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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Jan 30. 2019

라스 폰 트리에의 지옥도 <살인마 잭의 집>

자신의 예술을 향한 비판을 예술로 대응한 라스 폰 트리에


현존하는 예술가 중에서 뇌 구조를 분석하고 싶은 예술가를 한 명 지목하라고 한다면, 혹은 칸 영화제를 언제나 발칵 뒤집어 놓은 예술가를 한 명 언급하라고 한다면 그 예술가는 단언컨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일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칸이 애증 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는 <유로파> (1991), <브레이킹 더 웨이브> (1996), <어둠 속의 댄서> (2000), <도그빌> (2003), <안티크라이스트> (2009) 그리고 <멜랑콜리아> (2011)로 칸 영화제에서 평단으로부터 사랑과 비판을 동시에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는 2011년 제64회 칸 영화제 이후로 한동안 인연을 끊게 되었다. 왜냐하면 당시 경쟁 부문 상영작인 <멜랑콜리아> 상영 후 있었던 기자회견장에서 위험한 '나치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후 <님포매니악 볼륨1> (2013)과 <님포매니악 볼륨2> (2013)를 만들기는 했지만, 그가 본인과 자신의 작품에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응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그는 작년 제71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살인마 잭의 집> (2018)과 함께 돌아왔다. 언제나 파격적인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지만. <살인마 잭의 집>은 속내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짓게 할 정도로 차원이 다른 충격을 안긴다. 근데, 이번 영화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는 <살인마 잭의 집>을 관람한 평단과 대중의 평이 어떻든 간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살인마 잭의 집>은 그가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 놓은 비판을 최대치의 예술을 통해 확고하게 대응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의지를 잃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이라는 집을 건설하고, 그 안을 본인이 이전에 논란을 일으킨 발언과 관련 있는 영상과 <살인마 잭의 집>을 제외한 이전 자신의 필모그래피로 가득 채운 장면에서 확고부동의 입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Ordnung zwang Jack."


극 중에서 주인공 '잭(맷 딜런)'은 'Ordnung zwang Jack'라고 독일어로 혼잣말을 한 적이 있다. 'Ordnung'은 여성명사로 '배열, 규칙 혹은 법규'를, 'zwang'은  '~에게 강요하다 혹은 ~를 굴복시키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zwingen'의 3인칭 단수 과거형을, 'Jack'은 본인을 가리킨다. 영화의 맥락을 고려해 볼 때, 이는 평단이나 대중이 지금까지 그들의 평가 기준이나 윤리적인 잣대로 라스 폰 트리에 본인의 자아와 본인의 예술을 억압했음을 의미한다. 즉, '잭'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정체성이다. '잭'은 지옥으로 하강하면서 길을 안내하는 '버지(브루노 강쯔)'에게 지상에서 저질렀던 살인을 고백하는데, 중간중간 '버지'는 '잭'에게 예술을 사랑의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지 않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잭'은 본인의 입장을 단 한 번도 바꾸지 않는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아무리 예술을 해도 윤리적인 가치관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잭'의 입을 빌려 이를 반박한다. 그는 미학적으로만 예술에 접근했을 때 작품이 따분하거나 익숙한 느낌이 든다면, 오히려 파괴와 분해의 기술을 활용해 다른 차원의 예술을 창작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잭'이 이전까지 집을 세우던 중 철거하는 일을 반복한 이유와도 이어져 있다. 남들이 사용하는 나무나 벽돌 자재로 집을 짓는다면 평균 수준의 건축물을 지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잭'은 후반부에 그로테스크하지만 본인이 믿는 자재의 의지를 잃지 않으며 집을 지었고, 그럼으로써 'Ordnung zwang Jack'이라는 문장은 파괴하는 동시에 '예술은 해방이다'라는 주장을 실천하게 된다.



<살인마 잭의 집>에서의 살인 행위가 갖는 의미


<살인마 잭의 집>을 관람하면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수많은 살인 행위가 적나라하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일반인의 관점이 아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잭'이 '버지'에게 고백하는 핵심 살인 사건의 희생자는 두 명의 아이를 제외한다면 전부 여성이다. 굳이 이들을 희생 대상으로 삼은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의 관점에서 이들은 자신의 예술을 방해하는 장애물 혹은 나약함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싶다. 첫 번째로 등장한 여성(우마 서먼)은 '잭'의 길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쉴 새 없이 말을 걸면서 괴롭히다가 그의 신경을 건드리는 발언을 하자 곧바로 살해당한다. 아마 이 여성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에게 거슬렸던 과거의 비판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자신에게 쏟아진 비판을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잭'이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의도적으로 신문사에 보내 사건의 반응이 담긴 기사를 모으는 장면을 고려한다면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중년 여성을 살해하는 행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두 아이와 엄마를 살해한 사건과 잠깐이나마 사귀었던 여성을 살해한 사건은 장애물이기보다 나약한 본성을 제거한 상징적인 사건에 가깝다. '잭'은 잡지나 신문에서 찾아 자른 얼굴 사진을 보면서 표정을 따라 하는데, 이는 오히려 심각한 강박증과 같은 나약함을 심화시켰다. 게다가 그는 평범한 사람처럼 가족을 이루거나 연인을 사귀려고 노력하지만, 이런 노력은 약해지던 강박증을 되레 악화시켰다. 그래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잭'에 자아를 투영해 본인의 예술 세계를 방해하는 나약한 본성에 해당하는 존재를 제거한 것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잭'이 살인을 저지른 후 필름 카메라로 현장을 기록하는 행동에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인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필름을 통해 자신의 예술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필름으로 찍은 사진에는 빛 속에 어둠이 있듯이, 본인의 예술은 파괴와 창조가 동전의 양면처럼 혼재되어있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살인마 잭의 집>에 삽입된 영상물이 갖는 의미


이 영화에서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있던 연출작뿐만 아니라 자기가 과거에 했던 발언과 관련 있는 영상물을 활용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을 주변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하겠다는 견해를 또다시 밝히는 목적이 있지만, 다만 민감한 화법으로 전달했을 뿐이다. 2011년 당시 칸 영화제에서 논란을 일으킨 발언을 한 후 냈던 "내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나는 반(反) 유대주의자도 나치도 아니다"라는 공식 사과 성명을 나치즘과 파시즘 영상을 굳이 활용함으로써 끄집어낸 다음 예술적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다가 극단에 치달아 논란을 일으킬 언정 본인은 절대로 그런 의도를 품고 있지 않으므로 신경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 본인의 연출작 중 일부를 순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그동안 자신이 어떤 영화를 찍었는지 상기시킬뿐더러, 향후에 <살인마 잭의 집> 이후로 영화를 찍지 않고 다른 예술 작품을 만들더라도 변함없을 거라는 자세를 부각한 것이다.



'에필로그: 하강'과 수록곡 'Hit the Road Jack'


영화는 핵심 사건을 플래시백 형식으로 보여준 다음, 에필로그로 마무리한다. 우선 장면 편집 방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전까지 '잭'이 '버지'에게 자기가 저지른 살인을 고백하는 상황을 청각적으로만 묘사했지만, 에필로그에서 그 상황을 하강하는 이미지와 함께 시각적으로 다시 그려낸다. 이는 청각적인 이미지에 시각적인 이미지를 덧붙임으로써 지금까지 표명한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데,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성에 차지 않는지 '버지'가 무너진 다리를 건너지 말라고 경고했음에도 망설이지 않고 시도하는 '잭'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를 통해 언젠가 죽을지언정 본인이 하고 싶은 예술을 하다가 죽겠다는 결심을 드러낸 게 아닐까 싶다. 놀랍게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결의에 찬 모습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레이 찰스의 곡 'Hit the Road Jack'를 들려주면서 끈질기게 보여준다.



Hit the road Jack and don't you come back
No more, no more, no more, no more
Hit the road Jack and don't you come back
No more
What'd you say?


물론 'Hit the Road Jack'은 경쾌한 리듬과 함께 흑인 사회에서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남성이 쫓겨나는 상황을 서술한 곡이다. 그렇지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이 곡에 담긴 의미를 이 영화를 연출한 목적에 알맞게 변형했다. 이번 영화로 은퇴를 시사한 발언을 해 <살인마 잭의 집>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지만, 그가 앞으로 영화 말고 다른 예술 작품을 하든 아니면 이후 다른 영화를 찍든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만 보고 달려갈 거라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 해당 글은 아트렉처에 발행하는 글과 동일합니다: https://artlecture.com/event/view?id=551


* 관람 인증

1. 2019.01.29 (아트나인 월례기획전 GET9)

2. 2019.02.15 (언론 배급 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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