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 연대로, 연대가 심리적 동화로 발전하며 완성된 감독의 아포리즘
제72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의 영예를 안은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19)은 “후회하지 말고 기억할 것”이라는 이루지 못할 사랑에 대한 셀린 시아마 감독의 아포리즘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비록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두 여성 간의 사랑이 완성될 수 없는 1770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시선이 연대로, 연대가 심리적 동화로 발전해 여성이라서 겪어야만 했던 억압과 차별의 세상을 어떻게 버텨내는지에 관한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또한, 남성 중심적 사고에서 해석되었던 오르페우스 신화를 여성 중심적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본 것을 바탕으로 여성들의 사랑과 연대를 더욱더 뜨겁고 예술적으로 기록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수녀원에서 나와 마지못해 결혼을 해야 하는 ‘엘로이즈(아델 하에넬)’와 그녀의 결혼식 초상화를 요청받은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 간의 시선 교환에서 출발한다. 두 인물이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영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1955)에서 영감을 받은 듯해 보인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은 피카소의 그림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큐비즘적인 구도로 사랑과 결혼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루이(필립 느와레)’와 ‘엘르(실비아 몽포르)’가 서로를 쳐다보는 걸 포착한다. 즉,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영화에서 큐비즘적인 시선 구도는 감정의 평행선을 유지하는 연인의 긴장감을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이와 같은 구도를 살짝 비튼다. 예를 들어, 오버 더 숄더 숏으로 ‘엘로이즈’를 보는 ‘마리안느’의 모습을 큐비즘적 구성을 통해 파착할 때쯤 ‘엘로이즈’가 미세한 운동성으로 이 구성이 정착되는 걸 방해한다. 이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처럼 두 인물 사이의 감정 및 관계의 평행선을 보여주고자 하는 게 아니라, 두 인물이 비가시적으로 점점 부딪히면서 내면의 작은 불씨가 점차 피어나고 있음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두 여성이 언어적인 방식보다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서서히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때 ‘엘로이즈’ 집안의 하녀인 ‘소피(루아나 바이라미)’가 합류한다. 사실 ‘소피’는 영화 초반부부터 등장한 인물이지만, 두 여성 간의 시선이 세 여성 간의 연대로 발전하는 중반부부터 본격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세 여성의 계급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해야 할 임무도 명백하게 나눠져 있다. ‘엘로이즈’는 결혼을 위해 이탈리아로 가는 날을 그저 집에서 기다리고 있고,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어머니의 부탁으로 몰래 초상화 작업을 하는 동시에 ‘엘로이즈’를 은밀히 감시하고, ‘소피’는 자기 존재감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온갖 잡업을 한다. 그러나 세 여성 인물은 서로에게 서열 의식과 위계성을 부여하지 않고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생활하며 연대한다.
‘마리안느’는 여성에게 불리한 결혼 관습으로 인해 ‘엘로이즈’가 힘들어할 때 그런 고독 속에서도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엘로이즈’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제한된 대상만을 갖고 그림 작업을 해야 하는 ‘마리안느’를 위해 화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와 당시 여성이 맞이한 시대적 비극을 기록할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다. ‘소피’는 ‘마리안느’가 밤중에 생리통으로 고통스러워하자 그녀를 친절히 보살피고, ‘소피’가 원치 않은 임신으로 낙태하러 갈 때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동행해 그녀가 겪는 괴로움을 함께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연대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은 탁자에 둘러앉아 카드 게임을 하는 장면이다. 이들이 하는 카드게임이 정확히 어떤 게임인지 알 수 없지만, 버스트 숏으로 세 인물의 행복한 표정을 담아낸다. 아울러 오로지 수평 트래킹 숏만을 활용함으로써 이들의 계급적 차이를 소거하고, 세 인물의 동등한 관계와 연대감을 형상화하는데 몰두한다.
세 여성의 연대감이 무르익을 때쯤 ‘소피’가 살짝 한발 물러나고, 오르페우스 신화의 재해석과 함께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사이에 형성된 심리적 동화에 집중한다. 오르페우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는 하데스를 찾아가 지하세계의 문턱을 통과하기 전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전제조건 하에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데려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근데,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의 출구 문턱에 발을 내딛는 순간 에우리디케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몰라 조급한 마음에 뒤를 돌아보고 만다. 그래서 에우리디케는 비명을 치며 다시 지하세계로 돌아갔고, 오르페우스는 그녀를 영원히 그리워하며 살다가 죽는다. 그러나 ‘소피’는 이에 대해 화를 내고, 세 여성은 열띤 토론을 하던 중 어차피 지상세계로 돌아가면 언젠가 사별의 아픔을 다시 겪어야 하므로 주어진 운명을 수긍하고, 일부러 오르페우스의 이름을 불러 남편의 고개를 돌리게 만들어 지하세계로 복귀하기로 결심한 에우리디케의 자발적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이들이 제시한 새로운 해석처럼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지금 당장의 사랑을 선택해 힘든 미래의 삶을 살아가며 후회하는 대신 서로의 손을 놓더라도 이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기로 약속한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사이에 심리적 동화가 완벽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심리적 동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정신적인 표상의 형태로 내면에 담아내는 것을 가리킨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에게 주어진 시간은 비록 짧았지만, 두 인물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철저히 관계에 쏟았던 순간과 그때 풍경을 감각 기관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기록했으므로 심리적 동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함께 보냈던 시간, 읽었던 책, 들었던 음악과 파도 소리, 그리고 느꼈던 불의 온도는 초감각적으로 기억되었으므로 두 인물이 물리적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심리적으로 항상 이어져 있을뿐더러 갖은 고초에 무너질 위기를 버텨내며 극복할 힘을 지니게 된다. 특히, 시간이 흐른 후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장소에서 바로크 시대 음악가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가 작곡한 ‘Il cimento dell'armonia e dell'inventione, Op.8’의 연주를 감상하는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를 담아낸 장면을 통해 두 인물의 심리적 동화는 마침내 카메라에 체화된다.
카메라는 ‘마리안느’의 시선에서 연주를 들으며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 듯한 ‘엘로이즈’의 행복과 슬픔이 공존한 표정을 담아내고 있지만, ‘엘로이즈’의 표정이 일으키는 진동이 ‘마리안느’의 시선이 투영된 카메라에 영향을 미치면서 그 카메라도 미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는 비록 스크린 안에서 직접적으로 ‘엘로이즈’의 시선이 투영된 카메라로 ‘마리안느’의 표정을 포착하지 않았지만, 스크린 밖의 카메라가 ‘엘로이즈’의 눈이 되어 마찬가지로 양가적인 표정을 짓는 ‘마리안느’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도록 만든다. 따라서 셀린 시아마 감독은 계급을 불문하고 억압 및 차별을 받는 여성들의 시선이 차례로 연대와 심리적 동화로 발전하는 과정을 세심하고 정열적으로 완성함으로써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아포리즘을 예술적으로 승화한다고 볼 수 있다.
* 해당 글의 원문은 아트렉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1177