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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Aug 18. 2019

보편적 삶과 감정의 무게를 응축한 날갯짓, <벌새>

 날갯짓과 함께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경유해 미래로 나아갈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다. 김보라 감독은 전 세계 영화제 25관왕을 차지하며 화제를 모은 영화 <벌새> (2018)로 장편 데뷔하기 전부터 이와 같은 보편적인 심리를 자신만의 우주를 구축하며 이야기해 왔다. 전작 단편영화 <리코더 시험> (2011)에서는 리코더를 잘 연주해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초등학생 ‘은희(황정원)’를 중심으로, 이번 장편영화 <벌새>에서는 사랑을 위해 벌새처럼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중학생 ‘은희(박지후)’를 중심으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흐를 감정을 묘사했다. 전작과의 차이점이라면 보편적인 삶과 감정을 단순히 공통성에 의존하지 않고, 삶의 균열을 경험하는 개인을 벽에 금이 간 집과 맞물려 다루는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영화 <세일즈맨> (2016)처럼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영화 <벌새>는 중학생 ‘은희’의 삶을 1994년 10월 21일에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사건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게 함으로써 묘사한다. 성수대교 붕괴사건은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특수한 사건이기에 1994년 서울만의 특정한 분위기를 전달하지만, 사랑 때문에 누구나 겪는 관계 속 붕괴와 그 후를 이야기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이기도 하다. ‘은희’는 몸집이 작지만 꿀을 찾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날갯짓을 하는 벌새처럼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어서 무더운 여름 공기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다닌다. ‘은희’는 가족, 친구, 후배 등 사이를 분주하게 움직이는 덕분에 뜻하는 바를 이루기 직전까지 가지만 번번이 좌절을 하고 만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귀 밑에 생긴 종양을 제거한 후 생긴 상처나 테이프로 가리려는 갈라진 방 벽처럼 ‘은희’의 주변에 상처의 흔적이 하나둘 기록된다. 



그러다가 ‘은희’는 우연히 한자 보습학원에서 ‘영지(김새벽)’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 ‘은희’는 ‘영지’ 선생님과 약간의 거리를 둔다. 왜냐하면 14세 소녀의 눈에 ‘영지’ 선생님은 세상과 다른 눈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적 상처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슬픈 감정을 표출했을 때 보게 된 선생님의 모습을 기점으로 ‘은희’는 또다시 날갯짓한다. 이는 그동안 좌절감을 느낄 때마다 ‘은희’에게는 ‘정말 힘들겠구나’ 혹은 ‘정말 슬펐겠구나’라는 동정에 가까운 말이 아니라 조용히 차 한 잔을 건네거나 무심한 척 나오는 작은 동작 등 위로하려 하지 않는 무언의 표현이 필요했음을 시사한다. 물론 삶은 무언가를 깨닫는다고 해서 그 이후가 영원히 평탄해지지 않고 굴곡진 길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그럼에도 성장에서 중요한 시기에 얻게 된 깨달음은 관계 속 균열을 다시 한번 마주해도 더는 무너지지 않는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영화 <벌새>는 인생에서 겪는 고통과 치유의 과정을 부끄럽지 않으면서도 대단하지 않게 보여준다. 더 나아가 어떻게 사는 게 맞는지 알 수 없는 인류의 영원한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삶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 방법은 ‘은희’처럼 가까이에 있어서 등한시했던 주변을 꾸준히 돌아보며 ‘영지’ 선생님이 남긴 편지 속 내용처럼 삶이란 나쁜 일이 닥치면 좋은 일도 함께 한다는 것임을 받아들이고 매일 누군가를 만나며 무언가를 나누는 행복을 잊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1994년의 이야기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경유해 미래까지 나아간다는 점에서 영화 <벌새>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 해당 글의 원문은 아트렉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962?_lang=ko


* 관람 인증

1. 2018.12.01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2. 2019.08.14 (언론 배급 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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