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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키친anime cook Aug 30. 2019

툴리, 돌보는 사람은 누가 돌봐야 할까?

영화 < 툴리> 리뷰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이것들이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고통과 수고가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도 가장 힘들었던 어느 순간을 지나온 터라 이렇게 편안하게 그때의 나를 회상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실 그때의 나도 극심한 스트레스와 두려움, 우울감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오늘 소개할 영화 <툴리>에서도 자신만을 돌보기에도 벅찬 만삭의 마를로가 등장한다. 일주일 전까지 계속해서 직장에 출근했던 것으로 보이는 마를로에겐 아직 도움이 필요한 어린 딸과, 정서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아들이 있다. 그리고 퇴근 후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동화책을 읽어 준 뒤 자신의 할 일은 여기 까지라는 듯 침대에 누워 느긋이 게임을 즐기는 남편도 있다. 이런 마를로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영화 <툴리>


영화는 광고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실전 육아에서 저런 장면은 거의 없다는 걸 말이다. 아침에 학교에 보내는 일만 했는데도 이미 하루를 다 보낸듯한 느낌, 겪어본 사람들만 아는 그 느낌. 영화를 보고 공감하지 못할 부분은 아무 데도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잠깐 쉬려고 들어간 카페에서 조차 임산부가 디카페인 커피를 마신다고 눈총 받고 (임산부도 하루에 커피 2잔 정도는 괜찮다는 건 상식이다.) 설상가상으로 예전 룸메이트였던 절친과 마주치기까지 한다. 나조차도 보기 싫은 나의 모습. 눈부셨던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에게 그런 모습을 들켜버린 마를로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렇게 그녀가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지고 있을 때 마를로의 오빠는 무릎을 탁 치는 제안을 하나 한다. 셋째가 태어나면 야간 보모를 고용하라는 아주 쓸모 있는 제안. 돈도 직접 내주겠다고 하는 기특한 오빠의 제안을 거절하는 마를로를 보면서 육성으로 그러지 말라고 소리쳤다. (이미 첫 장면부터 심하게 감정이입이 돼버렸다)


드디어 셋째 미아가 태어나고, 이미 육아에 쩌든 마를로는 육체적 피로와 더불어 정신적인 고단함까지 겹치며 결국 폭발하게 되는데, 울고 있는 셋째 아이를 차 안에 태우고 차 밖에서 고함을 지르는 장면을 카메라는 차 안의 시점에서 찍는다. 그래서 그런지 그 고함소리마저 답답하게 들렸고 아마 감독은 그 답답함을 전달하기 위해 차 안의 시점을 이용한 듯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마를로는 그제서야 야간 보모를 부르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툴리와의 첫 만남을 가진 마를로는 상상하는 것보다 더 퍼펙트한 툴리로 인해 조금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된다.

영화 <툴리>


아이뿐 아니라 당신을 돌보러 왔어요


아이를 돌보라고 불렀는데 엄마도 돌보러 왔다니... 희한한 소리만 하는 툴리였지만 돌봄을 받아 본 적 없는 마를로는 툴리의 돌봄을 받으며 회복되고 툴리는 마를로의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특별히 툴리는 자신을 실패한 인생쯤으로 생각하는 마를로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해준다. 당신은 실패하지 않았다고, 당신은 충분히 좋은 엄마이며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고 가족에겐 선물같은 일이라고.

그녀의 격려와 위로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마를로에겐 기적과도 같은 선물이 되었다.

영화 <툴리>


이 영화의 후반엔 충격적인 반전이 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걸 혼자 해결하기 위해 저 지경까지 갔을까 해서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결국 마를로는 스스로를 그렇게 구했다. 자신의 젊었을 때의 모습을 소환해서 그렇게 자신의 눈부셨던 모습에 기대어서 말이다.


영화 <툴리>에서는 엄마라는 존재를 모성애가 넘치는, 그래서 모든 걸 이겨내는 슈퍼우먼 따위로 그려내지 않는다. 그냥 보통의 가정에서 보통의 엄마들이 겪고 있는 보통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어디에나 있을법한 보통의 아빠의 모습도 잘 보여 주는데 낮엔 열심히 일하고 밤엔 집에 돌아와 적당히 육아를 돕다가 자신의 심신을 달래기 위해 취미생활을 하는 보통의 남편, 이 정도면 괜찮은 보통의 남편 말이다.


영화 후반에 마를로가 어려움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아내의 고통을 깨닫게 된 남편은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밤에 당신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몰랐어. 그냥 당신이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어.”

몰라서 그랬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얼마나 집안일과 육아에 수동적이면 아내가 저 지경이 되도록 모를 수가 있나 싶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마를로는 정신적 고단함을 나눌 친구가 어느 때보다 필요했던 것 같았다. 나도 예전 기억을 더듬어 보면 출산과 육아로 늪에 빠져있을 때 육체적 피로감보단 정신적 피로감이 더 컸고 그걸 나눌 친구가 필요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항상 함께하는 가족, 나의 남편이 그 친구가 되어주길 얼마나 바랬는지 모른다.


결혼과 임신, 출산 모두 부부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따르는 수고들도 역시 함께 주도적으로 해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부부라면 육체적 정서적 필요를 서로 함께 돌봐줘야 하지 않을까?


https://youtu.be/pRjfqBCpR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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