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후 생각 정리 #2
우울증과 함께 한지 몇 년쯤 되었을까... 처음엔 견딜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요령이 생긴 건지 어쩐 건지 그냥 자연히 받아들여지는 또 다른 나 같다. 다행히 자살충동이라든지 몇 날 며칠 지속해서 잠을 못 자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수많은 밤들 중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종종 있고 하루 종일 무기력해 멍 때릴 때가 자주 있으며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운 정도. 어느 날은 숨이 잘 안 쉬어져서 마스크를 찢고 싶어 지고 또 어느 날은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착즙기에 나를 넣은 것처럼 내 온몸이 쥐어짜지는 걸 느낀다.
언제부터 이랬는지 언제부터 더 심해졌는지는 대충 알고 있다. 다만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몰라 그냥 함께 지내기로 하고 잘 지내보려고 하고 있다.
병원에만 다니다 몇 개월 전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 상담을 받고 있다. 다행히 아주 많이 도움이 된다. 상담을 통해 우울이 해소되진 않지만 내 삶 전체를 들여다보고 내가 어떤 방식으로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대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평생을 참으며 살았던 사람이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기분 나쁜 일이나 화가 나는 일 억울한 일들은 웬만하면 좋게 좋게 넘어갔고 이해하려고 했다. 나는 내가 매우 이타적인 사람인 줄 알았다. 나는 내가 이해심이 많고 너그러운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상담을 하면 할 수도록 알게 된 나는 갈등이 싫어 도망치는 사람이었고 모든 문제를 혼자 견디는 게 편한 사람이었다. 분노가 있으면 눌렀고 누군가가 내게 잘못을 하면 그 원인을 내게서 찾아 자책하기 일쑤였다. 감정이 동반되는 분노를 느끼는 건 1년에 한두 번 정도. 그건 내가 화라는 감정을 누르고 누른 결과였다. 어릴 때부터 학습된 잘못된 습관. 화를 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환경에 순응한 결과. 화를 낸 뒤에 따라오는 결과들을 견디지 못하는 약함... 그 결과 분노를 감정으로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마땅히 분노해야 하는 상황에서 감정이 먼저 올라오지 않아서 이 정도면 화를 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머리로 생각하고 화를 낸 적이 많이 있었다.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내 망가진 마음은 내 몸을 힘들게 했고 최근 내가 이렇게나 몸이 아픈 건 이제 한계라고 이제는 더 못한다는 내 몸의 아우성이었다.
이제는 이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고 이런 상태로는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 당장 고치진 못하겠지.. 40년 이상을 이렇게 살아왔는걸...
하지만 이제는 도망치지 않고 극복하려고 한다. 부당하면 부당하다고 말하고 화가 나면 내가 지금 화가 난다고 말하고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말할 것이다. 이제는 참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극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