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문보 Jun 05. 2019

명확하게 그리고 불명확하게
<기생충>

봉준호 감독은 명확하게 소재를 전달할 뿐, 마무리는 관객의 몫


한국 영화 100주년이 되는 올해,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 (2019)으로 제72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첫 번째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 (2000)부터 시작해 봉준호 감독은 꾸준히 영화를 작업하면서 다양한 사회 이슈를 끊임없이 위치를 바꿔가며 명확하게 언급해 왔다. 다만,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통해 사회 시스템의 문제 및 모성애와 같은 사회가 강요한 특성을 이야기 소재로 꺼내는 역할까지만 한다.



이후 담론은 관객의 몫으로 남긴다. 문제를 제기했으면 해결책이나 해결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했으면 하는 바람을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관객의 능동적인 수용을 위해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영역을 절대로 침범하지 않는다. 이를 토대로 생각해 볼 때, 영화 <기생충>은 전작처럼 분명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되 지속해서 혼미한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마무리는 오로지 관객에게 맡긴다. 



<기생충>은 계급 갈등을 수평적으로 접근한 <설국열차> (2013)와 달리 수직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 예를 들어, 익스트림 롱 숏을 통해 계단식 구조로 세워진 주택가를 보여주거나 비가 격렬히 쏟아지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형성된 강한 하강 이미지를 통해 최상층과 최하층 사이의 굉장한 계급적 차이를 드러낸다. 게다가, 건물 밖에 만들어진 계단과 건물 안에 있는 계단을 조합해 형성한 복잡한 구조로 계급 간 차이뿐만 아니라 계급 내 차이까지 간접적으로 그려낸다. 



사실, 어떤 갈등 문제를 수직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것은 지극히 일반적이다. 근데, <기생충>에서 이와 같은 접근 방식은 전형성이 소거된 채로 사용되었다. <기생충>은 익숙한 방식에 순응하는 관객의 태도에 훼방을 놓기 위해 화면 속 깊이감이 형성되는 것을 저지한다. 구체적으로 예로, 인물 간의 대화 장면에서 수평 트래킹 숏을 활용해 화면을 평면적으로 만들거나, 탁류를 버즈 아이 뷰 숏으로 담아내 불투명한 수면과 바닥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깊이감 형성을 거부한다. 



관객의 수동적 태도를 거부하려는 또 다른 방안의 일환으로 <기생충>은 대화가 오고 가는 장소의 범위를 대부분 거실 공간으로 한정을 짓는다. ‘박사장(이선균)’ 가족이 지내는 집 안 거실 공간과 ‘기택(송강호)’ 가족이 지내는 반지하 집의 비좁은 거실 공간은 1막을 위한 연극 무대와 2막을 위한 연극 무대로 구분될 정도로 외관상 현저한 차이를 나타낸다. 겉으로는 두 가족 간의 사회적 위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물의 대화가 이뤄지는 장소를 거실로 제한함으로써 관객은 거실에서 작동하는 발화행위의 메커니즘을 자연스럽게 분석하게 되고, 결국 이를 바탕으로 계급 간의 역학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는 대한민국 사회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 일어나는 계급갈등을 이해하는 출발선에 서기 위한 준비이자 관문이다. 더 나아가, ‘기생하다’의 의미가 사전적 의미에서 벗어나 사회 시스템 안에서 어떤 실질적 의미를 갖게 되는지 고민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해당 글은 아트렉처에 발행하는 글과 동일합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803


* 관람 인증

1. 2019.05.30 (라이브톡) 

2. 2019.06.01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를 캔버스로 삼아,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