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후 생각정리 #3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었다. 나쁜 남편, 나쁜 아빠로는 부족하다. 그냥 나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친 아버지는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이었고 그 약자는 보통 우리 엄마, 나, 동생이었다. 만약 아버지의 잘못된 행동과 태도가 여기까지였다면 나는 아버지를 나쁜 사람이 아닌 나쁜 남편, 나쁜 아빠로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열 살도 채 되지 않았던 나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사람을 대하는 어떤 룰에 대해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자기보다 강한 대상과 약한 사람을 구별해서 다른 태도를 보였고 그 기준은 상대가 자신에게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줄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졌었다. 뭐 쉽게 말하면 함부로 대해도 상관없는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대했고 그럴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관대했다.
아버지 기준에 나와 엄마, 동생은 함부로 해도 되는 대상이었던 것 같다. 철저한 약자. 자신의 폭력에 대항하거나 항의할 수 없는 존재들. 그래서였을까? 어린 내 눈에 엄마는 내가 보호하고 싶은,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었고 아버지는 내가 반드시 넘어서야 하는 적대적 대상이었다.
보통 자식은 부모의 나쁜 점은 닮는다고 하는데 상담하면서 자세히 들여다본 나는 정확히 반대로 살고 있었다. 일부로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고 다짐하거나 결심한 적은 없었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약자에겐 한없는 이해와 사랑을, 강자에게는 적대심을 기본으로 깔고 살고 있었다.
이게 살면서 내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얼핏 생각하기에도 강약약강보다는 강강약약이 더 나아 보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상담을 오랫동안 진행하다 보니 내가 겪은 인간 사이에서의 갈등이나 문제들은 강강약약을 고수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 많았었다.
내가 강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예를 들면 (나보다 물리적 힘이 센) 남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 (학생을 자기 마음대로 교정하려고 하는) 교사, (직원들은 하대하는) 상사, (수직적인 관계에 집착하는) 사람들 등이었다.
내가 약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여자, 영유아, 어린이, (억압당하는) 청소년, (힘없는) 노인, (차별에 노출된) 소수자나 외국인, (부모에게) 상처받은 사람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 등이었다.
나열해놓고 보니 더 확실해졌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내 감정을 이입하는지 말이다.
나는 강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는 일단 곁을 주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불편함을 깔고 바라봤고 그들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나와의 관계에서 별다른 갈등이 없었는데도 그냥 한없이 그들이 불편했고 언제든지 내게 부당하게 대한다면 혹은 내 주변의 약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면 내가 가만히 널 두고 보지 않겠다는 마음을 깊숙이 숨겨놓은 채로 그들을 주시하며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나는 약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는 내 감정을 억압하고 눌러가면서까지 그 사람들을 배려하고 이해했다. 견디고 참는 건 내가 할 테니 당신은 상처받지 말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다. 언제나 그들의 방패가 되어줄 수 있었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대신 싸워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정말 극단적이게는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내게 물리적 또는 정신적인 폭력을 가해도 분노 대신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음과 안타까움이 먼저 일어났고 그 관계에 한계가 느껴지면 상대가 상처받지 않는 선에게 스스로 해결하고 끊어내려고 했었다.
강약약강이었던 아버지가 내게 미친 악영향.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아닌 강과 약으로 사람을 나누어 한쪽에겐 밑도 끝도 없는 적대감을 다른 한쪽에겐 나를 괴롭히면서까지의 희생과 인내를 하며 살게 된 것. 이것이 아버지가 내게 지금까지 내게 미치고 있는 것들이었고 결국 방식은 달랐지만 사람을 강과 약으로 나누는 건 나도 아버지와 다를 게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났고 나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는 걸 알아버려서 오늘은 상담 후 살짝 기운이 빠졌던 것 같다. 이 정도면 좋은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내가 좋은 사람이라 이런 식으로 살았던 게 아니고 그냥 그게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사람이 내게 미친 영향이었다니... 슬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다시 이렇게 살 것 같고 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왜 이렇게 살았냐고 자책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강약약강으로 살지 않은걸 그걸 그대로 닮지 않은걸 위안 삼으며 힘든 인생 잘 살았다고 나를 다독여주고 싶다.
앞으로 나는 사람을 구분 짓는 습관부터 고쳐보려고 한다. 강과 약으로 사람을 나누지 않고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내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무조건 참지 않고 잘 표현하는 방법들을 배워야 할 것이다.
배움은 죽을 때까지 끝이 없다더니... 내 나이 43에 인간관계를 걸음마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피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