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내, 아기 모두 가쁜 숨을 쉬며 잠시 누워있던 그 때는 왠지 시간이 멈춘 평화로운 느낌이었던 것 같다. 당근이라는 태명으로 불리던 아기는 새나라는 이름을 받아서 엄마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나는 아내의 뱃속에서 각 나온 아기를 가만히 봤다. 정말 말 그대로 핏덩이 였다. 아주 작은 2.6kg밖에 안되는 작은 아기. 그렇게 가만히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탯줄을 가위로 잘랐다. 혹시나 아프지 않을까, 조심조심 살살 탯줄을 자르고 조리사들이 정리하는 걸 보고 마지막으로 아기를 아내의 품에 안겨주는 걸 봤다. 뭐라고 한 마디로 말하기 힘든 기분이었다. 나와 아내의 유전자를 받은 작은 아기, 큰 소리로 ‘응애’ 하고 울다가 아내 품에서 이내 잠이 든 아기. 정말 내가 부모가 된 걸까?
아내: 자기가 보면 누구 닮은 것 같아요?
나: 자기 닮은 거 같아요. 근데 눈은 날 닮았나?
아내: 아직 몰라요. 좀 크다 보면 알게 된다고 하네요. 나는 자기를 더 닮은 거 같아요. 너무 귀여워요.
나: 나 닮으면 안되는데~~ 자기 닮아야되요!
아내: 또또또 소심하게 왜그러세요? 자기 닮으면 더 귀여워요~
나: 알았어요. 자기가 좀 쉬세요.
그렇게 한동안 분만실에서 셋이 누워 있었다. 아기가 아내 뱃속으로 나오던 순간, 분만실 밖에 있던 장모님과 어머니는 눈물을 몇 방울 떨구셨다. 살짝 스쳐지나가는 그 모습이 내 눈에도 그대로 담겨있다. 특히 장모님은 먼 한국 땅에서 첫 손녀를 보셨다. 본인의 딸이 배아파 낳은 손녀가 얼마나 이쁘신지 몇 방울의 눈물을 흘리시고는 연신 미소를 지으셨다. 그러고는 벌써 어디 물어보셨는지, 시간과 날짜가 좋다며 나에게 한참을 설명하셨다. 물론 장모님의 말을 내가 모두 다 이해할리는 없다. 워낙 말씀이 빠르신데다 내가 아직 중국어가 걸음마 단계였기 때문에, 대략적인 뜻만 알 뿐이다. 그래도 장모님은 연신 웃으면서 내게 여러가지를 말씀하셨다. 그 장모님의 기뻐하던 표정도 오랜 시간 동안 기억 될 것 같다.
조무사: 이제 모자동실로 이동하실게요.
나: 모자동실이요?
조무사: 아, 입원실이요. 처음에 등록 하실 때, 모자동실로 신청하셨는데요?
아내: 네 맞아요. 우리가 모자동실 하기로 했잖아요~ 자기가 또 잊은가봐요.
나: 아 그렇죠. 맞네요. 그럼 어디로 가면 되죠?
조무사: 네 아래 입원실로 가시면 되요. 아내분은 저희가 옮겨 드릴게요. 아기도 저희가 검사 좀 하고 이동해 드릴게요. 말씀하신대로 모자동실로 바로 하실 거죠?
아내: 네네 바로 할게요.
보통 출산 후 아기를 본다고 하면, 유리벽 안에 인큐베이터나 아기 침대에 있는 곳을 상상하게 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많이 봐왔던 모습이 그런 모습이다. 입원실에서 머무르는 동안에도 아기를 보려면 그곳으로 이동해서 봐야했다. 아마도 지친 산모에게 휴식을 주고 위생을 위해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모자동실은 출산 직후 부터 바로 아기를 옆에 둔다. 모자동실을 하면, 부모들은 몸이 좀 힘들지만 아기에게는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아기에게는 엄마가 바로 옆에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부모들은 출산 직후부터 육아를 경험하며 배워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최근 병원들이 이런 모자동실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정신 차리고 보니, 입원실로 가야할 시간이었다. 우리가 출산 전에 아기와 부모가 함께 머무르는 모자동실을 신청했었는데, 일단 아내와 내가 먼저 입원실로 이동하여 조금 휴식을 취했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같은 기계 속에 잠깐 들어간 상태에서 옮겨져 입원실 옆쪽 다른 아기들과 같이 머무르며 검진을 받았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 아기가 입원실로 왔고, 작은 아기 담요에 쌓여 우리 옆으로 왔다. 너무나 작은 아기가 옆에서 꼬물꼬물 하고 있으니 우린 마냥 쳐다보기만 했다.
아내: 아직 눈 초점도 못해요. 뭔지 안보이니까 무서울 거에요.
나: 그렇겠죠? 자꾸 얘기 해줘야될 거 같아요. 당근아 아빠랑 엄마야~ 무서워하지마~
당근이: (응애~ 응애~ 응애~)
나: 응....? 앗?... 어쩌지?
아내: 계속 우네, 일단 안고 모유 좀 줘 볼게요.
당근이: (쫍쫍...... 으... 응애~응애~응애~)
아내: 안되겠다. 아직 모유가 거의 안나와요. 자기가 밖에 이야기 해서 분유 좀 타오세요.
출산을 하면 당연히 모유가 콸콸 나오는 줄 알았던 나는 적지않게 당황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미 출산 관련 책을 많이 읽어둔 지라, 바로 모유가 잘 나오지 않을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분유를 타서 당근이에게 첫 분유를 줬다. 아내가 안고 주는데, 그 모습이 참 아름 다웠던 기억이 난다. 옆에서 멍하니 바라보다 당근이를 다시 재우고는 둘이 좀 쉬었다. 중간 중간 장모님과 어머니, 아버지가 당근이를 보고 가고, 그 외에도 몇몇 사람들이 와서 잠깐 인사를 하고 갔다. 그렇게 저녁 시간을 맞았다.
당근이가 낮에 깰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분유를 주거나, 달래서 금방 재우면 되었다. 기저귀를 처음 갈아봤기 때문에 조금 헤메었지만 그래도 그런 대로 잘 갈았다. 정말 너무나 작은 당근이의 발과 손을 잡고 기저귀를 갈 때는 조심조심 최대한 조심했다. 밤이 되자 나도, 아내도 너무 지쳐 잠이 들었다. 그런대 어느 순간 부터 당근이가 계속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은 거의 10-20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모유를 물리고, 기저귀를 몇 번이나 확인 하고, 겨우 재워 침대에 눕히면 또 울었다. 아내가 힘들 것 같아 최대한 내가 당근이를 달래려고 했지만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그렇게 거의 밤을 꼴딱 새고, 시간을 보니 새벽 5시 반이었다. 그 시간을 볼 때도 당근이는 계속 울고 있었다.
나: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우리 잠시 간호사 분들 께 맡기자. 아까 몇 시간은 맡기면 봐준다고 했어요.
아내: 그래도 우리가 스스로 해보고 싶어요.
나: 그래도 너무 힘들어서 좀 자야되요. 자기도 푹 못 잤잖아요. 어제도 무리했는데, 오늘은 맡기고 좀 자자.
아내: 음.. 그래요. 일단 당근이 맡기고 우리가 좀 쉬자.
나: 모자동실이 좋다고는 하는데, 참 힘드네... ㅠ
나는 밖에 간호사 분들께 당근이를 맡기고 다시 입원실로 와서 아내와 같이 잠들었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될 때 까지, 우리는 완전히 곯아 떨어졌다. 장모님이 아내가 먹을 아침 밥을 챙겨오셔서 우릴 깨워 같이 아침을 먹었다. 우리가 기운을 차려야 당근이를 옆에서 케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인지, 나도 아내도 잘 먹었다. 다시 당근이를 입원실로 데리고 왔을 때 우리는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후에는 당근이 샤워만 간호사분들이 해줬을 뿐 수유와 기저귀, 재우기 등은 우리가 스스로 했다. 특히 아내가 먼저 나서서 육아를 했고, 나도 옆에서 거들면서 육아도 배워 나갈 수 있었다. 여러 의미에서 힘든 모자동실에서의 하루 였지만, 퇴원할 시점 즘에는 그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아니, 익숙해진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