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중 뜻밖의 회복
경증이긴 하지만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그래서 그런 건지 별일 없는 날인데도 갑자기 축 쳐질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익숙한 상황인지라 모른 척하고 할 일과 정해진 일들을 해냈다. 모른척하는 거지 괜찮은 건 아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내가 지금 이런 마음이라고도 이야기해 보았다. 그냥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거지.
"도대체 컨디션은 언제 좋아져?"라는 말이 되돌아온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너는 내가 아니니까 내가 겪는 게 무엇인지 모를 테니까 이해한다. 이내 민망한 마음을 가지고 화제를 바꾸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애꿎은 강아지를 끌어안고 있다가 산책이 도움이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기억나 밖으로 나왔다. 어제 하루종일 내렸던 봄비 때문인지 날이 꽤나 쌀쌀했다. 하지만 그런 공기가 마음에 든다. 비가 완전히 그치진 않았지만 우산을 쓸 필요는 없어 보인다. 봄을 맞이한 나무와 꽃들에 빗방울이 맺혀 있고 밤새 내린 비에 떨어진 벚꽃잎들이 길을 뒤덮고 있었다. 랜덤으로 재생한 음악엔 '숲'이란 노래가 나온다. 내 눈앞에 펼쳐진 것들과 조화로운 소리였다.
꺼질 것 같은 마음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는데 온 세상이 내게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요즘 나는 내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최근 새로운 운동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내가 그렇게 형편없고 바보 같아 보이는 거다. 머리로는 막 시작한 운동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지만 내 마음은 나를 그렇게 봐주지 않았다. 그 감정에 머물러 나를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가만히 나를 보고 있으니 뭐가 그렇게 싫었던 건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못하는 게 당연한 건데 그걸 당연하고 여유롭게 바라봐주지 못하고 기어이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내가 싫었던 것이었다. 나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내가 민망하고 부끄러웠던 것이었다.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내가 싫었던 것이었다. 이런 마음으로 며칠 동안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마음이 오늘 아침부터 나를 삼키려고 했던 것이었다.
알아차리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모르면 고칠 수가 없으니까. 지나고 나서야 알아차리게 되는 것들이지만 이유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이유를 몰랐거나 모른척했을 뿐이었다. 너무 감춰져 있어서 도움 없이는 혼자 알아챌 수 없는 것들도 있고 알아차리면 고통스러워서 모른 척 흘려보낸 것들도 있다.
내가 자꾸 나를 제대로 보지않으려고 하니 비가 나무가 꽃이 구름이 바람이 음악이 온 마음을 다해서 내게 말해준거겠지.
깨어진 채 살아도 괜찮다고. 그냥 나로 괜찮다고. 부족한 나로도 그냥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