 첫 모습도 사진으로 담아두었다. 그 힘들었던 순간 순간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렇게 각 시간대 별로 적어놓은 것을 보니 그 날의 모습이 하나하나 떠오르는 것 같다. 아내가 그렇게 고생한 것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렇게 분만 과정이 끝나고 우리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그날 부터 우리는 모자동실에서 육아를 처음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