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문보 Nov 10. 2019

곤경이 짙게 깔린 아스팔트 위,
<타이페이 스토리>


타계 10주년을 기리며 2017년과 2018년에 차례로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91)과 <하나 그리고 둘> (2000)이 개봉했었다. 그리고 2019년에 영화 <타이페이 스토리> (1985)가 34년 만에 국내 첫 개봉을 했다. <타이페이 스토리>는 상하이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인 에드워드 양 감독의 심정이 투영된 작품인 동시에, ‘아룽(허우 샤오시엔)’과 ‘수첸(채금)’의 삶에 스며든 불안과 곤경을 바탕으로 1980년대 대만의 혼란스러운 공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중국 상하이 출신 에드워드 양 감독은 상하이가 중국 공산당에 의해 점령당했을 뿐만 아니라 공산당에 적대적인 일을 했던 아버지께서 감옥에 갇히자 남은 가족과 함께 대만으로 이주해 성장했다. 그리고 에드워드 양 감독은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 차이밍량 감독과 더불어 대만의 ‘뉴 웨이브’ 영화 시대를 이끌었다. 그렇지만, 에드워드 양 감독은 대만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은커녕 본인의 성장기를 보낸 국가를 그저 낯설게 바라봤다. 왜냐하면 아무리 대만이 본인의 성장에 많은 비중을 차지했음에도 출생지가 아니라는 사실은 절대로 바뀔 수 없을뿐더러, 대만이 한국,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1970년대를 보냈을 당시 에드워드 양 감독은 그곳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드워드 양 감독은 대만으로 돌아왔을 때 대만의 경제적인 성장을 이질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이질성과 낯섦은 <타이페이 스토리>의 주인공 ‘아룽’과 ‘수첸’의 삶을 중심으로 영화적으로 재현된다. 



<타이페이 스토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수첸’의 아버지처럼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 취한 채 살아가는 기성세대, 과거 세대가 누렸던 영광의 후광을 기대했지만 정반대의 현실을 살아가며 방황하는 중간세대, 그리고 현재 혼란스러운 대만의 분위기 때문에 애초에 꿈조차 없이 지내는 젊은 세대가 한 도시에 모여 살아간다. 기성세대는 과거에 누렸던 경제적 부흥을 더는 기대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위치에 있지만, ‘수첸’의 아버지처럼 유흥을 포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예비 사위인 ‘아룽’에게 빌붙는 등 노력보다 편법으로 경제적 성공을 기대한다. 젊은 세대는 어두운 밤에 그저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고, 자신들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을 찾아 방향성은 없이 본인들이 하고 싶은 행동을 하며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다. 또한, 이들은 당장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으나 우선 대학에 입학하는 걸 삶의 목표로 설정한다. 그러나 타이페이 도심에 짙게 깔린 낯설고 공허한 공기는 이 두 세대 간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 하는 위치에 선 중간세대에 의해 형성된다. 



한때 야구에 재능이 있는 전도유망한 청년이었지만 지금은 야구장 주위를 서성이는 ‘아룽’의 모습과 공허함을 느낄 때마다 ‘아룽’을 짝사랑했던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는 ‘수첸’의 모습처럼 중간세대는 현재 젊은 세대와 달리 처음부터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만은 1988년 1월 전까지 계엄령이 유지되었던, 즉 어지러운 시기였기에 중간세대는 꿈을 박탈당한 채 현실을 꾸역꾸역 살아갈 방법을 고민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아룽’처럼 과거에 도취한 나머지 쉽게 무너지는 기성세대를 묵묵히 지켜보며 연민의 감정으로 대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쌓인 분노를 마땅히 풀지 못하고 괜히 젊은 세대에게 조준했다가 도리어 보다 더 호된 일을 겪는다. 이처럼 반복되는 일상생활에 지친 중간세대 앞에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하나는 ‘결혼’이라는 대만 현실에 순응하는 정착, 또 다른 하나는 ‘미국 이민’이라는 대만 현실에서 벗어나는 도망이다. 근데, 두 선택지는 잠깐이나마 숨통을 틔울지 몰라도 결국은 헛된 것이고, 도로 위에 버려진 TV를 응시하며 유년 시절 꿈을 갖게 해 줬던 야구 경기 중계를 회상하는 ‘아룽’처럼 중간세대는 사라져 가는 순간의 기억이라도 붙잡아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더 나아가, 그나마 어둠 속에서나 진심을 표출할 수 있을 정도로 중간세대의 답답한 심정은 방황으로 바뀌면서 자신을 스스로 곤경에 빠뜨린다. 대표적인 예로 ‘수첸’과 직장 동료 간의 관계가 있다. ‘수첸’의 직장 동료는 퇴근할 시간만 되면 그녀에게 맥주 한잔을 하자고 제안한다. ‘수첸’은 계속 거절하다가 어느 날 동료에게 밥 한 끼 같이 먹고 각자 집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그다음 나오는 몇몇 장면들을 포함해 두 사람의 관계를 하나의 시퀀스로 정리했을 때 이들의 관계가 불륜 관계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불륜을 저지르는 동기는 다양하지만,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비춰 볼 때 두 사람의 불륜은 방황의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아룽’의 오랜 친구의 아내가 도박에 빠져 영원히 집을 떠난 사실과 그 후 우울함으로 가득 찬 친구 집 내부 분위기도 타이베이 도심을 살아가는 시민의 방황 심리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타이페이 스토리>로 아스팔트 위에 펼쳐진 이질성, 곤경, 그리고 낯섦을 그려낸 에드워드 양 감독은 오프닝 시퀀스와 대등한 엔딩 시퀀스를 통해 외성인으로서 끊을 수 없는 본인의 번뇌와 질문을 관객에게도 전달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수첸’이 ‘아룽’과 함께 두 사람의 보금자리가 될 빈집을 방문해 허름한 이 공간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들뜬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반면, ‘아룽’은 별 반응 없이 듣기만 한다. 엔딩 시퀀스에서는 ‘수첸’과 함께 이전 직장을 떠난 상사는 ‘수첸’에게 자신의 새 회사를 어떻게 꾸밀 것인지 말하며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반면, ‘수첸’은 미동도 하지 않고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쓴 채 가만히 밖을 쳐다본다. 대화가 진행되는 공간과 그 공간 속 인물 구성만 제외하면 엔딩은 오프닝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이와 같은 오프닝 시퀀스와 엔딩 시퀀스의 배치는 당시 대만에 깃든 불안과 곤경을 다시 한번 역설하기 위한 목적이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대만은 어떤 국가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대만에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뇌를 전하기 위한 <타이페이 스토리>의 궁극적인 목적을 드러내기 위한 배치이지 아닐까 싶다. 



* 해당 글의 원문은 아트렉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1176


매거진의 이전글 우주에서 다시 써내려 가는 인류 신화, <하이 라이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